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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에서 지적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농장 주인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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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인 일명 '만득이' 고모(47)씨가 청주 오창의 김모(68)씨 축산농가에 끌려 간 것은 19년 전인 28살 때다.

어머니(77)와 누나(51)가 있었지만 가족은 고씨가 김씨 농장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고씨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행방불명 신고를 하고, 지금까지 생이별했다.

고씨처럼 지적 장애가 있는 칠순의 모친은 지적 장애인 고씨가 험한 세파를 가족의 울타리조차 없이 홀로 견뎌낼지 노심초사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같은 하늘 아래 온전히 살아 있기라도 하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 고씨의 주민등록이 말소되지 않기만을 기다렸다.

노모가 자식을 잃은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19년동안 고씨는 혈기왕성한 젊은 날을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이 축사에서 보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난 뒤 누운 잠자리에서 생이별한 어머니가 떠올라 눈물을 쏟아냈지만 정든 집을 찾아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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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이 생활한 축사

소똥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저녁을 걸러야 했다. 농장주 김씨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어도 저항할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소심한 항거'라고는 잠시나마 축사 밖으로 도망치는 정도였다.

일종의 '가출'이지만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못했다. 저녁을 못 먹고 뛰쳐나왔던 지난 1일 밤에도 축사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공장 주변을 어슬렁거린 게 전부다.

고씨는 이곳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만났다. '농장에 돌아가기 싫다'고 건넨 말 한마디 덕에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고씨는 행방불명 처리된 지 19년 만에 생이별했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됐고, 자신의 고씨 성도 되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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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강제노역 아들 19년 만에 모친 상봉.

지적 장애 2급인 고씨의 고향은 청주 오송이다. 강제노역한 오창 축사에서 불과 18㎞,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집까지 돌아오기까지 무려 19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고씨가 만득이로 불리기 전에 일했던 곳은 충남 천안의 양돈 농장이다. 지인의 소개로 2∼3년간 이곳에서 일을 배웠다.

그가 번 돈은 집안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적 장애가 있는 그였지만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누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했다.

명절 때는 농장주가 고씨를 오송의 집으로 데려다주고, 그의 어머니가 가끔 천안 축사를 찾기도 했다. 어머니와 누나 역시 지적장애인이었지만 단란한 가족이었다.

이런 행복은 1997년 여름 깨졌다. 고씨가 천안 양돈농장에서 홀연히 사라져 행방불명됐다.

양돈농장 주인 A씨는 "막내아들처럼 여기던 아이가 점심 무렵 갑자기 사라져 주변 아파트 건설 현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혼자 버스도 못 타는 고씨는 실종 직후인 그해 여름 김씨 부부가 운영하는 오창의 축산농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 중개인의 손에 끌려서다. 김씨는 소 중개인에게 사례비를 건넨 뒤 고씨를 넘겨받았다. 고씨는 그때부터 '만득이'로 불리며 이 축사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축산농가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인부를 구하는 것이다. 쌓이는 분뇨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겹고 해충도 들끓는다.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일꾼을 못 구해 가족끼리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오창 김씨 축사에 온 고씨의 행적이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고씨가 천안 축사에서 제발로 나와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소 중개인을 만나 오창 김씨 축사로 온 것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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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지적 장애인이 생활한 쪽방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 잘하던 그가 소 중개인에게 새 일터를 부탁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적 장애가 있어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의 의사 표현조차 제대로 못 하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느닷없이 천안 농장이나 가족과 연락을 끊고 야반도주하듯 오창으로 와 스스로 19년 강제노역을 했을리 만무하다.

소 중개인이 천안의 양돈농장에서 알게 된 고씨를 눈여겨보다가 남몰래 데려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부를 구하기 어려웠던 김씨가 소 중개인에게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다.

어떤 연유로 고씨가 가족은 물론 일하던 천안 축사에조차 알리지 않고 홀연히 오창 김시 농장에 흘러들게 됐는지, 그 경위를 이제 와서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진실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 중개인이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소 중개인에게 인부를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가 고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가혹행위를 했는지 조사하는 한편 소 중개인이 고씨를 김씨 농장에 데려온 경위도 면밀하게 파악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소 중개인이 사망해 김씨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만득이가 천안에서 27㎞나 되는 오창으로 옮겨가게 된 경위를 샅샅이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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