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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독학한 영국 번역자가 한강의 맨부커상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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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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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 옆에 스물아홉 살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가 나란히 섰다.

그는 16일(현지시간) 발표된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번역가로, 권위 있는 문학상의 영예와 상금 5만 파운드(약 8천600만원)를 나눠 갖게 된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맨부커상은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된다.

스미스는 심사위원장 보이드 턴킨으로부터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들은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면서 문학적 뉘앙스를 잘 살려 작품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BC 방송, 일간 텔레그래프 등 영국의 주요 언론은 질 높은 번역을 한 스미스가 불과 6년 전인 2010년 한국어를 독학으로 시작했고 첫 번역을 '한 낱말 건너 한 낱말씩' 사전을 뒤져 가며 했던 번역가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미스는 21세까지 오직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알았던 영문학도였다. 특히 한국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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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는 한국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스미스는 그러나 영문학 학위를 마치고 나서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때 영국에서 한-영 번역가가 적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번역은 읽기와 쓰기를 모두 하는 일이기에 번역가가 되고 싶었고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며 "이상하지만 한국어가 확실한 선택인 것 같았다. 이 나라에서 공부하거나 아는 사람이 사실상 거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미스는 자신의 한국어 회화 수준을 "딱 교재로 배운 사람이 하는 것 같은" 정도라고 자평했다.

2년가량 공부하고 나서 그는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첫 번역 때는 "사실상 단어를 하나 걸러 하나씩 찾아봐야 했던, 끔찍한" 실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년가량 지나 영국 유명 출판사 포르토벨로가 출간하기에 적합한 책이 있는지 문의했을 때 다시 번역을 시도했다.

결국 그는 안도현의 '연어',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서울의 낮은 언덕들',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동시대 한국 문학 작품을 다수 번역하는 번역가가 됐다.

특히 스미스는 소셜미디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자신에게 '채식주의자'는 '결정적 기회'(big break)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 번역가로서의 길을 열어줬다는 뜻이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매료된 그가 번역본 일부를 포르토벨로에 보내 출간이 이뤄진 것이 영국에 한강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화다.

턴킨 심사위원장은 '채식주의자'를 가리켜 "이 치밀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책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며 꿈에까지 나올 수 있다"며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스미스의 번역은 매 순간 아름다움과 공포가 묘하게 섞인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스미스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에 특화한 비영리 목적의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도 설립했다.

스미스는 3월 연합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번역할 때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라면서 "번역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적 감수성"이라며 문맥에 맞는 두 음절 형용사를 찾으려 며칠간 머리를 쥐어짠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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