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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빈민촌, 파벨라에 가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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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 FAVELA
Houses from a favela are photographed through the Olympic rings prior to the opening ceremony for the 2016 Summer Olympics in Rio de Janeiro, Brazil, Friday, Aug. 5, 2016. (AP Photo/Jae C. Hong) |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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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a 올림픽] 신들의 도시, 리우 파벨라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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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찾아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최대 파벨라(빈민촌) 모습. 층마다 시멘트, 벽돌, 콘크리트 등으로 재료를 달리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에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났다. 개막 직전 혼란스러웠던 리우올림픽도 반환점을 돌면서 안정감을 찾았다. 이곳 기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미디어숙소와 메인프레스센터(MPC), 경기장에서 보낸다. 세 곳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는 주최 쪽에서 제공한 올림픽전용도로로 달린다. 이 때문에 대회 시작 이후 세계 4위라는 리우 시내의 극악한 교통체증은 느낄 수 없었다. 보안도 철통같다. 더불어 리우에 도착한 첫날,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거대한 파벨라(빈민촌)도 취재 열흘이 넘어가자 대도시의 익숙한 풍경으로 물러나버렸다. 지금 리우에선 인구(650만)의 30%를 차지하는 빈민층이 배제된 채 이렇듯 말끔히 정리된 세상 안에서 스포츠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리우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최대 빈민가인 호시냐로 향했다. 브라질 입국 후 외교부는 매일 ‘리우 내 강력범죄 빈발 빈민촌 방문 절대금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루 전엔 브라질 경찰이 공항에 가려다 파벨라로 길을 잘못 들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1~5월 리우에서 발생한 강도·절도·살인 7만여건 중 80%가 700여곳에 산재한 파벨라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안전한 취재를 위해 파벨라에 정통한 가이드를 고용해 동행했다. 현장에서 목격한 바로는 이 비용 중 절반은 가이드를 연결해준 호텔이, 나머지 절반은 가이드가 가져갔다. 파벨라에 할당된 몫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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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찾아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최대 파벨라(빈민촌) 모습. 층마다 시멘트, 벽돌, 콘크리트 등으로 재료를 달리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호시냐 입구에 들어서니 파벨라마다 배치된 평화유지경찰대(UPP), 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천천히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층마다 재료를 달리한 집들이 간격 없이 촘촘하게 붙어 정상까지 이어졌다. 호시냐에서 자란 호르헤 산체스(33)는 허름한 집 한 채를 가리키며 “내가 처음 이곳에서 태어났을 땐 1층집이었다.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3층으로 올렸다”고 했다. 산체스가 가리킨 집의 1층은 콘크리트와 시멘트, 2층과 3층은 빨간 벽돌로 이루어졌다. 층간 경계도 분명하지 않았다. 3층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산체스는 돈을 아껴 도심에서 벽돌을 하나씩 사모으고 있다. 벽돌 한 장은 우리 돈으로 3500원 수준. 파벨라 빈민들의 한달 평균 수입은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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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찾아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최대 파벨라(빈민촌) 인근에 정화조가 터져 오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주민들이 서둘러 피하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인근 정화조에 문제가 생겼는지 오물이 넘쳐 악취가 진동했다. 머리를 자르던 미용실 주인도, 술과 과자를 파는 구멍가게 아저씨도, 민박을 하는 할머니도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골목 귀퉁이에서 공을 차던 여남은 명의 아이들도 떠나버렸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세자르 가르시아(56)는 “파벨라는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 아무도 청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10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며 “수도나 전기, 통신도 돈을 낼 수 있는 집은 들어온다”고 했다. 파벨라 안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호시냐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극심한 경제난을 버티지 못한 도시 빈민층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빈민층들이 들어선 지역을 취재하고자 골목 틈새를 정신없이 비집고 들어가다 가이드와 멀어졌다. 그러자 가이드는 호통을 치며 “여기서 혼자 남겨져 길을 잃으면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순간 오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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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찾아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최대 파벨라(빈민촌)인 호시냐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호시냐의 모습. 호시냐의 바로 앞엔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항이 자리하고 있다.

호시냐 역시 다른 파벨라와 마찬가지로 18세기 말 도망쳐온 아프리카 노예들과 산업화에서 낙오된 현지 주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특히 호시냐는 리우의 험준한 가베아 산의 깎아지른 암벽 아래에 자리잡아 1950년대 이전만 해도 폭우가 내리면 수몰되기 일쑤였다. 이후 빈민들이 투쟁을 통해 정부로부터 수몰을 막을 물길을 얻어냈다. 호시냐는 현재 도심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다행히 물은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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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최대 파벨라(빈민촌) 호시냐에서 만난 시다데 리아 활짝 웃고 있다. 리아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쓴 브라질 대표 작가 바스콘셀로스를 좋아한다”면서 “작가가 꿈이다”고 말했다.

호시냐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호텔들이 즐비한 세계 3대 미항인 리우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리우에서도 빈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격차감 또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호시냐 정상에서 만난 이곳 주민 시다데 리아(18)의 영어 실력은 유창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번 학교에서 무료로 영어를 배운다”며 “꿈은 작가”라고 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묻자 주저없이 “바스콘셀루스!”라고 했다. 바스콘셀루스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로 익히 알려진 브라질 대표작가다. 리아는 “돈이 없어 대학은 못 가겠지만 공부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대낮 총격전이나 폭력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웃음과 희망은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로 이따금씩 배어나오는 냉소와 불신, 긴장은 어쩔 수 없었다. 올림픽 열기는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혹 삼바 음악에 맞춰 즉흥적인 춤판이 벌어졌지만 이곳에선 스포츠 축제보다 파손된 슬레이트 지붕을 수리하는 일이 더 급선무로 보였다. 리우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이자 영화 <시티 오브 갓>을 연출한 브라질 출신의 페르난두 메이렐리스는 개막식에서 파벨라를 다채로운 색과 경쾌한 음악이 어우러진 대중문화의 산실로 그려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어느덧 파벨라에 어둠이 내렸다. 전기가 들어오는 집들은 하나둘씩 불을 켰다. 파벨라의 불빛은 리우의 어둠을 밝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수명이 다해가는 반딧불이었다. 리우의 속살은 이토록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