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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복싱의 전설이 74세로 눈을 감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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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 기사 보강 2016년 6월 5일 11시 30분
업데이트 : 기사 보강 2016년 6월 4일 14시 06분

미국 '전설의 복서'이자 흑인 인권의 아이콘인 무하마드 알리(74)가 3일(현지시간) 숨졌다.

이날 AFP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는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병상에서 가족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복싱의 역사에서 최강의 선수로 추앙받는 알리의 커리어는 독보적이다.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로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했다.

자전거 분실 신고를 하며 분을 이기지 못했던 클레이에게 한 형사가 "복싱을 배워봐라"라고 농담을 던진 것이 계기였다.

클레이는 18세였던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그는 고향인 켄터키 주 루이빌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인종차별을 받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사려다 거절당했고, 백인 갱들로부터 위협까지 받았다.

환멸을 느낀 알리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 버린 뒤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클레이는 훗날 "미국을 대표해 금메달을 따냈다고 생각했던 환상이 그때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후,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이후 알리는 프로로 전향해 승승장구했다. 전 세계 최초로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은퇴할 때의 전적은 56승 5패 36 KO. 알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말은 수십 번 들어봤을 것이다.

"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명언이다. 아래 영상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리는 미국인에게 스포츠 스타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 사회·역사적 인물이었다. 그는 말콤 엑스 등과 함께 1960년대와 70년대 초기 미국 흑인 권력 운동의 핵심이었던 '흑인 무슬림'그룹에 가입하며 자신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기도 했으며,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군에 복무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전성기 중 3년 5개월 년 동안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알리는 당시 법정에서 "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 싸울 순 없다"고 외쳤다고 한다.

알리는 은퇴 이후 복지가로의 활동을 시작했으나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30여년간 투병했으며, 전날 애리조나 주 의료기관에서 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알리는 최근 수년간 수차례 병원신세를 졌으며 2014년 12월에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muhammad ali

알리는 지난 4월 9일 피닉스에서 열린 파킨슨병 치료 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했으나, 많이 쇠약해진 모습이었다고 트리뷴은 전했다.

그는 1996년 파킨슨병 투병 중에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해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muhammad ali

7남 2녀를 둔 알리는 최근, 1986년 재혼한 4번째 부인 로니와 피닉스 인근에서 조용히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젊은 조지 포먼과의 대결을 앞두고 "나는 복싱보다 위대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자만감의 표현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복싱보다 위대한 복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