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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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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 fluke s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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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활동하는 '제페토'(필명)는 '댓글 시인'으로 불린다.

각종 사회면 기사에 한 편의 시(詩)와도 같은 댓글을 달기 때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충남 당진에서 20대 철강업체 직원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에 단 댓글이 화제를 모으면서부터다.

7일 오전 2시 충남 당진군 석문면 모 철강업체서 이 업체 직원 A씨(29)씨가 작업 도중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경찰에 따르면 숨진 A씨는 용광로 위에서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이 용광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 2010년 9월 8일)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두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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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는 동화 '피노키오'에서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든 목수 할아버지의 이름인데, 이 이름처럼 제페토는 거친 세상을 재료 삼아 시를 만든다.

용인서 건물 외벽 유리창 청소하던 40대 인부 추락사

18일 오후 4시30분께 경기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H자동차부품 연구소 건물 3층 높이 외벽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유리창 청소를 하던 청소업체 사장 김모씨(41)가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뉴시스 2010년 9월 18일)

<이름 모를 친구에게>

그놈의 동네는

가지 성한 나무 한 그루 없더냐

푹신한 잔디 한 평 깔려 있지 않더냐

에라이, 추석이 코앞인데

눈 비비며 전 부치고 계실

어머니는 어쩌냐

하필 당신 나와 같은 나이냐

전깃줄에라도 매달렸어야지

없는 날개를 냈어야지

누구는 이십 층서도 살았다던데

구 미터면 살았어야지

어떻게든 살았어야지

발밑 좀 살피지

뭐라도 붙잡지

귓물 스쳐 날던 나비에라도 매달리지

이번 추석은 글렀다

음복하다 울게 생겼다

서울동물원 인기스타 고릴라 '고리롱' 숨 거둬

서울동물원 최고 인기스타였던 로랜드 고릴라 할아버지 '고리롱'이 지난 17일 반 백년 삶을 마감했다.


고리롱은 고릴라 평균수명이 야생에서 30~40년인 것에 비해 사람 수명으로 80~90세에 해당하는 49년을 살아 장수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더니 지난 10일께 부터는 몸져 눕고 말았다. 전담사육사와 수의사들이 노력했지만 노환으로 결국 새끼고릴라 하나 없이 숨을 거뒀다.(아시아경제 2011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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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롱>

고향 떠나온 지 반백 년

시멘트 독에 잘린 발가락

휘청이는 몸으로

사랑도 힘에 부치어

자식 하나 남김 없음이 서러운데

본전 생각에 박제라니,

하지 말아라

그만하면 됐다

아프게 가죽 벗겨

목마르게 말리지 말아라

먼지 앉고 곰팡이 필

구경거리로 세워놓고

애도니 넋이니

그거 말장난이다

사라 바트만처럼

사무치게 그리웠을

아프리카

흙으로

'40대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정보도 알려지지 않은 그가 이번에 자신의 시 84수를 담은 '그 쇳물 쓰지 마라'(책 정보 보러 가기)를 펴냈다. 그의 댓글을 쭉 보고 싶다면 이 링크로 들어가 하단에 달린 첫 번째 댓글 '제페토' 필명을 클릭하면 되고, 개인 블로그는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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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결정에 따라 지난 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우리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을 청소하던 중년 가장이 추락사하였는가 하면, 무명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으며,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과, 아이에게 먹일 체리를 훔쳤다가 체포된 가난한 엄마와, 구제역 파동 속에 무참히 생매장당한 가축들의 비명과, 임금을 체불당한 일용직 노동자의 무력한 고공 시위와, 그처럼 홀대받는 노동자를 위해 평생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 열사의 모친과, 배웅 없이 떠난 고독사와, 배가 가라앉은 지 2년이 지나도록 진실을 알 수 없는 300여 명의 죽음과... 아, 그해 봄에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랑을 잃었다.


(중략)


지금은 비록 아프고 쓸쓸한 댓글이 8할쯤 되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면 사회면 뉴스를 떠나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들에 관하여 쓸 수 있을 게다. (제페토가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남긴 서문)

그 쇳물 쓰지 마라 책 정보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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