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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원티드'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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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통을 끌고, 코에 튜브를 한 여자가 힘겹게 말한다. “제 딸도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죽었어요. 첨엔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란 걸 몰랐어요. 저와 제 딸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가습기 살균제 사용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내부고발자는 얘기한다. “그냥 세상이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야 되는데 못 본 척할 수가 없었어요. 목에 튜브를 꽂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내 딸) 또래 여자애를 보는데, 그 애가 우리 애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읊조린다. “내가 될 수도, 내 아이가 될 수도 있었어.”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소재로 삼은 내용으로 눈길을 끈다. <원티드>는 유명 배우의 아들이 유괴됐고, 범인의 요구에 따라 생방송을 진행하며 매회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인데, 알고 보니 범인은 생방송 팀의 책임피디 최준구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였다. 8년 전 임신한 아내가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이후, 이 사건을 방송하려고 고군분투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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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끝난 <동네변호사 조들호>(한국방송2)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에너지 음료에 빗대어 여러 사건 중의 하나로 다룬 적은 있지만, <원티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드러내놓고 정면돌파한다. 의도한 건 아니라지만 극중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회사 이름도, 처음 원료를 개발해 가습기 살균제를 내놨던 에스케이(SK)케미칼과 비슷한 에스지(SG)케미칼이고, 최준구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쏙쏙 크리너’는 현실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 싹싹’과 이름이 비슷하다.

극중에서 1차 미션의 타깃 김우진 교수와 2차 미션의 타깃 하동민 교수는 모두 발병 원인을 알면서도 왜곡하고 은폐하며 에스지그룹의 지원을 받아온 현실의 그들과 같다. 가해자의 뻔뻔함과 국가기관의 문제도 그대로 노출한다. “저희 제품은 국가에서 정한 모든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제품입니다. 그런 의혹이 제기됐다 하더라도 소수의 주장이 있다고 해서 사실관계가 입증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극중 SG라이프 대표 함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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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제작한 ‘재미난 프로젝트’의 정아름 대표는 “예민한 소재였지만, 변화를 위해서라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극중 준구의 ‘내가 방송했어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을 것 같다’는 대사처럼, 돌려서 얘기하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면돌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인 작가에 추리물이라는 시청률과는 거리가 먼 장르에, 민감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것은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김영섭 SBS 드라마국 본부장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문제제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미디어의 폐해 등 주제 의식을 잘 살리면 잘 녹아들 것 같았다”고 편성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정 대표는 “환영받지 못할 내용인데, 오히려 방송사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사회고발성 드라마는 1980년대부터 있었다. 2012년엔 <추적자>가 정경유착과 벙어리 언론 등 권력집단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뉴스·시사 프로그램에서조차 제대로 된 접근을 만나기 힘든 세월호 등 현실을 직접 환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드라마도 침묵했다. 지난해 <앵그리 맘>(MBC)이 방송에서 쉬쉬하던 세월호 참사를 학교 붕괴에 빗대어 고발해 화제를 모았고, <원티드>는 에두르지 않는 정면돌파로 이런 흐름에 속도를 더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런 드라마가 나오다니, 방송사와 작가, 피디한테 고맙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가습기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우리 이야기를 다뤄줘서 고맙다”며 눈여겨보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하필 유가족이 어린이를 유괴해 억울함을 알리는 설정에 대해서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그 부분이 우려되어 고민도 했지만, ‘아이’는 세월호 등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본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존재”라고 말했다.

현재진행형인 만큼 결말에도 관심이 쏠린다. 게시판에는 “함태섭이 죽었으면 좋겠다. 함태섭이 살고, 최준구가 죽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란 의견이 올라 있다. 정 대표는 “16회 엔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드라마가 꿈과 희망을 주는 것도 좋지만, 드라마로 현실이 조금씩 변해가면 좋겠다는 처음의 취지를 담은 결말”이라고 귀띔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뿐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제2, 제3의 피해를 보신 분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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