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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섹스스캔들이 바꾼 역사 속 장면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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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모라는 의미다. 국가 존망의 책임을 한 여성의 외모에 돌리는 성 차별적 사자성어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권력자의 섹스 스캔들이 상당한 폭발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흐름을 한꺼번에 바꾸어버린 권력자의 섹스 스캔들(혹은 섹스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책을 통해 그 역사를 알아보았다.

1. 목종의 동성애와 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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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년(목종 6) 가을, 천추태후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중년의 나이에 불륜의 씨앗을 잉태한 것이다. 이듬해 여름, 천추태후가 아들을 낳자 김치양은 왕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목종이 여색을 멀리하는 동성애자이니 자기 아들이 차기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이었다.” (책 ‘고려 왕가 스캔들’, 이경채 저)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의 목종은 동성애자였다. 유행간이라는 남자 애인의 이름도 전한다. 그런데 문제는 왕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후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단 1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당연히 자녀가 없었다. 이 때문에 목종의 후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정부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고, 강조 장군은 대량원군을 앉히려고 했다. 결국 강조에 의해 김치양이 죽고 대량원군이 왕위에 올라 현종이 된다. 목종은 폐위되어 죽임을 당한다. 이때 이유 중 하나가 ‘후계할 태자를 아직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출이 아닌 혈통에 의한 후계제도는 이처럼 왕의 성적 지향성에 따라 큰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성적 지향성이 스캔들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2. 퐁파두르 부인과 프랑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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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왕의 정부’라는 자리는 매우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왕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왕의 정부라는 위치로 인해 오명을 얻는 일은 거의 없었다...처음에 루이의 파트너가 된 것은 세 자매였는데...루이는 결국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 퐁파두르 부인을 만나게 된다. 퐁파두르 부인은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어떻게 왕을 매혹시키고 그의 관심을 끌었을까? 당연히 그녀는 빼어난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그녀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도 과연 그렇게 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지...의심스럽다...퐁파두르는 전 분야에 걸쳐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왕의 정부가 되기 전에 그녀는 심지어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같은 유명인사를 접대하고 그들에게 접대받을 정도로 사교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책 ‘스캔들의 역사’, 루스 웨스트하이머·스티븐 캐플란 저)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였다. 무려 20년간 왕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 비결은 육체적 매력만은 아니었다. 지적인 매력이 넘쳤다. 왕에게 정치에 대한 조언을 적절히 하였다. 왕의 도움으로 퐁파두르 부인은 문화, 예술 분야의 후원자로 나섰다. 이때 후원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에 계몽 사상가 볼테르, 루소 등이 있다. 절대 왕정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그 왕정을 무너뜨릴 계몽사상을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만약 퐁파두르 부인이 루이 15세의 눈에 들지 않았다면 프랑스 왕정은 오랫동안 이어졌을까?

3. 호색한 프랭클린과 미국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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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아버지들은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영국군과 미국 반란군의 규모는 2대 1로 차이가 있었다...충분한 전투력을 갖출 여력이 없었으므로 미국은 프랑스의 승인과 무엇보다도 프랑스 육군·해군의 지원을 절실히 원했다...프랑스의 전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감성에 호소하여 구애하고 유혹해야만 했다...파리 주재 미국 대사가 프랑스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려면 마초 기질을 버려야만 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여성들이 살롱을 운영했는데, 이 살롱이 정치적 음모와 사교, 여론의 중심지였다. 미국 대사는 프랑스 여심을 얻어 살롱으로 뛰어들어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음모, 뒷담화, 스캔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했다...대륙회의는 곧 벤저민 프랭클린을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로 선발했다.” (책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 래리 플린트·데이비드 아이젠바흐 저)

위대한 정치인이자 발명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실은 옐로우 저널리즘의 선두 주자였다. 언론인 시절 프랭클린은 섹스와 관련한 가십거리를 거짓으로 지어낸 익명 칼럼으로 신문 부수를 늘렸으며, 이렇게 번 돈으로 여자를 유혹하는데 몰두했다. 본인 스스로가 섹스 스캔들을 만들기도 했고 널리 퍼뜨리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기질이 미국이 독립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을 얻어내는 외교활동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살롱을 운영하는 여인들의 여심을 공략해 프랑스 사교계에 효과적으로 진입했고, 자신을 정력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멋쟁이로 포장해 외교적 주장의 설득력을 높였던 것이다. 스캔들을 일으키고, 다루는 데 능숙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아니었으면 미국의 독립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스캔들은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도 있다.

4. 지퍼게이트와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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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르윈스키 스캔들 때문에 9.11테러가 가능했는지 물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 스캔들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1999년부터 2000년까지 클린턴 대통령이 빈 라덴을 사살할 방침이었다는 것을 기록은 분명하게 보여준다...하지만...클라크 반테러리즘단장은...공격이...당시 상영된 영화 ‘왝더독’이 현실이 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왝더독’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백악관은 테러리즘 대응에 미진했고 미국 제1의 적인 빈 라덴을 추가로 공격하지 못했다.” (책 ‘섹스, 거짓말 , 그리고 대통령’, 래리 플린트·데이비드 아이젠바흐 저)

권력자의 섹스 스캔들이 국가에 치명적인 손해를 끼친 경우도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 사이에 있었던 ‘지퍼게이트’가 대표적이다. 백악관 안에서 벌어진 성 추문으로 클린턴은 벼랑 끝에 몰렸고, 테러 위협 제 1순위였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미루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성 추문을 덮으려 공연히 그런 일을 벌였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빈 라덴은 3년 뒤 9.11 테러를 일으킨다. 만약 ‘지퍼게이트’ 스캔들이 없었다면 미국의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권력자의 섹스 스캔들은 파급력이 강하다. 권력자 본인이 느끼기에 단순한 성생활이라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흐름이 바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