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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전'의 메시지는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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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별주부전)’은 꽤 오래 된 이야기인 듯싶다. ‘삼국사기’의 김춘추 이야기에 등장한다. 백제의 공격을 받아 신라 대야성 성주와 부인이 목숨을 잃는다. 문제는 이들이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다는 것이다. 분노로 가득 찬 김춘추는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강력한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고구려 보장왕은 이전에 신라가 빼앗아간 고구려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김춘추를 감옥에 가둔다. 이때 뇌물을 써서 고구려 신하 선도해에게 꾀를 얻는다. ‘토끼전’ 이야기가 힌트가 되었다. 고구려 왕에게 이야기했던 땅을 돌려주겠다고 하고 자신의 왕에게 허락을 받고 오겠다고 한 후 신라로 도망 온다. 그 이후 삼국통일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이 이야기에서 김춘추는 토끼가 된 셈이고, 고구려 보장왕은 용왕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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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토끼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완판본 토끼전’에는 “병든 용왕 살리자고 성한 토끼 나 죽으랴?”라는 토끼의 말이 나온다. 각 생명마다 값어치는 따로 없다. 모두 똑같을 뿐이다. 누구는 더 귀하고 누구는 더 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용왕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생명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행히 소설에서는 매끄럽게 이 부분이 전개가 된다. 토끼가 바닷속 생명이어서 용왕의 지배를 받는 처지였다면, 명쾌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 ‘파격의 고전’(이진경 저)은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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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존재’가 한 목숨을 바쳐 ‘높고 귀한 존재’를 살리고, ‘별 것 없는 존재’가 한 몸을 바쳐 ‘위대한 존재’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당연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식의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빈번하게 듣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희생 내지 성스러운 희생의 형태로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놓게 하려는 시도들이 이런 말로 치장되어 행해집니다. 거기에 넘어가 생명을 주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용왕이 토끼에게 바랐던 최대치가 그것일 터입니다. 이것이 ‘토끼전’의 중심 뼈대 중 하나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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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고귀한 목숨을 위해 값싼 당신의 목숨을 바치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여기서의 목숨은 생물학적 목숨뿐 아니라 지위, 명예 등 사회적 목숨도 포함된다. 왕조시대에 있을 법한 사고를 여전히 하고 있다면, 시대착오적이라 반성할 일이다. ‘설마?’하겠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