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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영감을 줄 리우 올림픽 선수 11명의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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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5일, 리우 데 자네이루 2016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장에서 약 200개국의 국기가 펄럭일 것이다. 운동 선수 수천 명이 걸어나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스톱워치가 돌아가고 호루라기 소리가 나기 전에 잠시 자신들이 이제까지 걸어온 여정, 이제까지 성취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들은 노력과 굳센 의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을 바치고 셀 수도 없는 눈물을 흘려 실력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고, 지금은 8월의 리우에 자신의 나라 국가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올림픽 전체에 대한 관점이 어떻든 간에 이 선수들, 그리고 이들이 리우에 오기까지 개인적으로 밟았던 길은 축하할 만하다.

물론 2016년 리우 올림픽은 좀 특이하다. 전세계는 온갖 위험 요소를 떠안고 있는 브라질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 리우 폭력 사건 증가와 수질 오염, 브라질의 정치와 경제 불안정 등이다.

이러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나, 올림픽이 왜 특별한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점수판 뒤의 이야기, 유니폼 뒤의 여정들이다.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중 당신에게 진정 영감을 줄 11명의 선수를 소개한다.

  • 키어런 베한(Kieran Behan)| 체조
    Ian Walton via Getty Images
    그는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두 번이나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그러나 베한은 다시 매트 위로 돌아왔다.

    키어런 베한이 어렸을 때 다리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수술 후 합병증으로 휠체어 신세가 되었을 때는 겨우 10살이었다.

    그래서 채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재활을 통해 다시 체조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훈련 중 높은 바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머리를 다쳤던 것은 정말 큰 타격이었다. 뇌와 내이에 부상을 입어 다시 휠체어에 타야 했다. 의사와 전문가들은 베한이 과연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베한은 이번에도 나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0년에 21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세계 챔피언십 예선전에 출전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무렵에는 아일랜드 사상 두 번째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체조 선수가 되었다. 리우에서는 역대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데 도전하게 된다.
  • 대릴 호머(Daryl Homer) | 펜싱
    Lucy Nicholson / Reuters
    우연히 펜싱을 알게 된 호머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펜싱을 알리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대릴 호머는 5살 무렵에 사전에서 펜싱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브롱스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펜싱에 홀딱 반해, 어머니에게 펜싱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다. 그는 결국 취약 지역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접하게 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피터 웨스트브룩 재단에 가입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는 펜싱계에서 급부상해, 201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호머가 웨스트브룩 재단을 처음 찾아간 지 14년 정도가 지났다. 호머는 자신에게 오랫동안 큰 의미가 되어 준 목표에 헌신하며, 빈민가 아이들에게 펜싱을 소개하는데 개인 시간을 쏟는다.

    “내 지역 사회에서 나는 내가 롤 모델이자 성공의 상징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난 그저 브롱스 출신의 아이라는 것이다. 내가 받은 상들을 떼어놓고 보면 그게 내 진짜 모습이다 … 내 이야기는 당신이 어디 출신이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 유스라 마르디니(Yusra Mardini) | 수영
    Alexander Hassenstein via Getty Images
    작년 여름, 시리아에서 태어난 마르디니는 에게 해에서 자유를 향해 헤엄쳤다. 리우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꿈을 꾸게 해줄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작년 8월, 십대였던 유스라 마르디니는 시리아를 떠나야 했다. 내전이 시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마르디니의 집도 파괴되었다.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 마르디니는 여동생과 함께 레바논을 거쳐 터키로 갔다. 그리고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이 탔던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르디니와 여동생, 다른 난민 한 명이 물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수영하며 배를 밀었다. 그들은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고, 마르디니 자매들은 다음 달에 베를린에 도착했다.

    마르디니는 10년 째 수영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전쟁에 시달리는 시리아에서 정기적으로 연습하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마르디니는 “가끔 훈련을 받는 수영장 안에 폭탄이 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마르디니는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난민 올림픽 팀의 일원으로 8월 올림픽에 참가하려 한다. 자신이 알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지 딱 1년 뒤다. “나는 꿈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당신은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어떤 선수도 할 수 있다.”
  • 로페즈 로몽(Lopez Lomong) | 육상
    Dylan Martinez / Reuters
    그는 ‘수단의 로스트 보이스(Lost Boys of Sudan)’ 중 하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세 번째로 올림픽에 출전하고 메달을 따길 바라고 있다.

    로페즈 로몽은 6살 때 교회에서 납치당했다. 가톨릭 신도였던 그는 2차 수단 내전(1983~2005) 중 생긴 수십만의 수단의 로스트 보이스 중 하나였다.

    “나는 감옥에 갇혀 죽게 내버려졌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그의 마을 출신 사람들이 그의 탈출을 도왔다. 그는 72시간 정도 내내 달려서 케냐에 도착해, 난민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가톨릭 자선 단체가 그가 미국으로 가 거주할 수 있게 도왔다.

    운명이 그를 도운 이래, 로몽은 자신의 삶은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단이라고 여겼다. 2008년 올림픽에서 그는 성조기를 달았다. 2012년에는 5000미터 결승전에서 10위를 차지했다. 로몽이 가장 잘 하는 건 더 큰 꿈을 꾸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브라질에서 좋은 성적을 내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저 ‘로스트 보이스’가 아니다. 나는 미국인이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그가 했던 말이다.

  • 타티아나 맥패든 | 장애인 올림픽 육상
    ASSOCIATED PRESS
    맥패든은 6살 때까지 손으로 걸어야 했다. 현재 맥패든은 세계 최고의 육상 선수 중 하나다.

