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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가뭄에 신음하는 인도의 시골 : 바싹 마른 땅, 농부들의 자살, 원치 않는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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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티캄가르 - 28세의 락쉬만 팔은 지난 몇 년 간 작은 밭에서 밀을 재배해 왔다. 매년 그는 비가 오길 바랐다. 하늘을 보며 늘 내리던 소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그의 작물은 결국 시들어 죽어 버렸다.

지난 5월 초, 팔은 먼 하리아나 주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250루피(약 4,300원)을 받았다. 그의 가족 중에서 그를 포함해 16명이 다른 도시로 이주해 일을 해야했다. 여성, 어린이, 나이든 가족들은 집에 남았고, 더 젊은 남성들이 농사를 맡았다. 팔은 은행 대출을 받고 지역의 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암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비를 댔다. 그는 지금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신이 사는 마을 카크론에 돌아온 팔은 빚을 졌을 뿐 아니라 밭에는 물이 없고, 수확할 작물도 없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도 없고, 어머니의 치료비도 없었다.

결국 그는 5월 중순 어느 새벽, 밭에서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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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5월 말, 일주일 동안 차를 타고 인도 중북부의 넓은 시골 분델칸드를 돌아다녔다. 월드포스트 출장이었다. 7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이 지역은 우타르 프라데시 주와 마디아 프라데시 주에 걸쳐 있으며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곳 중 하나다. 주민들은 대부분 열악한 마을에 사는 빈곤한 농민들이다. 그리고 이들도 전세계 3억 3천만 명을 괴롭히고 있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중이다.

가뭄 위기가 심해지면서, 1960년대에 농업 혁명을 일으켜 곡물 생산이 크게 증가했던 인도에서는 이제 농부들이 빚과 절망 속에 죽어가고 있다. 농부들은 종자, 비료, 장비를 사느라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빚은 자녀와 손주들에게까지 상속된다.

팔과 같은 경우가 인도 전역에 반복되는 상황은 무서울 정도다. 지난해 4월에서 10월 사이에 마디아 프라데시 주에서만 2,200명 이상의 농부들이 자살했다고 하며, 2014년 전국 자살자 수는 12,000명이 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분델칸드에서는 가뭄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 기후 변화 때문이기도 하고, 효율적 관개 조직이 없는 영향도 있다. 역사적으로 강수량이 많지 않았던 이 지역은 말라 비틀어진 황폐한 땅으로 변하고 있다. 지하 저수지는 위험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농업은 침체를 겪고 있다. 온도는 계속해서 37도 이상이다. 가끔은 46도까지 치솟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가뭄이 심해졌으며, 매년 찾아오던 농업에 필수적인 몬순은 불규칙해졌다. 2003년부터 2010년 사이에 특히 가뭄이 심했다. 2011년에는 비가 훨씬 많이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상치의 500% 이상이 내리기도 해, 홍수가 많이 일어났다. 2012년과 2013년의 몬순은 실망스러웠고 2014년에는 다시 가뭄이 찾아왔다. 가뭄은 지금도 여전하고, 언제나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호수, 강, 우물의 연결망은 거의 완전히 마르다시피 했다.

카크론에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작은 마을 디콰하의 흙길에서 나라인 싱은 웃옷을 벗고 벽돌집 사이를 걷는다. 그는 65세고, 원래 키는 180센티미터였지만 수십 년 동안 힘든 노동을 한 결과 허리가 굽어 지금의 키는 120센티미터다. 그는 평생 농사를 지었다. 젊었을 때는 공무원이 되어보려 했지만 뇌물을 주어야 했는데 그에겐 돈이 없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싱은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사러 근처 시장에 갔다. 인도 대법원은 최근에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식량을 무료로 배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아직 여기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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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투성이인 이 지역에서 차를 몰고 지나가며 마주치는 마을들은 대부분 텅 빈 쓸쓸한 곳들이다. 죽은 나무, 죽은 소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호수와 강에 물은 없었다. 이 정도의 열과 건조함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작물은 거의 없다. 분델칸드는 ‘인도에서 농부로 살기 가장 나쁜 곳’이라 불렸다. 몬순 철이 막 시작되었지만, 몇 년 간의 가뭄이 토양을 너무나 심하게 손상시켜, 비가 오면 표토가 머금지 못하고 그냥 흘러 넘쳐 버린다.

디콰하에서 몇 시간 정도 가면 가롤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52세의 아비크 사하는 이 가뭄을 후줄그레하고 탄압받는 사람들이 귀한 물을 놓고 다투는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비유했다. 사하는 자이 키산 안돌란이라는 농부 권리 운동에 몸담고 있다. 사하는 분델칸드의 가뭄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고 월드포스트에 말했다.

사하는 지난 50년 동안 연구소에서 만든 종자가 이 곳에 도입되었으며, 농부들이 수십 년 동안 길러왔던 오래된 토착종들을 밀어냈다고 한다. “연구소에서 만든 종자는 통제된 환경에서는 아주 잘 자랄지 모르지만 분델칸드처럼 가뭄이 길고 살기 힘든 온도인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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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고온은 가축들에게도 큰 해를 주었다. 가롤리에서 차로 2시간도 채 떨어지지 않은 마호바라는 지역에서는 가뭄이 왔을 때 목자들이 가축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일이 많다. 소들은 먹이를 찾아 다니고, 가장 건조할 때가 지나면 돌아온다. 하지만 가뭄이 길어지고 물이 귀해지자, 올해는 무자비한 더위 때문에 죽은 가축들이 많았다.

