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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심경 고백, "터널 속에 서 있는데 빛이 안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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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고 있는 박태환.

박태환(27) 선수는 2014년 9월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Nebido) 양성반응이 나와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선수자격정지 18개월 징계를 받고 3월2일 징계가 종료됐다. 그러나 ‘도핑 규정 위반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정한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묶여 리우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 규정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박태환 선수 쪽은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가 이중처벌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규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체육회는 “이중제재의 요소가 있더라도 특정 선수를 위해 규정을 개정할 순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태환 선수를 이틀 동안 동행취재하며 규정에 대한 입장, 징계 과정의 고충, 올림픽 출전 여부에 따른 고민 등 속깊은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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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는 올림픽 출전자격 논란에 대한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으로 자칫 대한체육회와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지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모든 사태가 잘 해결돼 올림픽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7일 오전 인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박 선수가 다양한 표정을 짓는 모습.

▶ 박태환 선수의 리우올림픽 출전자격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18개월 자격정지 징계가 끝난데다 국제올림픽위원회도 국내 규정 삭제를 권고한 점을 들어 박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막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입장과 “이중처벌의 요소가 있더라도 특정 선수를 위해 규정을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겨레>는 논란 속에서도 말을 아껴온 박태환 선수를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동행 취재했다. 논란에 대한 입장, 도핑사건 소회, 앞으로의 포부, 개인적인 고민 등이 담긴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터널에서 계속 서 있는데 빛이 안 보이니까. 빛이 보여야 힘이 나서 달려갈 텐데 빛도 안 보이고 무서운 상황이죠. 이런데 배까지 고프면 저는 어떻게 뛸 수 있을까요. 뒤에서 열차는 달려오는데 피할 틈도 없네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에 서 있으니까요.”

17일 오전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영선수 박태환(27)은 자신의 처지를 터널에 빗댔다.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그는 조금 외롭고 지쳐 보였다. 감독도 없이 홀로 마친 새벽 훈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없던 다크서클도 생겼다고 했다. 밤에 잠을 설치는 일도 잦다고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인데 그러지 못하니까 초조하죠. 체육회와 제가 대립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적잖이 부담스럽고요. 부디 원만하게 해결돼서 훈련에만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자격 논란에 대한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으로 자칫 대한체육회(체육회)와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진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한때 피겨선수 김연아와 더불어 국민영웅으로 불렸지만, 현재 그는 80일도 남지 않은 리우올림픽의 출전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초중고 선수들이 차지한 수영장 한켠에서 감독도 없이 홀로 훈련을 하고 있다. 2004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그의 가슴에 줄곧 붙어 있던 태극기를 다시 달 수 있을지 장담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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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앞두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박태환은 2014년 9월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Nebido) 양성반응이 나와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선수자격정지 18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는 지난 3월2일 종료됐다. 지난달 리우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 출전한 그는 네 종목 모두 국제수영연맹이 정한 올림픽 A기준기록(올림픽 출전자격이 주어짐)을 통과하며 우승했다. 그러나 ‘도핑 규정 위반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정한 대한체육회의 선발 규정(5조 6항)에 묶여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 규정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제기준에 안 맞는 이중처벌이기 때문에 개정하자”는 주장과 “특정 선수를 위한 규정 개정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4월6일 대한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특정인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은 불가하다고 결론냈다. 다급해진 박태환 쪽은 같은 달 26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카스)에 중재를 신청했다가 현재 보류 요청을 해 놓은 상태다. 박태환의 소속사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누나 박인미씨는 “각국 국가대표 선발기구 최종 결정 뒤 21일 내에 제소해야 한다는 카스 규정에 따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기한 만료 하루 전 서류를 전달했으나 체육회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해 일단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재가 재개돼 카스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주면 체육회가 따르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장달영 변호사는 “카스의 결정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의무 이행을 안 할 수는 있지만 카스 결정은 곧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이라고 했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박태환 쪽은 카스 중재가 아닌 체육회의 결단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두 차례 연기 끝에 어렵게 잡힌 체육회 사무총장과의 25일 만남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박태환은 지난 2일 인천시청 영상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처를 호소하며 큰절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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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이번 논쟁과 관련해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수락 직후인 14일 박태환 쪽이 카스에 중재 요청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17일 대한체육회가 박태환의 국가대표 선발 문제는 항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카스에 제출하자 이튿날 오전 박태환 쪽은 이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별도로 카스에 보냈다. 리우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 최종 마감(7월18일)까지 두 달이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박태환을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만났다. 인천 박태환수영장과 문학경기장, 인천 시내 등지를 내내 동행취재하며 오래도록 얘기를 나눴다. 그는 출전 자격 논쟁을 둘러싼 입장부터 근황, 올림픽 포부, 도핑사건 소회, 개인적 고충, 가족과 관련된 얘기까지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체육회에선 특정 선수 때문에 규정을 바꾸는 건 특혜라고 말하고 있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데요.

