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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 모든 장벽을 넘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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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ary clinton

(필라델피아) - 1968년에 당시 힐러리 로댐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마이애미에서 공화당 전당 대회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공화당원이던 힐러리는 리처드 닉슨을 제치고 대선 후보로 지명되려 막바지 박차를 가하던 넬슨 록펠러 측에 자원봉사할 기회를 얻어 최초의 정치 행사에 참석했다.

클린턴은 2003년 비망록에 “내가 처음으로 대규모 정치 행사를 내부에서 본 게 그 공화당 전당 대회였다. 그 한 주는 비현실적이었고 나를 동요하게 만들었다.”라고 썼다.

당시 20세이던 로댐은 48년 후 자신이 다른 전당 대회에서, 민주당 전당 대회 무대에 서서 미국 최초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지명을 받는 여성이 되리라는 걸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밤 우리는 더욱 완벽한 연합을 향한 우리 나라의 행진에서 중요한 지점에 다다랐다. 처음으로 주요 정당이 여성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내 어머니의 딸로서, 내 딸의 어머니로서 여기 선 나는 이 날이 왔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할머니들, 어린 소녀들, 그 사이의 모든 사람들에게 잘 된 일이다. 소년과 남성들에게도 잘된 일이다. 미국의 장벽이 무너질 때, 모두를 위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천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러니 미국의 1억 6100만 명의 여성들이 얻어 마땅한 기회를 얻을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그러나 오늘밤 우리가 만든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여러 해 동안 함께 써나갈 역사다.”

빅토리아 우드헐이 미국 여성 최초로 대선에 도전했던 1872년부터 대선에 도전한 여성은 200명이 넘지만, 클린턴만큼 백악관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없었다.

클린턴은 2016년 대선이 ‘강력한 세력이 우리를 찢어놓으려 하는’ 미국의 심판의 순간이라고 말 했다.

“우리는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토는 ‘여럿으로 이뤄진 하나’다. 그 모토를 지킬 것인가? 우리는 지난 주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답을 들었다. 그는 우리를 분열시키고 싶어한다. 전세계와의, 우리 서로 간의 분열을 원한다.”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지 말라. 이건 클리블랜드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한 말이었다.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하는 말이다.”

목요일 밤의 행사는 여러 여성들이 평생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클린턴이 무대로 나와 딸 첼시를 만났을 때 대회장에서, 먼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이 많았다.

평생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로 살아오신 93세의 내 할머니가 @HillaryClinton 의 연설을 보며 우시는 걸 보고 있다.

“천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내 손녀들이 오늘밤 힐러리 클린턴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워싱턴 D.C.의 수전 밀러(66세)는 펜실베이니아 중부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92세)가 평생 공화당원이었지만 봄에 클린턴에게 투표하기 위해 당적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92세인 어머니는 여성에게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분했다. 어머니는 이런 날을 보게 될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흥분해서 그 긴 세월을 뒤로 하고 당적을 바꾸었다.”

“30년 동안의 내 노동의 결실을 바라보고 있다. 굉장히 자랑스럽다.” 낙태에 찬성하는 민주당 여성 후보 당선을 목표로 하는 에밀리’스 리스트를 만든 엘렌 맬컴의 말이다. 에밀리’스 리스트는 1985년에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정치 행동 위원회 중 하나가 되었다.

클린턴은 기나긴 여정을 거쳤다. 클린턴이 처음으로 전국적 관심을 받은 것은 웰슬리 대학 학생이던 1969년이었다. 동기들은 웰슬리 최초로 졸업식 연설을 할 학생으로 힐러리를 뽑았다. 학생회장이었던 힐러리는 자신의 세대를 대표해 연설을 하며, 자신들은 아직은 권력과 리더십을 가진 자리에 가지 못했지만 ‘반드시 필요한 비판과 건설적 시위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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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웰즐리 대학 졸업반이던 힐러리 로댐의 졸업식 연설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BOSTON GLOBE VIA GETTY IMAGES

이 발언은 힐러리가 무대에 올라가기 전 에드워드 브룩 상원의원이 했던 발언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브룩은 시위의 효과와 필요성을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라이프가 힐러리에 대한 기사를 썼다. 힐러리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전국에서 연설을 했다.