인디아 투데이가 비영리 단체 스와라지 아비얀 소속 정치 활동가 요겐드라 야다브의 말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분델칸드에서 5월 한 달 동안에만 30만 마리 이상의 소가 죽었다”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죽은 소들을 모아 잔뜩 쌓아 놓았다.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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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바의 마단 사가르 호수는 한때 75에이커 면적을 차지하며 지역 주민들의 수원이 되어 주었다. 지금은 완전히 말라붙어, 24시간 내내 대형 기계를 동원해 호수 바닥을 파내고 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바닥의 토사를 제거해야 한다.

“토사는 폴리에틸렌처럼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막는다.” 이 근방의 가뭄 지역에서 작은 비영리 단체 소속으로 일하는 라젠드라 니감의 설명이다. 수백 대의 덤프 트럭들이 호수 바닥을 들락거리며 짙은 먼지 바람을 일으킨다. 어부들이 호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75세 사라스와티 라에콰드와 그녀의 10살 난 손녀 바르티(아래 사진) 등의 마을 사람들은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땅에 가꾼 작은 채소 밭을 돌본다.

농업 경제가 붕괴하면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먼 도시로 이주했다. CNN-뉴스18에 의하면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분델칸드를 떠난 사람은 180만 명 정도다. 기근과 같은 조건과 가뭄을 피해 그들은 붐비는 기차와 입석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먼지구덩이를 떠나 어딘가 있을 일자리의 희미한 희망을 찾아간다. CNN-뉴스18은 델리로 가는 이주자들만 취재했다. 뭄바이와 수랏 같은 대도시로 간 사람들도 있다.

곤궁 때문에 떠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야음을 틈타 떠난다. 이주에는 수치심과 무력감이 따르며, 마을 안에서는 사회적 오명이 되기도 한다. 어떤 마을에는 노인들과 아이들만 남아 있다. 먼 도시로 이주한 가족들은 아껴쓰고 버티며 고향에 보낼 수 있는 것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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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단 이주의 원인 중 하나는 '마하트마 간디 농촌 고용 보장법'이라는 농촌 고용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모든 농촌 가정에 매년 100일 동안의 비숙련직 유급 노동을 보장한다. 아래 사진에서 다야함이라는 남성은 농촌 고용 프로그램에서 맡긴 일을 하고 있다. 디콰하 근처의 말라붙은 연못 바닥에서 흙을 파는 중이다.

그러나 선구자적인 이 프로그램에 대한 농부들의 믿음은 약해지고 있다. 부패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 정책으로 일을 받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대부분은 정부가 정규직을 만들어 주었다면 억지로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분델칸드 주민들은 돈을 사취하는 정치인들과 무능한 체제에 도외시되었다고 느낀다. 일자리가 있을 때도 몇 달 뒤에야 돈을 받을 수 있다. 가뭄 기간 동안 이 급여에 크게 의존한 농부들이 많았다. 이 지급이 늦어지거나 사라지면 그 피해는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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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바에서 멀지 않은 분델칸드의 다른 마을 바루 탈 외곽에서 나는 90세의 모티 라에콰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텅 비고 메마른 땅 옆의 작은 오두막을 고치고 있었다. 95세의 시각장애인인 그의 아내 베티 바이는 오두막 안에서 먼지를 쓸고 있다. 그들은 진흙으로 만든, 마른 나뭇가지로 지붕을 얹은 집에서 산다. 집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밖에 놔둔 밧줄과 나무로 만든 전통 인도식 침대 겸용 소파인 차포이 위에 그들의 살림 살이(방수포, 담요 몇 장, 조리도구 조금)를 얹어 두었다.

“지난 번 가뭄 때는 나무에 남은 과일과 잎을 먹고 살았다. 지금은 그것조차 없다.” 이 부부는 마을 사람들이 주는 것을 먹고 산다. 그는 연약한 다리를 가리키며 이제는 힘든 노동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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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크론에서 팔의 아내 수크와티는 남편이 죽은 후 간신히 먹고 살고 있다. 큰 아이는 두 살, 둘째는 6개월이다. 수크와티는 다른 가족들이 나눠주는 것으로 이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 한편 그녀 주위에서는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천 명이 이미 인구 과잉 상태인 인도의 도시로 떠나고 있다. 유령 마을, 황량한 땅, 죽은 나무, 말라버린 강, 외로운 소만 남고 있다. 점점 커지는 재앙이다.

남은 사람들은 위태롭게 살아간다. 노인과 어린이들이 물을 찾아 뜨거운 날씨에 몇 킬로미터씩 걸어간다. 가끔 이 텅 빈 풍경 속에서 가뭄이 그들의 유일한 벗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Parched Land. Farmer Suicides. Forced Migration: Drought Is Crippling Rural India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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