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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술버릇, 어떻게 알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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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이 폭로되고 나서 저한테 (어떻게 알았냐고) 전화가 그렇게 오는 거예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상상해서 그린 건데. 회장만이 아니고 잘산다는 놈들이 다 똑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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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성매매’ 의혹 동영상만이 아니었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나올 때도 화제가 됐다. 이 말은 그가 그린 웹툰 <내부자들>에서 나온 게 아니라,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내부자들> 감독이 넣은 말이지만, 애초 만화에서 묘사된 권력의 언어가 너무나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만화가 윤태호는 가진 자들의 말을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제19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를 만나 그것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사 주필이나 대기업 임원들과 식사자리를 할 기회가 있을 때 이들은 일반적 사람들의 사고체계완 좀 다른 게 있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을 어떻게 설정하는지를 예민하게 관찰했지요.”

좀 다른 사고체계란 이런 것이다. “강남 고급 요정 인테리어를 하시는 분께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노인들이 다 벗고 놀면서 젊은 웨이터가 들어와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대요. 스스로를 아예 다른 세계 사람으로 설정하는 그런 태도죠. 벌거벗고 앉아서 ‘이 레코드가 말이야 몇 년도에 무슨 심포니가 연주한 건데 내가 유학 시절에 들었어’ 같은 고급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세계와 정서는 우리 짐작을 뛰어넘죠.” <한겨레> 사이트에 연재했던 웹툰 <내부자들>은 미완이었지만 현실과 만나 완성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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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시작된 부천만화축제에서 ‘삶의 고고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윤태호 특별전은 그가 지나온 완성과 미완의 이력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다. 데뷔작 <비상착륙>(1993)부터 팔꿈치 근육이 찢어져 휴재 중인 <미생>까지 현실과 만화에서 분투하고 미처 답을 얻지 못했던 흔적들이 가득하다.

“데뷔할 때 대원문화사에 6번쯤 퇴짜를 맞았다. 나중엔 스토리는 포기하고 이 사람들이 나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극강의 그림 실력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렸지만 한 번 더 퇴짜를 맞고 결국 서울문화사로 가서 간신히 연재를 시작했는데 인쇄가 돼서 나온 걸 보고 후회가 됐다. 결국 4회 만에 접고 다시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전시된 데뷔작 옆에 “스토리에서 실패한 만화”라고 적었다. 2006년엔 ‘만끽’이라는 유료 사이트에서 <이끼> 연재를 시작했지만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이 19개. 그나마 대부분 담당 편집자나 친구들이 적은 것이었다. <발칙한 인생>은 연재처를 3번 바꿨는데 3번 모두 잡지가 폐간되면서 스스로를 ‘폐간의 아이콘’이라고 여기게 됐다. 전시는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종이만화의 부침과 함께 위기를 겪고 웹툰과 함께 살아난 우리나라 만화사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는 대한민국 사건·사고를 죄다 겪은 주인공을 그린 <야후>(1998)를 두고 “졸업장”이라고 한다. “처음엔 이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걸로 구상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을 사회에 투사하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연재 중간에 큰아이가 태어나니까 세상에 불만이 없어졌어요. 이 아이가 내 사고방식을 모두 이어받겠구나라는 걱정이 들면서 제 형편없는 정서를 졸업하기로 했죠.” 그러나 분노와 불화는 그의 작품을 자라게 하는 큰 씨앗이다. <미생> <파인> <이끼> 등 촘촘하게 설계된 정밀진단서 같은 작품뿐 아니라 <내부자들> <인천상륙작전> <야후> 등 “대자보처럼 써 내려간 만화”들도 큰 울림을 남겼다.

47살에 연 개인전이 ‘고고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 세상의 뿌리를 파헤쳐온 작가의 이력을 표현한 때문일 것이다. 윤태호 특별전은 축제가 끝나도 10월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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