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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생각해보면 '막장'의 요소가 다분한 유명 소설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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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막장드라마'가 반복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생의 비밀, 불치병, 파국적 사랑, 기억상실증의 총출동이다.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이야기가 ‘막장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설정들이 단지 한국의 TV드라마에서만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까? 세상 모든 이야기들은 같은 자양분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고전이라고 불리거나, 예술이라 불려온 문학 작품 속에도 심심찮게 ‘막장’ 느낌의 설정이 등장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을 ‘막장’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인간적 고뇌와 인과관계, 그리고 다양한 은유를 충분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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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애인 찾아가 매달리기

"아, 옛날이 그리워 옛날이 그리워서 이렇게 찾아왔소,/다시 아니 오려던 땅을 이렇게 찾아왔소,/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아하, 어떻게 있소, 처녀 그대로 있소? 남의 처로 있소! 흥,/역시 베를 짜고 있소? 아, 그립던 순이여!/나와 같이 가오! 어서 가오!/멀리 멀리 옛날의 꿈을 들추면서 지내요./아하, 순이여!" (책 '국경의 밤', 김동환 저)

익숙한 상황부터 살펴보자. 떠나간 애인을 못 잊어 이미 결혼한 그를 찾아가 울고불고 하는 이야기는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다. 교과서에서 배운 ‘국경의 밤’에도 등장한다. 이미 밀수꾼의 아내가 된 옛 애인 집 앞에 가서 청년은 무조건 자기랑 같이 떠나자고 매달린다. 막장의 기본은 이런 상황이 조용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감정이 절대적으로 우선인 주인공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줘야 제대로 된 ‘막장의 각’이 잡힌다. 드라마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은 생각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2. 가정의 평화를 깨는 그놈의 사랑

"들어가게 해주세요. 들어가게 해주세요!" "당신은 누구요?" ..."캐서린 린튼이에요."..."제가 돌아왔어요. 벌판에서 길을 잃었던 거예요!...20년 동안 떠돌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들어와! 들어와!"하고 그는 흐느꼈다. "캐시, 제발 들어와. 아, 제발...한 번만 더! 아! 그리운 캐서린.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줘. 캐서린, 이번만은!" (책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저)

정통 막장의 묘미는 사랑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을 말아먹는 커플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명 ‘브레이커플’. 소설 <폭풍의 언덕>이 1847년 등장했을 때는 ‘막장’ 느낌의 설정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 언쇼가 데리고 온 히스클리프와 사랑에 빠지는 그의 딸 캐서린,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가 못마땅한 언쇼의 아들 힌들리.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캐서린을 ‘오해’한 히스클리프의 광기와 그로 인해 자신을 길러준 집안을 향해 시작된 복수 등 ‘막장드라마’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이어진다. (이 정도는 약하다 싶어 귀신마저 나온다!) 어떤가? 170년 전 작품이 이 정도라면, ‘막장드라마’ 작가들은 조금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3. 납치와 감금도 사랑의 이름으로

"...그녀가 가서 보니 그는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고, 귀향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가운데 그의 달콤한 인생은 하루하루 흘러갔으니 그에게는 더 이상 요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밤에는 속이 빈 동굴 안에서 마지못해 원치 않는 남자로서 원하는 여자인 그녀 곁에서 잠들곤 했다. 그러나 낮이면 그는 바닷가 바위들 위에 앉아...눈물을 흘리며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바라다보곤 했다." (책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설정 중 하나는 납치, 감금이다. 직접하는 경우보다는 사람을 시켜서 하는 경우가 많다. 형법 276조 1항에는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277조 1항에는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하여 가혹한 행위를 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에서 '납치'와 '감금'은 종종 사랑의 행위로 묘사되곤 한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어떤가. 그느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요정 칼립소의 섬에 무려 7년 간이나 붙잡혀 그녀와 함께 산다. 조난된 한 남자를 구한 여자가 알고 보니 은인이 아니라 악인이었다는 설정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4. 금기를 넘어선 욕망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책 '롤리타', 블리디미르 나보코프 저)

‘막장’을 이야기할 때 이 소설을 빼놓을 수 있을까? 출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문제작이다. 고작 12살 밖에 안 된 소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 험버트가 주인공이다. 작가 나보코프는 진정한 ‘막장’은 막무가내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집안을 말아먹는 것도 아닌 내 감정에만 취해 폭력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태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싸구려 ‘막장드라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 작가의 유려한 문체 덕분일까?

5. 막장의 끝은 살인

"...인간의 냄새 그 자체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거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대용품 향수만 갖고도 인간의 냄새는 충분히 흉내 낼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 즉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들이 바로 그의 제물이었다." (책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소설 '향수'에서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의 냄새를 훔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인물이다. 그 과정과 결말에 대한 묘사는 공중파의 ‘막장’ 드라마라도 절대 담지 못할 충격으로 가득하다. 그 수준이 어떤지는, 직접 읽어보고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