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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웃기기 위해 근육을 만든 개그맨 류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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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시대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유행은 ‘얼짱’이었다. ‘얼굴이 짱(매우) 예쁘다’는 뜻이다. 요즘 그 자리는 ‘몸짱’이 차지했다. ‘엉짱’(엉덩이가 예쁘다), ‘머슬퀸’(근육질의 여성)이란 말도 생겼다. 연기나 얼굴이 아닌, 순전히 몸으로 뜬 유명인도 많이 등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몸스타그램’(몸과 인스타그램을 합친 해시태그)을 검색하면 250만건의 사진이 나온다. 검색 결과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몸 좋은 사람들이 많아?’

몸 만들기 열풍은 나이와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대중 앞에 노출해야 하는 연예인의 경우 몸 만들기가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뚱뚱하거나 못생겨야 상대적으로 유리한 개그맨은 사정이 좀 다르다. 오히려 좋은 몸은 남을 웃기는 데 불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아는 톱 개그맨 가운데 잘생기고 몸 좋은 개그맨은 없다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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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사생결단으로 몸을 만드는 개그맨이 있다. 류근지(32)다. 그는 지난 5월 ‘세계 뷰티패션 & 피트니스 대회’(WBFF)에 출전해 조각 같은 몸을 뽐내 화제가 됐다. 그는 이 대회 ‘커머셜 모델 부문’ 5위 안에 들었다. 최근에는 남성잡지 <맨즈헬스>에서 ‘몸짱’을 뽑는 ‘쿨가이 선발대회’에서 최종 선발 30명 안에 들었고, 올 7월 결승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기사는 개그보다 몸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미나리를 먹고 미친’ 걸까, ‘도라지를 먹고 돌은’ 걸까.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그를 만나 몸을 만드는 이유를 들었다.

매일 3시간씩 운동…1년 만에 20㎏ 빼

-왜 몸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됐나?

“운동은 원래 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그때는 단순 취미였는데,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게 된 건 피트니스센터를 하는 친구 때문이었다. 1년 전쯤에 친구가 ‘놀러와서 운동 한번 해’라고 했는데 그게 악연의 시작이었다.(웃음) 처음 운동할 땐 <개그콘서트>에서 노출하는 씬을 염두에 두었었다. 몸이 좋으면 관객들에게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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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보니, 단순 노출을 위한 게 아닌 것 같다.

“나도 이 정도 될 줄은 몰랐다. ‘이왕 운동하는 거 대회를 목표로 해봐’라는 친구의 한마디에 혹했다. 그 말 듣고 6개월 취미 삼아서 하던 운동을 대회를 목표로 하는 전문적인 운동으로 바꾸게 됐다.”

-그동안 사람들은 류근지가 몸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뺄 살은 없지 않았나?

“아니다. 1년 동안 20㎏을 뺐다. 키가 187㎝로 큰 편이기도 했는데, 몸무게도 94㎏까지 나갔었다. 지금은 74㎏ 정도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공개해서는 안 되는 사진”이라며 과거 사진을 보여주었다. 배가 올챙이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었고, 전체적으로 근육이 아닌 두툼한 피부가 덮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뚱뚱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20㎏ 감량이 가능한가? 어떻게 했나?

“무조건 아침 7시에 일어나 공복에 서울 강남의 피트니스센터로 갔다. 집이 강서구 등촌동인데 아침 출근시간이라 가는 데만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매일 3시간씩 운동을 했다.”

-운동만 한다고 몸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니잖나?

“맞다. 식이요법도 중요하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취미 삼아 운동하고 정상적인 식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회용 몸을 만들려니까 그때부턴 지옥이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로만 이뤄진 식사를 정량에 맞춰 하루 다섯끼를 먹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단백질 보충제 먹고, 닭가슴살과 고구마 150g씩을 3시간 간격으로 먹는 식이다. 저녁에 가끔 채소를 먹기도 했다.”

-개그맨들은 단체생활이 많을 텐데 그게 가능했나?

“선배들하고 많이 멀어졌다. 하하. 아이템 회의 하면 늘 중국요리를 시켜 먹곤 하는데, 그 옆에서 냄새 맡으면 먹고 싶어 죽겠더라. 그래서 밥 먹을 때 아예 자리를 피했다. 회식 자리도 많은데, 처음엔 옆에서 멀뚱히 앉아 있었다. 몇 번 그러니깐 아예 나중에 오지 마라더라. 이젠 부르지도 않는다. 요즘은 집에서 혼자 닭가슴살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하하.”

류근지는 동료 개그맨 김성원, 서태훈, 김기리와 함께 올 3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스탠딩 개그쇼 <이리오쑈>를 공연하고 있다. 이 공연 뒤에도 그는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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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만들면서 자신감 커져

-좋은 몸이 오히려 개그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엔 ‘망가진 외모’가 먹히는 시대였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게 많아야 개그에 쓸 것도 많다. 몸 나쁜 개그맨이 있으면 몸 좋은 개그맨도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피트니스 선수가 되는 것은 생각해봤나?

“내가 몸을 만드는 것은 개그를 위해서다. 대회를 나가는 것도 내 몸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긴장을 주는 거다. 어떻게 만든 몸인데. 몸 망가지는 건 금방이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고 선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고통인가?

“대회 전 식이요법이 엄청나다. 탄수화물만 먹다가, 또 단백질만 먹다가 최종에는 다시 탄수화물만 먹는다. 여기에 하루에 6~8리터씩 물을 마시다가 대회 36시간 전에 수분을 끊고, 나트륨을 대량 섭취한다.”

-물을 끊고 갑자기 짠 걸 먹는다는 건가?

“그렇다. 대회 직전에 쌀밥과 김치를 대량으로 먹는다. 그러면 핏줄이 튀어나오면서 몸이 붓는다. 그게 근육을 더 멋있어 보이게 한다.”

-몸에 무리는 안 가나?

“당연히 간다. 선수용 몸은 건강한 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선수들이 대단한 거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극단적으로 먹고 운동하는데 개그 연습할 때 괜찮나?

“예민하고 짜증이 난다.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다.”

-그러면 결국 몸 만들기가 개그에 방해가 되는 거 아닌가?

“아니다. 나는 몸을 만들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대중 앞에 서는 게 당당해진 거다. 얼굴에 전혀 손을 안 댔는데, 얼굴살이 빠지니 주변에서 ‘코 세웠냐’고 하더라. 개그도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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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만 해보시라!

-사실 그동안 류근지가 주연급의 ‘웃기는’ 개그맨은 아니었다. 키 크고 ‘허우대 멀쩡한’ 개그맨이란 이미지였는데.

“맞다. 처음엔 주변에서 몸 만들지 말고 개그 연습이나 하라는 반응이 많았다. 한동안 고민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주목한 것이 몸이었다. 몸을 만들면서 자신감이 붙으니 개그도 좋아졌다. 개콘 ‘유전자’ 코너에서 ‘미나리 먹고 미쳤냐, 도라지 먹고 돌았냐, 생강 먹고 생각 좀 해’라는 유행어도 그때 나왔다. 개그맨으로서의 내 존재감은 내가 몸을 만드는 기간 동안 가장 높았다.”

-많은 사람들이 몸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조언이 있다면?

“나는 개그맨일 뿐이다. 전문적인 조언은 해당 전문가에게 받는 것이 좋다. 내가 해줄 말은 ‘6개월만 해보라’는 것뿐이다. 6개월만 꾸준히 운동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습관이 되는 거다. 내가 경험했듯, 몸에 자신이 생기면 다른 일에도 자신이 생긴다. 그 자신감을 한 번은 꼭 경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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