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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국민은 '독재자의 딸' 대신 '경제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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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U PRESIDENTIAL
Peruvian presidential candidate Pedro Pablo Kuczynski, greets the press after Peru's electoral office ONPE said that he won more votes than Keiko Fujimori in the country's cliffhanger presidential election in his headquarters in Lima, Peru, June 9, 2016. REUTERS/Janine Costa | Janine Costa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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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대선 결선투표에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77)가 게이코 후지모리(41)에 신승을 거두었다. 후지모리 후보 측은 아직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

페루선거관리위원회는 나흘간의 개표 끝에 쿠친스키가 50.12%를 득표해 49.88%를 얻은 게이코 후지모리(41) 민중권력당 후보를 0.24%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공식 개표가 끝났지만 잉크 번짐 현상과 부적절한 표기 등으로 논란이 된 5만 표(0.41%)의 투표용지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락이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쿠친스키는 트위터에 "페루여 감사합니다. 국가 미래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쿠친스키는 세계은행 등의 국제 금융기구에서 일하고 페루에서도 여러 차례 경제각료 등을 역임한 '경제통'이다. 때문에 지지자들 사이에서 페루의 경제 성장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쿠친스키는 온건한 자유시장주의자로 중산층과 도심 지역에서 지지기반이 탄탄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정치·철학을 전공한 그는 1961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우드로 윌슨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계은행에서 중앙아메리카 6개국과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을 담당하는 경제학자로 활동했다.

30세인 1966년에는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 대통령 정부의 경제 자문역을 맡으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페루 중앙은행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1968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안벨라스코 알바레도 군사 정권 시절 정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민간 기업은 물론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일하면서 역량을 발휘했다.

쿠친스키가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페루인의 보통 삶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유럽 이민자 가정에서 유복한 삶을 누린 쿠친스키는 저소득층으로부터 낮은 지지를 받고 있고 미국 시민권이 있다는 점에서 이중국적 논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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