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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학과 해외취업도 이 흙수저를 금수저로 만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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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7월 1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 30대 직장인과 대학생 중 90%는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보는 이유 중 1위가 금수저와 흙수저의 존재다. 그런데 1100여년 전에도 자신이 흙수저임을 괴로워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최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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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아버지는 없다. 그러나 최견일의 고민은 더욱 컸다. 아들 최치원이 무척 똑똑했는데 신분은 6두품이었기 때문이다. “제 꿈은 장관입니다.”라고 아들이 이야기하면 “아니, 네 꿈은 차관이어야 한다.”라고 답을 해 줄 처지였다. 당시 장관은 귀족인 진골의 것이었다. 당시 경문왕은 공부를 권장하는 임금이었다. 결국 최치원 부자는 당나라 유학을 결정한다. 아버지는 전라도 영암에서 배를 타는 12살 최치원에게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경우 보통 자녀들은 ‘아빠 너무 하시네. 유학 가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부터 실컷 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매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들이 백(100)을 하면 천(1000)을 하는’ 노력을 한다. 그 결과 당나라에 들어간 지 6년 만에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수석 합격한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이름을 드높인 것은 고병장군 밑에서 종사관을 할 때다. 소금장수 출신 황소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면서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을 짓는다. ‘황소를 물리칠 이유밖에 없으니 물리치고야 말겠다’는 당연한 내용이지만 워낙 설득력 있게 써서 그것을 읽은 황소가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소의 심리 상태 역시 꽤나 불안정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반란을 성공시킬 만한 위인도 되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황소 덕분(?)에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전국구 스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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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신라도 날 알아주겠지!’ 최치원은 28세에 귀국을 결심한다. 노력하는 천재형이었고 당나라 과거 시험 수석 출신에 글로 널리 이름을 떨친데다가 선진 학문인 유학까지 익힌 자신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 다 해먹는 신라 귀족의 ‘독식 정신’을 과소평가했다. 16년 전 유학을 떠날 때의 고국과 똑같았다. 여전히 진골의 세상이었다. 그래도 기회를 노려 보았다. 삼촌 겸 내연 관계였던 김위홍이 죽자 진성여왕은 더욱 정신줄을 놓는다. 최악의 여왕이 되기로 마음 먹은 사람 같았다. 이때다 싶었던 최치원은 나라를 위기에서 건질 10여가지 방안(일명 시무 10조)을 왕에게 내놓는다. 그렇지만 잡아탄 열차의 행선지가 잘못 되었다. 여왕은 명목뿐인 왕이었고 나라의 주인은 귀족이었다. 흙수저를 벗어나고자 당나라로 유학 갔던 최치원은 자신의 프로필에 주렁주렁 훈장을 달고 왔지만 소용 없었다. 진골 앞에서는 그래 봤자 6두품이었다.

현실에서 좌절한 최치원은 학문과 집필에 몰두한다. 바깥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었다. 산 속에서 산신령이 되었다는 설까지 있다. 무능한 조정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표시였다는 주장도 있다. 유불선 세 사상을 넘나드는 대단한 사상가였지만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슬펐을까?

신라 말기 흙수저들의 고민은 같았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곳을 찾고 싶어했다.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한 신라 사람은 총 58명이었다. ’신라 3최’, ‘1대 3최’라고 불리는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등 최씨 삼총사 역시 당나라 빈공과 급제자들이다. 최치원은 현실에서 좌절했지만, 최승우는 후백제의 견훤을 도왔고, 최언위는 고려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그나마 최승우와 최언위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최치원의 삶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이 글은 여러 책을 인용했다. 책 '중국의 최치원 연구'(하진화 저), 책 '한국철학사상사'(한국철학사연구회 엮음), 책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1'(전국역사교사모임 저), 책 '종횡무진 한국사'(남경태 저) 등이다. 최치원이 지은 좋은 글을 만나보고 싶다면 최치원의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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