“사실 그동안 말을 아껴 왔어요. 지금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요. 괜한 오해가 생길까봐요. 물론 이 규정이 국제기준에 걸맞은 룰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삭제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이잖아요. 체육회는 저만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요. 이 규정으로 발목 잡힐 선수들이 또 나오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피해를 볼 그 선수들을 위해 이번 기회에 논의해보자는 거예요. 물론 체육회 입장을 아예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규칙·규정이라는 게 고심 끝에 만들었을 거고 쉽게 고치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거라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찬찬히 따져보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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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는 박태환 선수의 수영복 위로 올림픽 오륜기 문신이 얼핏 드러난 모습.

-일부에선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는 박 선수가 유망주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엷게 웃으며) 제가 알기론 A기준기록인 제가 빠져도 B기준기록 선수들이 자동적으로 올림픽 출전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 기사 보면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죠. 속상하고요. 만약 제가 자라는 선수들의 앞길을 막고 있으면 저는 정말 뒤를 돌아볼 것 같아요. 내가 후배들의 길을 막고 있었구나, 내가 길을 비켜줄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일한 A기준기록 선수인 박태환이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경우 B기준기록 4명의 선수가 올림픽 티켓을 얻게 되는 규정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변경됐다. 국제수영연맹은 출전 인원을 제한하기 위해 A기준기록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종목이라도 B기준기록 선수가 무조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가 후배들의 기회를 막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11일 발표된 1차 국가대표 선발 명단에 들지 못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바로 제 이름이 올라갈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쉽지 않을 거라 짐작은 했어도 막상 명단에 없는 걸 보니까 솔직히 속상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당연히 제가 감수할 부분이죠. 수영선수, 운동선수로서 제일 예민한 문제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렸으니까요. 예상한 결과였지만 서운한 마음조차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죠.”
-징계 뒤 복귀전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4관왕이라고 하지만 제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기록은 아니에요. 더 분발해야죠. 사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컸지만 대중 앞에 나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제가 겁이 되게 많은 편이거든요. 훈련하면서도 ‘관중들이 야유를 하면 어쩌지? 물병과 계란을 던지면 어쩌지?’ 하고 트레이너 형에게 여러 번 물어봤어요. 형은 ‘경기로 보여주면 야유가 환호로 바뀔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야유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감수해야지’라고 마음먹고 나갔는데 관중들이 응원을 해주시는 거예요. 너무 감동해서 닭살이 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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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태환은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마저도 그는 인천시청의 배려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새벽 6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2시간30분가량을 제외하고 오후 훈련시간(4시~6시30분)에는 일반 이용객 틈새에서 훈련해야 한다. 17일 오후 박 선수가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고 있다.

-팬들의 환호가 그리웠나 보군요.

“네. 그동안 많이 외로웠거든요.(웃음) 1500m 경기를 하면서 관중석을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레이스 끝나고도 계속 관중석을 봤어요.(웃음) 응원해주시는 분들 보고 되게 감사했어요. 한 분 한 분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나가게 된다면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어요. 성원해주신 분들 잊지 않고 이 악물고 버텨야겠다고 생각했죠.”

