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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이 '안전운행' 투쟁에 나선 이유(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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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차를 아침부터 이렇게 대놨어.”

지난 23일 오전, 서울 금천 마을버스 06번(금천06) 운전기사 ㄱ씨가 유창슈퍼 정류장 앞 네거리에서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좁은 도로 한쪽을 차지한 승용차 때문에 차를 돌리는 데 시간이 지체돼서다. 승객 20여명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풍경이라는 듯, 그저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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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금천06 버스가 종점인 시흥1동 공영주차장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버스가 금천현대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하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승객이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버스는 출발했지만 승객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ㄱ씨는 교통신호에 걸릴 때마다 정지선 절반쯤에 차를 걸쳐 세웠다가, 신호가 바뀌면 잽싸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오전 7시30분 종점인 시흥1동 공영주차장을 출발한 버스가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돌아 다시 종점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전 8시15분이었다. 9분 뒤 ㄱ씨는 다시 버스를 몰아 종점을 나섰다. 그사이 종점으로 돌아온 다른 운전기사들이 경부선 철로 쪽 ‘간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공사장에서 들고 온 주홍색 로드콘(원뿔형 깔때기)을 담벼락에 꽂아 만든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처리한 기사들은 서둘러 다시 버스에 올랐다.

“ㄱ씨 성격이 거친 탓이 아니에요. 이 말도 안 되는 배차일지를 한번 보세요. 조금이라도 쉬려면 어쩔 수 없어요.”

마을버스 06과 07번을 운행하는 한남상운의 성기진(56) 노동조합 지회장이 마을버스 06번의 ‘배차일지’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한창 출근시간인 오전 7시20분 종점을 출발한 ㄱ기사가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온 뒤 2회차 운행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은 오전 8시24분, 3회차 운행 시작 시간은 오전 9시30분이었다. 성 지회장은 “안전운행을 하려면 적어도 1시간10분 정도 소요되는 노선인데, 50~60분 배차 간격을 맞추려다 보니 기사들이 담배 한 대라도 피우며 쉬어가기 위해 거칠게 운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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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서 가져온 원뿔형 깔때기를 꽂고 공사장 알림판으로 가린 한남상운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의 화장실.

한남상운 소속 마을버스 기사 30여명 중 10명이 지난 16일부터 ‘준법투쟁’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안전운행을 하려면 배차 간격을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선 증차를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남상운 기사들은 그동안 한 달에 4번 쉬고, 오전 5시~오후 2시, 오후 2~12시 두 조로 나뉘어 일을 해왔다. “급하고 위험하게 운전해서 빨리 (종점에) 돌아오면 있고, 아니면 없는” 게 휴식시간이었다. 이들이 내건 ‘투쟁 구호’ 중 하나는 “사발면이라도 먹게 해달라”다. 배차 간격을 맞추다 보면 기사들이 확보할 수 있는 점심식사 시간은 길어야 15분 정도다. 대부분 종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다 차 안에서 먹거나, 오전에 회사에서 나눠준 빵과 우유를 차에 두고 먹는 게 고작이다.

“신호를 지키고, 정류장에선 일단 멈추고, 손님이 타는 것을 끝까지 본다.”

노조 조합원 노성현(71)씨는 이날 오전 8시30분 종점을 출발하며 준법투쟁 원칙을 되뇌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사고가 났었어요.” ㄱ씨가 욕설을 뱉어냈던 유창슈퍼 정류장 앞 네거리에 다다르자 노씨가 말했다. 40여년 버스를 몬 베테랑 운전기사 노씨도 비좁은 이 구간에 들어오면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급하게 가려다 저도 사고를 낸 적이 몇 번 있어요. 보험 처리를 하자니 회사 눈치가 보여 제 돈을 들여 처리했어요. 기록에도 남지 않는 사고들이죠.” 노씨가 모는 차에 동승했던 정윤호(65) 기사가 두산초등학교, 독산현대아파트 정류장 등 최근 사고 장소를 한곳 한곳 짚으며 말했다. 노씨가 모는 버스는 유창슈퍼 정류장 네거리에서 잠시 멈췄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를 보낸 뒤에야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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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한남상운 정윤호 기사가 노성현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마을버스 운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노씨의 준법운행에 외려 승객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버스를 놓칠세라 정류장 근처 계단을 뛰어내려오던 승객을 기다려주자, 승객은 되레 “죄송하다”고 말했다. 버스카드 잔액이 부족해 지갑에서 현금을 찾던 승객에게 노씨가 “천천히 꺼내시고 먼저 앉으세요”라고 말했는데도, 승객은 쉽사리 좌석에 앉지 못했다. 승객이 앉은 뒤에야 버스는 출발했다.

노선을 한 바퀴 돌아 노씨가 종점으로 돌아오는 데는 1시간15분이 걸렸다. 다음 차례 버스 3대가 이미 노씨의 버스를 앞지른 뒤였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렸네요. 평소 같으면 화장실도 못 가고 바로 종점을 출발해야 할 테지만, 투쟁 중이니까 컵라면이라도 먹으려고요.” 노씨가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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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한남상운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의 배차일지. 배차일지에 적힌 시간은 버스가 종점을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가 컵라면을 먹는 사이에도 비조합원들이 모는 버스가 쉴 새 없이 종점을 나가고, 또 돌아왔다. “저런 모습 보면 안타깝지요. 밥이라도 먹으면서 일하자고, 승객들한테 ‘친절하다’ ‘안전하다’ 인정도 받아가면서 일해보자고 이 나이에 (투쟁에) 나선 것 아닙니까.” 열심히 투쟁 이유를 설명하던 김태경(69) 기사에게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아빠다. 밥은 먹었냐. 꼭 밥 챙겨 먹어라. 몸 조심하고.”

준법투쟁에 동참해온 노동조합원 10명 중 노씨와 김씨 등 4명에게 회사 쪽은 “65살이 넘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달 말로 해고 예고를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