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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인터뷰, '디마프는 내가 꿈꾸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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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드라마입니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드라마를 드디어 한 것 같은 느낌이라 정말 행복해요."

비단 일흔다섯 노배우의 생각만은 아닐 듯하다.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느낌일 것이다.

노인과 '꼰대'를 내세운 케이블 드라마가 시청률 5%를 넘기며 청춘들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사건'이다. 연기하는 배우는 행복하고, 보는 시청자는 감동을 받는다.

지난 수십년 '한국의 어머니상'을 대표해온 김혜자는 이 드라마에서도 자애로운 엄마다. 깔끔하고 경우가 바른, 유복하고 예쁜 우리들의 엄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수줍음도 많고 엉뚱한 면도 많은 발랄한 소녀이기도 하고, 머리 속에서는 망각이라는 병이 퍼져 나가는 치매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런 조희자의 모습은 나비처럼 살랑살랑 날아오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벌처럼 가슴을 꾹 찌른다. 늘 소곤소곤, 조용하지만 조희자의 생각과 처신과 상황은 울림이 큰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빛깔은 슬프다.

김혜자는 "대본에 있는 여자를 어떻게든 표현하려 할 뿐인데 참 쓸쓸하다. 근데 그래서 행복하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조희자를 '그 여자'라고 칭했다.

"난 인터뷰가 싫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늘 대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연기로 다 쏟아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또 말을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1시간을 꼬박 채웠다.

다음은 일문일답.

stephen curry

-- 최근 희자의 치매가 심해지는 모습이 조명됐다. 연기하는 심정이 어떠했나.

▲ 글쎄, 그냥 내가 그 여자(희자) 같은 기분이 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쓸쓸하다. 치매는 뇌가 줄어드는 거라고 하던데 머릿속이 어찌 될까 옛날부터 궁금했다. 그 여자는 조용하게 치매가 진행되는데 이거 하면서도 궁금하다. 머릿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예전에 봉사활동 하러 파키스탄 지진 난 데 가면 큰 빌딩은 폭삭 무너졌는데 그 옆에 작은 집은 안 무너졌다. 큰 빌딩은 지반도 다지고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 무너지고 그 옆에 허술하게 지은 집은 멀쩡하더라. 그걸 보면서 도대체 땅속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치매는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다.

-- 희자에게 붙은 '4차원 소녀'라는 애칭이 배우 김혜자에게도 어울린다는 평가다. 예쁘고 다정다감한,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 내가 그런가? 모르겠다. '소녀'는 철이 안 들었다는 얘기인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 같다.

소녀는 모르겠고…이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걸 느낀다. 나이 먹어서 뭐하나 했는데 이런 드라마 만나 연기하는 건 축복이다. 내가 다시 배우로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역할을 하기는 처음인데도 대본에서 볼 게 너무 많다. 다섯 여자의 인생이 다 얽혀 있다 보니 대본 안에서 들여다볼 게 많다. 그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게 흥미롭고 진력이 안 난다. 또 5명의 여자가 연결된 신이 많아서 한두 마디 하려고 다 함께 기다리며 촬영하는 게 많은데, 그동안 조연과 단역들이 (주연인 내가 연기하는 동안)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그래서 나는 이제 노희경 작가 작품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웃음) 같은 대사라도 나는 다 다르게 한다.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지 않나. 그 차이를 알아보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연기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하든) 시청자 눈에도 들고 싶고 작가 눈에도 들고 싶다. 작가가 '난 그냥 썼는데 배우가 이렇게 표현해주네'라며 감탄했으면 좋겠다.

stephen curry

-- 베테랑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즐겁겠다.

▲ 물론이죠. 그런데 '즐겁다'는 아니고, 반갑다. 너무 반갑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나. 다른 배우들 연기 보는 재미도 크다.

정아 역은 '나문희 이상 갈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라면서 매번 감탄하며 본다. 윤여정은 어떻고. 충남이 나이 어린 교수들에게 "니들이 제일 잘못한 건 니들이 얼마나 잘난지 모른 죄"라고 할 때, 고두심이 아픈 엄마에게 "나 속 썩이려고 병원 안가냐"고 악다구니 쓸 때 기가 막히지 않나. 박원숙이 옛 연인과 재회한 장면은 잠깐이지만 그간의 세월이 느껴졌고, 주현 씨는 얼렁뚱땅하는 것 같지만 다 표현한다. 신구 씨는 이번에 처음 연기하는데 정말 잘하는구나 한다. 내가 신구 씨를 이제야 처음 만난 걸 보면 아직 연기해야 할 게 한참인 것 같다.(웃음) 시청자도 딴 데서 못 본 걸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할 거라 믿는다.

--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배우 김혜자에게 어떤 작품인가.

▲ 배우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아름다운 드라마, 순하고 희망이 되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도 안 보는 드라마가 무슨 소용이 있나.(웃음) 이 드라마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하던데 이 드라마가 내게 그걸 다 충족시켜줬다.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걸 이뤄준 작품이다.