-만약 끝내 올해 올림픽 출전을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울 거예요.(웃음) 아… 그런… 결정이 내려지면 사실 일단 어쩔 수 없는 거죠.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거니까. 규정과 규칙이 그렇다고 하면 따라야 하는 게 맞는 거고요. 사실 제가 선발전에서 잘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선수로서의 치명적인 부분 때문에 많은 분들한테 실망을 안겨드렸으니까요. 고의든 아니든요. 속상하지만 수영선수 이전에 운동선수니까요.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은 누구나 다 꿈꾸는 무대지만 아무나 나갈 수 있는 무대가 아니잖아요.”

-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할 건가요?

“아직은 그런 생각을 안 해봐서 그런지 출전 불가 결정이 내려지면 심각하게 고민하겠죠. 운동선수로서 계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수영선수를 계속할지 말지, 어느 때보다 신중히 생각을 하겠죠.”

지난해 박태환이 금지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은 선수 본인과 의사가 투약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빚어진 ‘의료사고’였던 것으로 검찰 수사는 결론냈다. 박태환 쪽은 수차례에 걸쳐 주사제 성분이 금지된 약물이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한 반면 의사는 이를 간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의사 김아무개씨를 지난해 2월 불구속 기소했다. 2015년 12월 1심 법정인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강병훈 부장판사는 “박태환에게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는 네비도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며 김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재판과정에서 박 선수에게 투여한 네비도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쪽 변호사는 “단 1회의 진료기록부 미기재로 벌금형 100만원 선고는 과도하다”고 항소했다. 검찰도 무죄가 나온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항소했다. 오후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 중인 박태환에게 도핑사건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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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가 좋던 시절. 3살 무렵인 1992년 여름, 가족여행에서 누나와 함께 물놀이를 하던 때. 지금은 조카들과의 물놀이가 유일한 훈련외 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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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의 금메달. 5살 때 천식을 치료하게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유치부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1995년.

-도핑으로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졌는데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후회되고 억울하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수영이고, 수영으로 많은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렸으니까 죄송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수영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백마디 말보다 성적으로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요. 선발전을 준비할 시간이 6주밖에 안 돼 걱정했는데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지난해 3월 기자회견에서 박태환은 네비도 주사를 맞은 이유에 대해 “나는 수영을 하기 때문에 피부가 건조하다. 얼굴이 붉은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됐다. 피부 관리를 받으면서 비타민 처방을 의사 선생님이 해줬다. 의사는 도핑과 관련해 비타민 주사가 어떠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수사 결과 고의성이 없다고 결론났지만 도핑 징계는 고의성과는 무관하지 않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운동선수로서 고의든 아니든 책임이 있는 거니까 사실 제가 그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만큼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벌어진 일이니까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속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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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상 감독님과. 7살때 노민상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노 감독님의 훈련은 혹독했다. 함께 수영을 배우던 친구들과 함께.

-도핑검사는 실제 어떻게 이뤄지나요?

“많은 분들이 이런 건 모르실 텐데요. 제가 이름을 알리고 국가대표 된 지도 12~13년이 됐거든요. 국가대표가 되면 도핑리스트에 올라가요. 12~13년 동안 도핑검사를 계속 받아왔어요. ‘오늘 4시에 도핑검사 가요’ 연락하고 오는 게 아니라 기자님과 인터뷰하는 지금 올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대변 보는데 올 수도 있는 거예요.(웃음) 진짜 그렇게 왔고요. 자다가 초인종 소리가 띵동 들리면 나가서 소변검사하고 이러거든요. 남들이 보면 아마 택배 온 줄 알 거예요.(웃음) 비시즌 기간에는 한 달에 2~3번 올 수도 있어요. 올림픽 시즌이고 세계대회에 근접할수록 더 자주 오는데 많이 오면 일주일에 3~4번도 와요. 며칠 전에도 검사했어요. 피 뽑으라면 뽑아야 하고, 소변 테스트는 기본이고요.”

-늘 긴장하고 있어야겠네요.

