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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채 발견된 세월호 민간 잠수사의 청문회 당시 발언(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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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 아닙니다.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

지난해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국민안전처 국정감사 현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관홍(43)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일주일 뒤인 2014년 4월23일 진도 앞바다로 달려갔던 민간잠수사였다. 10㎝ 앞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48m 깊이 바닷속에서 “극도의 공포 속에 엉켜 있는 희생자들의 주검을 한 구 한 구 달래가면서 안아 올렸다”며 울분을 터뜨렸던 김 잠수사가 17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마흔셋 생일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사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날 새벽 2시께 집으로 돌아온 김씨가 홀로 술을 마시다가 한 시간 뒤쯤 쓰러지는 장면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과 현장에 떨어져 있던 약통, 그리고 ‘미안하다’ ‘다음 생에는 다른 모습으로 만나자’ 등의 내용을 담아 지인들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등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게 할 뿐이다. 세월호 선수(뱃머리) 들기 작업 중 선체 일부가 훼손되는 등 인양 작업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 속에서 전해진, 김씨의 사망 소식에 세월호 유가족 등은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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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전후로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요.”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만난 김씨의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오영석군의 아버지 오병환(44)씨가 기억하는 김씨는 “항상 만나면 밝은 얼굴로 ‘형님, 형님’ 하면서 농담하고, 안부도 먼저 물어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도 앞바다로 달려갔던 ‘그날’부터 세상을 등지던 날까지 787일 동안 김씨의 삶은 오롯이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참사 책임자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주검 수습에 나섰던 민간잠수사가 과실 책임으로 검찰에 기소되고, ‘한몫 단단히 잡았을 것’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죽을까 그 생각만 하면서 지낸다”(지난해 한 라디오 인터뷰)고 할 정도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는 세월호 수색 작업 때 무리한 잠수를 하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왔고, 어깨 회전근막 파열과 왼쪽 허벅지 마비 증상도 겪었다. 이런 후유증 때문에 자신의 본업이자 생계인 잠수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아내의 꽃가게 일과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함께 주검을 수습했던 황병주(57) 잠수사는 “주검 수습 작업을 하다가 다친 건데, 정부가 김씨를 민간잠수사로 인정해줬다가 나중엔 아니라고 번복하고 수난 구호비용도 제대로 못 받게 됐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 이후 민간잠수사들은 유가족들 못지않게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김씨의 동료 잠수사는 “세월호 아이들을 물속에서 한 명 한 명 손으로 만져서 수습해 데리고 나왔어요. 제 아내와 아이들을 지금도 안아주지 못해요. 살 닿는 게 싫어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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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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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세월호의 진상규명 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 숨지기 몇 시간 전까지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세월호 인양 관련 소식을 담은 뉴스를 공유했다. 지난해 12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땐, 정부 책임자들이 한결같이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나는 당시 생각이 다 난다. 잊을 수도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고위 공무원들은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느냐”며 일침을 놓았다.

지난 4·13 총선 때는 ‘세월호 변호사’로 활동해온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박 후보의 수행비서 역할을 자청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해내고야 말 사람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지난 4월 <한겨레> 인터뷰 내용)이다. 그가 박 의원에게 바랐던 건 “유족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다음에 잠수사들도 얘기들도 단 한 번만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의 조기 종료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는 주변에 답답함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오병환씨는 “김씨가 세월호의 진실이 묻힐까봐 걱정도 많았다”며 “최선을 다해서 우리 애들을 수습했는데, 국가에 배신당하고,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김씨를 괴롭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