연극으로서는 1인 11역을 한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내 꿈을 이뤄줬다면, 드라마는 이 작품이다. 최근작 중 단연 이 드라마가 최고다. 내가 그 여자로 인해 쓸쓸한 것도 좋다. 한없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쓸쓸한데, 좋다. 그 쓸쓸함이 좋다. 인생에서 버릴 토막은 없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stephen curry

-- 노희경 작가와 처음 작업한다. 어떤가.

▲ 내가 50대 때니까 20년 전에 노 작가가 쓴 작품을 보고 내가 만나자고 했다. '저런 작품 나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는 잊어버렸다가 이번에 만났다.

노 작가의 대본에는 지문이 없다. 불친절한 것이기도 하고 군소리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지문이 없다는 것은 대본이 연기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나온다는 얘기다. 그 점 때문에 노희경 작품이 좋다.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다 달라진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내가 아는 만큼 표현되는 거잖아. 반대로 좋은 긴장감도 든다. 여백이 있으니까.

대본을 보면서 "그래 (당신의 생각을) 알았어"라는 생각을 하며 연기한다. 작가도 김혜자의 연기를 보면서 "그래 알았어" 하겠지. 노 작가가 가장 많이 쓴 지문은 "덤덤히" "담담히"다. 그리고 마침표와 쉼표가 많다. 그걸 살려보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어떤 여자를 그리려고 했을까 계속 생각하고, 내가 또 그가 그린 여자 안으로 들어가야 하니 상상력도 발휘해야 한다.

나는 노희경을 연구하는 중이다. 작품을 통해 연구한다. 그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보려 작품을 자꾸 들여다본다. 희자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도 다 살펴본다. 그러느라 맨날 책만 본다. 다른 인물들의 삶도 다 들여다본다. 그래서 볼 게 많다.

난 노희경 작가가 어렵다. 사람을 읽는 것 같다. 날 투시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 대해 참 많이 알고 있더라. 내 연극도 보고 연구를 많이 했다. 나를 보면서 '선생님은 만나면 이렇게 젊은데 왜 화면에서는 늙어보일까'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내가 말이 느려서 그런 것 같다며 대사를 좀 빨리해보라고 하더라.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됐다. 내가 여태껏 내던 대사 속도와 톤이 구태의연한 거였다.

stephen curry

--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신다. 전작인 '착하지 않은 여자들'과도 또 다르다.

▲ 책(대본)을 일찍 주면 좋다. 내가 이해력이 좀 부족한지 책을 계속 보는데 며칠 전에는 모르던 것이 오늘 보면 보이고 그런다. '아, 이런 거였네' 혼잣말을 하면서 연기 연습을 하는데 읽을 때마다 대사와 내용이 다르게 다가온다. 알아가는 게 참 많다. 참 감사하다. 노상 책을 보고 있으니 행복하다. 생각할 게 많아서 행복하다.

배우로서 보여줬던 얼굴 또 보여주는 게 무섭다. 어차피 비슷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싫다. 이런 상황일 때 어찌 다르게 표현해야 시청자가 이전 드라마를 안 떠올릴까 굉장히 신경을 쓴다. 말 한마디도 다르게 하려고 애쓴다. 사람마다 같은 말도 다 다르게 말한다. "그랬어요?" 같은 말 다 다르게 한다. 그런 거 보면서 연기에 반영한다. 알아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 노인들의 이야기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젊은층에게도 인기다.

▲ 작가는 물론이고, 연출(홍종찬 PD)이 참 괜찮다. 음악했던 분이라는데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알겠더라. 낡은 걸 무지무지 싫어하는구나 느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이 작품 하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감독이 그러니 스태프도 좋다. 이런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참 깨끗하다.

이 팀은 배우가 대사를 뭉개도 그대로 살린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다시 한번 하자고 하는데 이 팀은 안 그런다. 노인네들이 일상에서 하는 말이 그렇지 않나. 누가 매사 또박또박 말하나. 그런데 그렇게 좀 뭉개도 상황상 앞뒤를 보며 시청자는 다 알아듣는다. 그걸 또 제작진이 안다. 그래서 그 느낌 그대로 살린다. 다 연기 잘하는 사람들만 있으니 이거야말로 다큐 보는 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 작가도 대단하지만 연출의 힘이다.

노희경 작가가 "카메라가 배우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지?'라며 놀랐다. 작가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렇게 보일 정도로 연출이 배우들을 살려준다.

그래서 이 촬영장이 반갑다. 연출을 보는 것도 반갑고, 배우들을 이틀 만에 만나도 반갑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 얼굴에서 반가워하는 표정이 나오는 걸 내가 알겠다.

김혜자와의 인터뷰는 쉼표 없이 길게 이어졌다. 노배우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끝없는 이야기처럼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근데 이게 뭐 얘기가 되나?"라고 묻기도 했다. 흐르는 강물 같은 이야기를 되도록 손대지 않고 일문일답으로 전했다.

그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만난 게 배우로서 축복임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시청자 역시 김혜자의 조희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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