그러나 정말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치인의 배우자로서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역할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민주당 진보 세력들이 클린턴에게 회의를 품지만, 민주당 지배층에서는 진보의 풍파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간주되곤 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였을 때 결혼 전의 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중에 영부인으로서 의료 TF를 이끈 것은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칸소, 영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치며 클린턴은 정치의 성차별에 대한 사례 연구감이었다. 클린턴은 엄청나게 꼼꼼한 검토를 거쳐야 했다. 헤어스타일, 옷, 목소리, 호감가는 사람인지를 사람들은 살피고 또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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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을 따라 아칸소주로 이주했다. 사진은 1982년, 빌 클린턴의 주지사 당선을 축하하던 두 사람의 모습. ⓒAssociated Press

선출직 공무원 선거에 나오는 여성들에 대한 분위기는 여러 해 동안 극적으로 바뀌었으나 여성들은 지금도 장애물을 마주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람들은 클린턴이 더 많이 미소를 지어야 하고 소리를 질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남성 라이벌들은 그런 말을 전혀 듣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어려움,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클린턴의 끝을 모르는 능력이 클린턴의 지지자들을 묶어 주었다. 클린턴 유세와 필라델피아 전당 대회에 참석한 여러 여성들은 클린턴에게 공감을 느끼며 클린턴이 드디어 정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워싱턴 D.C.의 비키 사포타(63세)는 트럭 운전사 노조 최초의 여성 조직자다. 사포타는 노조 운동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끝없이 시험을 거친다고 말했다. 자신이 성공하면 남성 동료들은 억울해 한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을 위해 길을 닦는다는 게 어떤 건지, 최초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나는 이해한다. 그리고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클린턴은 전통적인 주에서 전통적인 역할을 공개적으로 맡아서 ‘미안하지만 이걸 하겠다.’고 말하지 않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클린턴은 그냥 해버렸다.” 캘리포니아 대의원 안드레아 비야의 말이다. 비야는 힐러리 지지 배지를 잔뜩 달고 ‘품행이 바른 여성이 역사에 남은 적은 거의 없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빌 플랫[루이지애나 주] 최초의 여성 시장이었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해 감정적, 감상적이 된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최초의 여성 후보를 보고 있다.” 제니퍼 비드린(57세)의 말이다.

최초의 여성 후보가 탁월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이 여성들을 자랑스럽게 한다. 그들은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클린턴이 ‘형식적’으로 후보가 된 것으로 치부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남성 라이벌들에 비해 자격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은 여성 후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과 같은 일을 하는 여성들은 지금도 남성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나는 드디어 클린턴의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 클린턴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대통령보다 영리하다. … 클린턴은 놀랍다! 앞으로 저런 사람이 또 나오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오래 전부터 클린턴의 팬이었다는 매사추세츠 주 슈루즈베리의 로버타 골드맨의 말이다.

“이번이 특히 좋은 것은 힐러리가 가장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능한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클리블랜드 주민 테리 해밀턴 브라운(54세)의 말이다. 브라운은 흑인 대통령에 이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할 수 있다는 생각은커녕 흑인 대통령을 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은 공공 서비스에 오래 몸담아 온 것 때문에 기득권의 일부라는 비난을 받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과 함께 클린턴의 발목을 잡고 있다. 클린턴의 지지자들은 이것이 이래도 저래도 손해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정도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미국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까?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시스템의 일부로 지내지 않고 이런 자격을 얻을 수가 있는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정치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것이 정말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서 장벽을 허문 방법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여성이 정치에 입문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퓨 연구 센터에 의하면 1916년부터 1980년까지 여성 하원의원은 90명이었다. 이중 34명이 남편의 선거구에 출마했거나 남편이 죽은 뒤 대신 출마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남편이 누구인지 아는 여성 정치인을 더 편하게 여겼다.

자신의 나이가 ‘65세 이상’이라고만 밝힌 아이오와에서 온 수녀 잰 체불라는 대회장 가장 위 구역의 맨 마지막 줄에 앉았다. 전망이 좋진 않았지만, 체불라는 ‘마침내 이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나는 나이가 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자랄 때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는 없었다.” 체불라는 젊었을 때 여성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누가 말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묻자 몇 초 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여성들에겐 기회가 훨씬 더 많다. 이제는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이 저런 롤 모델들을 보고, 그건 큰 영향을 미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America Has Finally Put A Woman At The Top Of The Ticket'(영어)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Becoming Hillary Clinton -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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