“어쩔 수 없죠. 하는 게 맞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검사를 피해서 도핑을 한다고 여기시던데, 그런 말 들으면 굉장히 화나요. 이게 마트에 물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밤 10시에도 오고, 수영장과 집, 웨이트장에도 와요. 예전 저의 기록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아무래도 운동선수는 수영선수 말고도 자기가 쌓아온 경력이라든지 성적이 보물 중의 보물인데 도핑사건이 터지면서 ‘박태환은 예전부터 그랬을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동안의 제 땀과 노력이 모두 매도될 때가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었어요. 태양을 피할 수 없잖아요. 도핑검사는 태양과도 같거든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누리집에서 도핑테스트를 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선수는 도핑검사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핑검사를 회피하는 행위는 한국도핑방지규정 및 세계도핑방지규약에 의하여 도핑방지규정 위반이 발생한 것에 해당하며 이에 대한 제재는 자격정지 4년이 부과됩니다.”

실제 도핑검사 대상 선수들은 3개월 단위로 자신의 소재지 정보를 누리집에 등록해야 한다. 경기 기간 외 검사는 사전 미통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수의 소재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재지 정보 제출 대상자인 선수가 12개월 동안 총 3회의 소재지 정보 제출 불응 위반을 범한 경우, 도핑방지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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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순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 자유형 200미터 우승을 하던 순간. 수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현재 박태환은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마저도 그는 인천시청의 배려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새벽 6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2시간30분가량을 제외하고 오후 훈련시간(오후 4시~6시30분)에는 일반 이용객 틈새에서 훈련해야 한다. 17일 오후와 18일 오전, 박태환수영장은 30여명의 중·고등학생 선수들과 40여명의 일반 시민들의 수영 강습으로 번잡했다. 한국 수영의 기린아였던 그는 그 소음 속에서 감독도 없이 홀로 훈련했다. 지난주까지 그는 어릴 때부터 이용해온 서울 강남지역의 길이 25m 수영장에서 오전 8시부터 10시30분까지 개인 훈련을 하고 저녁 6시부터 8시30분까지 방이동 올림픽수영장에서 노민상 전 감독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다. 인천으로 훈련지를 옮겨오면서부터는 혼자 훈련하고 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간단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그에게 물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스포츠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 전이었다.

-징계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몇 개월 동안은 집에만 있었어요. 집 밖에 나가면 가면을 쓰고 나가야 하나, 그래도 알아보면 어쩌지 하고 온갖 생각을 다 했어요. 생전 제 이름을 검색한 적이 없었는데 기사 댓글도 보게 되고 ‘약쟁이’라는 댓글에 상처도 받았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자꾸 시야가 좁아지고 겁도 나더라고요.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스타들에게 공감을 느끼는 상태가 되기도 했어요. 남몰래 힘들어하면서 공포심에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런 선택을 하는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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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꿈나무. 서울 도성초 5학년 때인 2000년 대통령배 전국수영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학교정문 펼침막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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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국가대표. 서울 대청중 2학년 때인 2003년, 해군참모총장배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이듬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다.

-지금도 겁이 나요?

“아직 예전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진 않았는데 많이 기운을 차렸어요.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힘도 주고요. 인터넷 세상과 현실이 똑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집 밖에 나와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잘 이겨내서 올림픽이 아니어도 좋은 모습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현실에 대한 눈을 뜬 거죠. 그래서 다시 수영을 생각하게 됐어요. 실망했던 분들한테 말이 아닌 성적으로 제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어 다시 수영을 시작한 거죠. 어영부영하려고 했다면 애초에 다시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로 진심을 보여드리는?

“저도 선수니까 무조건 금메달 따고 싶죠. 그런데 제가 메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제 기록을 넘어서면 무조건 빛나는 색깔이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어 왔고요. 사실 200m와 400m에서 선두권에 속해 있다 보니까 제 기록을 깨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목표를 메달이 아니라 제 자신을 넘고 최고기록을 넘어서 이전에도 못했던 레이스 자체를 보여드리는 걸로 잡고 있어요.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제 자신을 위해서 잘 이겨내야겠다는 마음이에요.”

-가족들의 고통도 컸을 거 같아요.

