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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순간 웃음이 터지는 '특이한 마을 이름' 모음(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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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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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 야릇하고 재미난 이름붙은 전국 방방곡곡 마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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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안 했것소. 이름 거시기혀서 못살 것다고, 주민 서명 받아갖고 청원도 허고 호소도 겁나 해봤는디, 안 되아부러야.”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월경리 김상욱 이장의 말씀이다. 어떤 점이 불편할까. “여그서 시집간 새댁은 월경댁이제. 여그 출신은 고관 나으리도 월경 양반이라고 불러.” 김씨는 “버스 타고 내릴 때도 운전기사가 일부러 ‘월경 나와요’ 한다”면서도 “오래 살다보니 정겹긴 하다”며 웃었다. ‘월경’은 이웃 마을과 넘나드는 경계 지역 마을을 뜻한다.


이렇듯 야릇한 마을이름을 바꾸려고 주민들이 애쓰다 포기한 곳이 여럿인데, 요즘은 오히려 이름이 특이해서 좋다는 분위기도 있다. 심지어 이름 덕에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마을도 생겼다. 길 따라 표지판 따라 찾아들어가 만난, 재미있는 이름의 마을들을 소개한다.

“도라이지. 아주 옛날부터 도라이여.” 가평 돌아위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60년 전 목포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79)는 마을이름을 정확히 ‘도라이’로 발음했다. 돌아위는 ‘돌아서 위쪽’ 또는 독바위·돌바우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또라이’라는 비속어가 생기기 전부터 도라이였으니, 굳이 이름 바꿀 필요는 없었을 터다. 옛 주민은 세 집뿐, 돌아위엔 외지인 펜션들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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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이정표로만 남은 포천 요꼴(요골·그릇 굽던 가마가 있던 골짜기)을 거쳐, 꽃집도 열쇠집·치킨집도 반갑게 인사하는 화성 안녕동과 요리(요골에서 나온 지명)의 요리교회·요리경로당 보고, 용인의 유방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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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는 ‘여성특별시’를 구호로 내건 고장이다. 여성우대·양성평등 정책을 펴겠다는 뜻인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찬반 여론이 분분하다. 좌우간 유방동은, 동네 이름에 걸맞게 백옥대로(용인 백옥쌀 상표에서 나온 이름) 옆에 자리한, 유방타운·유방유통·성인아파트 같은 상호·간판들을 거느린, 푸근하고 큰 동네였다. ‘유방12통 게시판’엔 ‘치안 간담회 알림’ 한장 달랑 붙어 있어 썰렁했지만, 유방어린이공원 주변에는 엄마·아이들이 햇살처럼 반짝이며 놀고 있어 정답고 따스했다. 유방동(유방리)은 일제강점기에 유곡과 방축동을 합치며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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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는 용인 통곡마을(통골)과 유능한 산업전사들의 산업단지가 포진한 안성 무능리를 지나 음성군 생리로 들어섰다. 고추 생산량이 많은 생리는 ‘고추 먹고 맴맴 동요 발상지’로 불린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사정리가 있다. 사정리경로당은 문이 잠겼고, 사정국민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다. 두 마을엔 모두 마을이름을 딴 저수지가 있는데, 생리저수지(소류지)는 작고, 사정저수지는 제법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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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없이 쏟아지는 빗속에 차를 몰아 밤이 깊어서야 충주시 야동리에 도착했다. 전국에 ‘야동’ 지명이 숱하지만, 이곳은 방송에 소개되면서 제법 이름이 났다. 야동초등학교·야동성당(야동공소) 보러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온다는 곳이다. 그럴 정도니, 야동초등학교 교문 앞 팔랑개비공원에 한 어린이가 ‘야동, 내가 사랑하는 곳, 어른들이 궁금해하는 곳’이란 소개글을 써놓았을 터이다. 그나저나, 매일 귀청 찢는 소리로 이착륙하는 공군비행장 소음에 전교생 28명 어린이들이 ‘모두가 행복한 야동 교육’(학교의 구호)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이제 야동리 신작로엔 야동주유소·야동휴게소도 새로 들어서 성업중이다. 야동은 쟁기·무기를 만들던 야곡(풀무골)에서 나온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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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 한장 없이 잘 산다”는 문경 각서리. 각서리 마을회관에선 잔치판이 벌어졌다. 복날을 앞두고 부녀회에서 삼계탕 60그릇을 마련해 어르신들을 모시는 자리였다. “드가소. 한 그릇 하고 가소.” 이장님 강권에, 각설이 타령 한번 안 하고 푸짐한 삼계탕 상차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읍장님도 파출소장님도 마을위원장님도 함께한 자리였다. 어르신들은 새로 임명된 이장 자랑이 대단했다. “업장님(읍장님), 보소. 여자 이장이라꼬 무시하지 말고, 잘 쫌 봐주이소. 어이욕이(의욕이) 대단해이요. 이래 이뿐 이장 또 어딨나.”

다소 소란했던 각서리에 비해 이웃한 고요리는 정말 고요했다. 고요리 성황당과 고요교회가 나란히, 고요히 자리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멀리 문경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더들까지 고요히 날고 있어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다만 고요리 복지관 처마 밑에 줄줄이 집을 지은 제비들 소리만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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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잔 생각나는 군위군 마시리를 지나 안주 생각도 나는 파전리를 거쳐 구미시 고아읍 파산리를 찾았다. 어르신들 둘러앉은 파산리회관 앞 평상 분위기는 파산 그 자체였다. “아무리 바꿀라 캐도 안 바까 주는 기라.” 파산리 이장님은 옛날 지명인 보평(봇들)으로 변경 요청을 여러번 했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여가 고아읍 파산리라. 여 사람들은 고아식당에서 밥 묵고 고아성당 다니고, 아덜은 고아초등학교 다녀요. 살기는 파산리 살고.”

그래도 파산리는, 영동군 돈대리 마을 거쳐 도착한 고자리에 비하면 나아 보였다. “고자가 어때서. 화합만 잘 되면 되지. 공기도 좋지, 경치도 좋고.” 뭔가 좀 하고 나서 자야 할 것 같은 하고자리 경로당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할머니들의 말씀엔 고자리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상·하 고자리는 민주지산 자락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고자’는 ‘고정’(높은 언덕의 정자)을 한자로 잘못 적으며 나온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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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교회 하나 없는 무주 사탄마을(모래여울) 지나, 거창 유령마을(누룩재·느릅재)과 곡성 월경리를 들여다보고 순창 대가리에 이르렀다. “이름이 거시기혀서 방송도 쪼깨 탔지라.” 대가리 경로당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며 이장님이 말했다. “크게 아름답다는 뜻잉게, 나쁘지 않제라. 딱 한번 들으면 안 잊어불고.”

굴비로 영광된 이름을 누리고 있는 영광에선 우선 고참마을에 들러 인사한 뒤, 상사리와 하사리를 차례로 둘러봤다. 동해안 바위 경관 뺨치는 서해안 드라이브 코스인, 백수 해안도로를 감상하고 굴비백반까지 먹었으니, 이번 3박4일 마을이름 여행은 빠듯하긴 했어도 영광스럽게 마무리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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