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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와의 첫 만남을 민주당 전당 대회 무대에서 털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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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지 25년 뒤인 지금, 빌 클린턴이 아내가 승리를 거둔 민주당 전당 대회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했다.

“저는 1971년 봄에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미국의 42번째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을 45번째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 유권자들이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는 여성을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시도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이메일 서버’, ‘화이트워터’, 혹은 공화당원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논란들과 연결시키지만, 빌 클린턴은 43분(그의 연설치곤 짧은 편이었다) 동안 그들의 연애, 부모가 된 것, 힐러리가 딸 첼시의 기숙사 서랍장에 속지를 까는 동안 딸을 대학에 데려다 준 이야기 등을 자세히 했다.

“우리는 평생의 기억을 쌓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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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자신의 아내의 근면함, 꼼꼼함을 섞어 넣었고, 재미있는 연설을 잘 못 하는 것을 미덕으로 바꾸려 했다.

“이런 연설은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일을 하는 게 힘들죠.” 그는 힐러리가 아칸소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공립 학교들을 개선하기 위한 개혁들을 설계한 것, 나중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연방 어린이 건강 보험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을 설명하며 말했다.

클린턴이 효과적이고 정부가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정부를 궁극적으로 잘라내고 싶어하는 클린턴의 정적들을 두렵게 만든다고 그는 말했다. “정부는 언제나 나쁘고 간단한 일조차 실패할 거라는 이론에 기반해 선거에서 이긴다면,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진정한 위협이 된다.”

클린턴은 진짜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주에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이유가 이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한 말과 그들이 한 말 사이의 차이가 뭐죠? 그 두 가지를 어떻게 합칠 수 있을까요? 합칠 수 없습니다.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지어낸 것이거든요.” 그는 공화당원들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일한 방법은 만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만화로 대체하는 것이죠. 그들은 만화와 싸우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의 추천사는 그의 임기 마지막 해에 시작된 두 사람의 역할 역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 법무장관에서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25년 정도 동안 그의 옆을 지켰던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정치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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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이 지금 연설을 한 민주당과 미국은 그가 대선 후보가 되었던 1992년의 민주당, 미국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당시 민주당은 이전 대선 10번 중 단 3번만 승리했고, 그 중 하나는 워터게이트 이후 1976년에 지미 카터의 승리였다.

빌 클린턴과 같은 민주당원들은 더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야만 공화당들이 꽉 틀어쥔 선거인단들을 빼앗아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 3의 후보 로스 페로가 공화당 표를 갉아먹는 가운데 그는 그런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루이지애나, 조지아, 테네시, 켄터키, 웨스트 버지니아, 자신의 고향 아칸소에서 이긴 것이다.

올해 힐러리 클린턴은 아마 저 주들 중 아무 곳에서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기지 않아도 된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버지니아 등에서 흑인과 라틴계 유권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은 블루 독[주: 보수적 남부 출신 민주당원]이었다. 빌 클린턴은 더 보수적이었다. 이기려면 그래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훨씬 더 리버럴해지고 있다. 훨씬 더 진보적이 되고 있으며 난 그게 아주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미시건 주 대의원 레베카 바하-쿡의 말이다.

“난 그게 당이 달라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보고 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뉴욕 주 대의원 맥신 아우터브리지의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역사적인 화요일 전당 대회는 최초의 사례들을 낳았다. 빌 클린턴은 주요 정당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될 가능성이 생겼고, 11월에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한다면 그들은 최초의 대통령 부부가 된다.

이런 가능성들은 처음부터 거론되었다. 1992년 선거 운동 때 자신의 아내의 정책 능력을 두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얻는’ 격이라고 광고했다. 모든 유권자들이 그걸 환영하지는 않았고, 1994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이끌던 의료 개혁이 실패한 이후 힐러리 클린턴의 역할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정치적 야심을 숨기다 빌 클린턴의 두 번째 임기 말에 뉴욕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원의원에 재선된 다음 대선을 노렸으나, 버락 오바마의 놀라운 기세에 눌렸다.

전당 대회에 모인 민주당원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조언자 역할을 맡게 될 빌 클린턴과 영역 다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모든 배우자는 영향을 준다. 내 아내는 내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결국 결정은 언제나 대통령이 한다. 하지만 격려를 해주거나 혼을 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걸 해줄 수 있는 건 아내나 남편뿐이다.” 조지아 주 대의원 존 올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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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은 이제 대통령 재임 기간의 두 배 가까이를 전직 대통령으로 지내왔다. 이 16년 동안 빌 클린턴은 민주당 선거 유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었다. 최근에야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앞질렀다.

오바마마저도 4년 전에 그에게 기댔다. ‘최고 설명가’ 역할을 맡겨, 공화당의 공격을 받던 오바마 초선의 경제 성과를 설명하게 했다. 그는 역할을 잘 해냈고, 오바마가 설문 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에 비해 상당히 앞서나가는데 기여했다. 오바마의 리드 폭은 선거일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빌 클린턴은 처음 대선에 도전하는 아내의 대리인을 맡았던 2008년의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 두 번의 임기 동안 그를 도왔던 노동 계급 백인 지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도 했지만,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맞수였던 버락 오바마에 대한 즉흥 공격 때문에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허핑턴포스트US의 Bill Clinton Tells Democrats How He Met Their Nomine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