“가슴이 아프죠. 성적이 안 좋아서 힘든 때도 있었지만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아니고 미세먼지만큼도 생각을 못했거든요.(웃음) 부모님도 힘드셨겠죠. 부모님께 일부러 연락을 안 했어요. 그 시간 동안에 가족들 서로가 힘든 시간을 보냈죠. 어우, 생각하기도 싫어.(웃음)”

-2004년 아테네올림픽 실격부터 베이징올림픽의 영광 뒤인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기도 했고 선수 생활에 곡절이 많았어요. 이번 시련도 자신을 성장시킬 계기가 될 거라고 보나요?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스타트를 일찍 뛰어서 실격한 뒤 스타트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은 반응 속도가 가장 빠르거든요. 그 실수를 두 번 다시 안 하게 된 거죠.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예선 탈락 겪고 나서는 예선 때도 긴장을 많이 하면서 실수를 크게 줄였고요. 그런데 지금 같은 일은 실수라기보다는 애초에 없었어야 할 일이죠.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 굴곡이 많을까. 모두 지나가기는 하겠지만 ‘좋은 시간도 지나면 곧 바닥을 기어가는 시기가 오겠구나, 그다음엔 또 한 번 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고요. 운 좋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이번 무대가 다시 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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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시간은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 재심을 기다리던 ‘한나절의 긴 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일 오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제스처를 섞어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20대 청년의 감출 수 없는 발랄함이 번져왔다. 전지훈련으로 몇 달씩 해외를 떠도는 터에 여자친구 사귈 시간도 안 된다는 그는 여친이 생기면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박태환, <프리스타일 히어로>).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편의를 제공해준 인천체육회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런데 경기 중에는 무슨 생각 하세요?

“경기마다 달라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는 긴장도 많이 되고, 압박감도 있죠. 타이틀을 거머쥐기보다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레이스 중에는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저는 옆 선수 보면서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국내 시합 때도 많이 보고요. 주로 그런 생각들이죠.”

-가령 가수들은 쉴 때 노래를 안 부른다던데.

“저는 놀 때 수영장 안 가요. 유일하게 제 휴식시간에 수영을 하는 건 가족여행을 할 때예요. 몇 년 전 가족끼리 여행을 가서 조카들 등에 태우고 돌고래처럼 놀아줬는데 차라리 훈련을 하는 게 낫더라고요.(웃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그런 게 참 좋죠. 그때가 유일하게 수영하는 거고 친구들이랑은 절대 안 가죠. 야 딴 데 가, 딴 데.(웃음) 전 워터파크 같은 데도 못 가본걸요. 스키장도 딱 한 번 가봤고, 축구는 발 다칠까봐 못하고, 농구 좋아하는데 어깨 다칠까봐 맘껏 못해요. 설날, 추석, 제 생일에도 수영을 하니까 사실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외국은 크리스마스 때 많이 쉬잖아요. 크리스마스에도 훈련했어요. 365일 중에 쉬는 날이 없어요.”

-무슨 낙으로 살아요?

“목표 이루는 낙으로요.(웃음)”

수영은 외로운 종목이다. 0.01초의 기록을 두고 물속에서 홀로 분투해야 한다. 박태환은 요즈음 물 밖에서도 혼자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2009년 로마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했을 때도 ‘로마 날씨가 덥더라’며 밝게 웃던 그였다. 올림픽 출전 전망이 흐리다는 말을 하면서도 박태환은 웃었다.

박태환은 한국 수영의 상징이다. 그를 한국 최고의 수영선수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할 사람도, 그래서 그의 명성이 그의 도핑사건에 의해 퇴색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2000년대 이래 박태환의 신기록들이 한국 수영에 큰 물길을 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자신의 올림픽 출전 여부가 최종확정되기까지 할 수 있는 게 훈련밖에 없는 박태환은 오늘도 그 물길에 땀을 보태고 있다.

지난 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박태환 선수의 2016년 리우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70.9%가 ‘올림픽 출전에 찬성한다(매우 찬성 42.0%, 찬성하는 편 28.9%)’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