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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김일성보다 못해" 이 한마디에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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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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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김일성보다 정치를 못한다"

서슬퍼런 제5공화국 시절인 1982년 술에 취한 한 50대 남성이 버스 안에서 푸념하듯 이런 말을 내뱉었다. 이 한마디의 취중 발언으로 그는 재판에 회부돼 3년 옥살이를 한 뒤 유명을 달리했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은 이때부터 '빨갱이 부인'·'빨갱이 자식' 취급을 받으며 인생이 송두리째 뒤엉켜버렸다.

그 유족이 34년 만에 가장의 사건 재심을 청구하고 나서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김모(사망 당시 56세)씨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 중 월남했다.

한국에 정착해 가정도 꾸렸지만 사업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이래저래 쌓인 스트레스를 그는 술로 풀었다, 술의 힘을 빌리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일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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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1982년 2월 10일 오후 8시 30분께 청주의 한 시내버스 안. 만취 상태로 버스에 오른 김씨는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막노동 생활을 하는 걸로 어찌 살아갈 수 있겠나. 전두환 대통령 정치가 김일성보다 못하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의 취중 발언을 들은 버스 안내양이 경찰에 신고했고,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김씨는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당시 법원은 그의 발언이 반국가 단체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한 것이라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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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자신이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징역형이 확정돼 꼬박 3년을 복역했다. 1985년 만기 출소하고도 보호감호소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 지병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유족은 김씨의 사망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졸지에 '빨갱이'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됐다가 생을 마감한 김씨의 인생유전도 황당했지만, 유족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김씨 사망이후 따라붙었던 '빨갱이 가족'이라는 주홍글씨였다.

신원조회만 하면 어김없이 불이익을 당했다. 학교에서의 차별은 기본이고, 취업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한국을 뜨려 했지만 당시 당국은 이들에게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반평생을 음지에서 지내야 했던 유족은 3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난해 말 비로소 김씨의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며 청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은 불법체포 등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과 목격자 진술만으로 단순한 술 주정을 친북 활동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유족 변론을 맡은 이선경 변호사는 "김씨의 발언은 설령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발언을 입증할 증거라고는 목격자 진술밖에 없는데다 그 진술조차 수사 단계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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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제4공화국 시절에도 비슷한 일로 옥살이를 했다.

1975년 어느 날 세 들어 사는 집 마당에서 술에 취해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이를 들은 이웃이 신고, 이때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유족의 청구로 재심이 이뤄져 2013년 11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용현 부장판사)는 당시 "김씨의 발언은 시사적인 관심사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잣말로 불평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런 사실만으로 김씨에게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취지라면 1982년 있었던 사건도 당연히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는 게 김씨 유족의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통상 사람을 흉기로 찌르는 중대 범죄를 저질러야 징역 3년형이 선고되는데 술 주정 한마디를 문제 삼아 한 사람의 삶과 그 가족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과거 사법부가 저지른 부끄러운 과오"라고 꼬집었다.

김씨의 재심 청구 사건을 맡은 청주지법 형사합의12부(이현우 부장판사)는 현재 심문을 종결하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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