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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사가 지적하는 '전재용의 일당 400만 원 황제노역'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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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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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탈세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의 차남 재용(51)씨와 처남 이창석(65) 씨가 1일 오전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 씨와 이 씨는 각각 38억6천만 원/ 34억2천90만 원을 미납했으며 미납된 벌금액수에 따라 이들은 하루 400만 원으로 965일(약 2년 8개월), 857일(약 2년 4개월)의 노역장에 처해졌다.

그리고 문유석 판사는 '황제노역' '황제일당' 등의 표현이 붙은 이번 소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하나 지적했다. 문 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을 꼭 읽어보자.

페북은 사적인 공간이므로 법원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 얘기는 꼭 좀 해야겠다. 오늘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된 '일당 400만원 황제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서민들 일당이 얼마인데 누구는 일당 400만원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라는 논조의 기사가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데, 벌금 미납으로 인한 노역장 유치기간은 피고인에 따라 일당 내지 사람 값을 따로 쳐서 정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형법 규정을 보자.


형법 제69조(벌금과 과료)


① 벌금과 과료는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납입하여야 한다. 단,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다.


②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하는 형으로 대체하는데, 그 기간의 상한이 3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벌금 수백억원을 미납했다 해도 3년 이상 유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기사화된 사건의 경우 벌금 40억원을 3년(1095일인데 계산 편의상 1000일)으로 나누면 400만원이 된다. 그냥 계산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전재국 피고인이 아니라 서울역 앞 노숙자가 뭔가 큰 범죄에 연루되어 벌금 40억원(이런 고액 벌금은 보통 탈세액 등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짐)을 내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일당 400만원이 되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벌금 40억원을 내게 되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일당'의 문제가 아니라 법정 최장 유치기간 3년의 문제인 것이다.


이 정도는 언론 법조기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부터 비슷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법원 공보관들이 무수히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몇번이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왜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고액 일당을 정했다는 식의 보도가 해마다 반복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반 시민들이 분노하는 반응은 당연하다. 시민들이 이런 법규정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언론은 좀더 살피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물론, 수십억, 수백억 벌금을 달랑 3년으로 퉁치게 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문제제기를 하려면 형법 69조의 유치기간 상한선을 올리는 등의 법개정 의견을 담은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런 기사라면 토론이 가능하다. 형법이 유치기간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것에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벌금형은 징역형 등 자유형보다 체계상 더 가벼운 형벌이다. 본질적으로 재산을 박탈하는 형벌인 벌금을 내지 않는다 하여 무제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으므로 3년의 제한을 둔 것이다.


꼭 대단한 재벌이나 권력자만 고액 벌금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니다. 탈세와 관련된 특별법 규정 등은 대부분 탈세액 전액 상당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중소기업주들도, 개인사업자도 수억, 수십억원의 벌금을 맞을 수 있다. 물론 고액 탈세범인 만큼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 실제로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 돈이 아니라 회계 장부상으로만 발생한 숫자놀음때문에 고액의 탈세범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가산세까지 붙어서 세금은 세금대로 강제징수되어 파산 상태가 되고 벌금은 벌금대로 법상 무조건 병과되므로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게 되는데, 기간의 상한이 없으면 무기징역을 살게 되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재벌이나 권력자, 벌금 낼 능력이 충분한 재산가들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하여 상한기간을 달리하자? 죄형법정주의상 형벌규정은 명확하여야 한다. 겉으로는 유명인인데 파헤쳐보니 법적으로 본인 소유의 재산은 한 푼도 없는 경우 '벌금 낼 능력이 충분한 경우'로 분류할 수 있는가?


지금 법규정이 옳다고 강변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개정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법규정도 이유 없이 그리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인 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p.s. ....다 쓰고보니 왜 '황제 일당' 기사가 반복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골치 아프고 화끈하지 않은 법개정론 기사가 포털 사이트 탑에 오르고 댓글이 천 개씩 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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