    하반신 마비 척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타티아나 맥패든이 아기였을 때 어머니는 맥패든을 레닌그라드 고아원에 버렸다. 고아원은 휠체어를 사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맥패든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태어나서 6년 동안을 손으로 걸었다.

    1994년에 미국 보건부 공무원이 그 고아원을 방문했다가 맥패든을 만나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볼티모어로 데려왔다. 오랫동안 손으로 걸어서 팔 힘이 엄청나게 강해진 맥패든은 미국에 온 뒤 휠체어 경주에서 승승장구했다. 2004년, 2008년, 2012년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땄다. 맥패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브티하즈 무하마드(Ibtihaj Muhamma) | 펜싱
    ASSOCIATED PRESS
    미국 팀 선수 최초로 히잡을 쓰고 출전하는 이브티하즈 무하마드는 자신의 위치를 옳은 일에 사용하고 있다.

    무하마드는 출전할 때마다, 발언할 때마다 다양성의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말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세상은 온갖 증오의 추한 발언과 범죄를 목격했다. 무하마드는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나는 인종, 종교, 젠더, 그 무엇도 목표 성취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미국 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 나는 인내한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 클라레사 쉴즈(Claressa Shields) | 권투
    Murad Sezer / Reuters
    쉴즈는 가족을 미시건 주 플린트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을 뿐이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수돗물 문제로 플린트가 뉴스에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도 플린트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실업과 빈곤이 창궐한 플린트에서 당시 17세의 세계 정상급 권투 선수였던 클라레사 쉴즈는 201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플린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쉴즈는 2012년에 금메달을 땄는데도 플린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쉴즈의 가족은 지금도 플린트에서 살고 있다. 쉴즈는 훈련을 계속했고, 올 여름에도 같은 꿈을 품고 리우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금메달을 노린다.

  • 브래드 스나이더(Brad Snyder) | 장애인 올림픽 수영
    Lucy Nicholson / Reuters
    그는 2011년 폭탄 처리반 임무 수행 중 시력을 잃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금메달 2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메달 추가를 바란다.

    아프가니스탄 작전 중 시력을 잃은지 1년 뒤, 브래드 스나이더는 런던에서 손을 뻗어 수영장 벽을 만진 뒤 고개를 들고 팔을 올렸다. 2012년 여름 장애인 올림픽 100미터 자유형 금메달을 딴 순간이었다.

    스포츠에는 재기 이야기가 흔하다. 이런 재기 이야기는 동화와 같다. 스나이더는 올 여름 리우에서 ‘그 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마무리를 짓길 원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그의 임무는 해병대 SEAL 팀 일원으로 폭탄을 해체하는 것이었다고 NPR은 보도한다. 그는 지금도 애국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영장에 들어가 강하고 빠른 스트로크로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다.

    힘들게 살고 있는 남녀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장애인 올림픽에서 거둔 나의 성공이 그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법은 있다, 당신이 다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 그가 2012년에 메달을 딴 뒤 한 말이다.
  • 맷 스터츠맨(Matt Stutzman) | 장애인 올림픽 양궁
    Olivia Harris / Reuters
    ‘팔 없는 궁수’는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길 거부한다. 그는 자신을 세계 기록 보유자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맷 스터츠맨은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었지만, 상상도 하기 힘든 솜씨와 회복력으로 양궁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불가능은 정신 상태다’라는 모토로 스터츠맨은 작년에 댈러스에서 컴파운드 보 최장거리 명중 세계 기록을 세웠다. 310야드 거리에서 명중시켜, 자신의 예전 기록을 80야드 경신했다. ‘팔 없는 궁수’를 자임하는 그는 2012년에 은메달을 땄다. 그가 리우에서 활을 들고 금메달을 노릴 날은 100일도 남지 않았다.
  • 다타뇬 크로켓(Dartanyon Crockett) | 장애인 올림픽 유도
    Harry How via Getty Images
    때로 노숙을 하며 자란 시각 장애인 크로켓은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장애인 올림픽 선수가 되었다.

    퇴행성 안구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크로켓은 1미터 이상 떨어진 곳은 정확히 보지 못한다. 그가 겨우 8세였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떴고, 그의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을 겪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가제트는 그가 노숙을 하며 ‘거의 카페테리아 점심만 먹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버텼다. 그리고 매일매일 매트 위에서, 매트 밖에서 싸웠다. 올해 만 24세인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금메달.

    나는 리우에서 금메달을 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지금도 원한다.”
  • 구오르 마딩 마커(Guor Mading Maker) | 마라톤
    DARRYL WEBB / REUTERS
    그는 수단의 내전에서 피난을 떠났다.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마커는 남 수단의 줄무늬 깃발을 달고 뛰는 게 자랑스럽다.

    구오르 마딩 마커는 어렸을 때 수단 내전에서 문자 그대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뛰었다. 그의 형제 자매 8명이 내전에서 사망했다. 그는 삼촌과 살도록 보내졌지만, 삼촌에게 가는 데는 3년이 걸렸다. 그는 수단 군인들에 의해 강제 노동을 했고, 목동들에게 납치되기도 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후에 카이로를 떠나야 했고 결국 미국에 왔다.

    “나는 수단을 떠날 때 ‘나는 다시는 달리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내게 있어 달리기는 목숨을 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BBC에 보낸 글이다.

    후에 그의 체육 교사가 육상을 해보라고 설득했다. 그는 그 뒤로 내내 달리고 있다.

    그러나 남 수단 시민도 미국 시민도 아닌 그는 자신이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올림픽 선수에겐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에서는 ‘무소속 올림픽 선수’로 뛰었다. 이제 IOC가 남 수단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올 여름 그는 리우에서 자신의 나라 소속으로 뛸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se 11 Olympic And Paralympic Hopefuls Are Legitimately Inspiring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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