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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노들의 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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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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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예술이다”란 감탄사가 객석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지난 1일 서울 엘지아트센터, 국립발레단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날까지 선보인 <봄의 제전>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일반적인 발레와 달리 발레리노(남자 무용수)가 중심인데, 40분 동안 쉴 새 없이 역동적인 군무가 이어진다. 힘 있는 동작과 날렵한 움직임을 보고 나면 발레가 이렇게 다이내믹한 장르인가 눈이 커진다. 체력 소모가 많다 보니 발레리노들은 “하고 나면 죽을 것처럼 힘든 작품”이라는데, 관객들한테는 발레리노의 매력에 빠지는 ‘입문서’가 된다. 발레리노를 주역으로 끌어낸데다가, 발레리노의 키워드라는 정교한 몸을 제대로 부각시키며 발레리노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발레리노가 중심이 된 작품이 예전보다 많아지면서, 발레리노의 정교한 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몸’이란 키워드로 발레리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발레리노의 이상적인 신체 조건은 따로 없다. 현재 국립발레단 발레리노들의 키는 보통 177~180㎝이지만, 수석무용수인 이재우의 키는 195㎝다. 발레리노의 실력을 가르는 것은 힘이다. 국립발레단 고일안 트레이너는 “발레리노는 여성을 들어올리는 보조자의 역할을 해주면서도 자신의 연기도 같이 소화해야 해 전신의 힘이 좋아야 한다”며 “특히 몸통에 해당하는 코어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힘찬 도약과 빠른 회전이 필요한 기술 등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많은 발레리노한테는 지구력도 필수다. 코어가 좋으면 지구력도 좋아진다.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들의 트레이닝을 맡고 있는 임준범 트레이너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힘”도 강조한다. 발레리노의 공통된 특징인 발레리나를 들어올리는 동작에서는 상체가 아닌 하체의 힘이 70%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바닥의 힘도 중요하다. 고 트레이너는 “발레리노는 토슈즈를 신지 않아 여러 동작에서 충격을 발바닥부터 받는다. 몸을 기둥처럼 땅에 박고 흔들리지 않는 균형감을 위해서는 발바닥과 발목으로 이어지는 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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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노 강민우가 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발레 동작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발레리노들은 발레 외에도 전신의 체력을 위한 운동을 따로 한다. 주로 웨이트트레이닝과 조깅 등 유산소 운동이다. 이재우는 “큰 키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매일 3~4시간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고 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근육이 몸을 지탱해야 해 손가락부터 발바닥 운동 등 부위별로 나눠서 한단다.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리노 강민우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싣는 자세가 많아 엄지발가락 운동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근육이 너무 크면 움직임이 둔해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근육만 키워야 하는 등 조심할 게 많다. 강민우는 “무게를 많이 올리지 않고 낮은 중량으로 횟수를 올리면서 잔근육을 만든다”고 했다. 힘을 주지 않아도 근육이 도드라져야 한다.

체력 소모가 많다 보니 발레리나처럼 혹독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 이재우는 “발레가 체력 소모가 커서 생각보다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재우는 하루 5끼를 먹는단다. 아침과 점심, 저녁은 모두 밥을 먹고 중간에 간식으로 햄버거를 먹기도 한다. “발레리노 20명 정도가 고깃집에 간 적이 있는데 그날 식당에 고기가 다 떨어진 적도 있다.”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김희현도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과 달리 발레리노 대부분은 엄격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발레리나를 들어올리거나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도 폭발력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민우는 “최근 살이 빠졌다. 오히려 더 찌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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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봄의 제전'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지만 힘든 동작이 많다 보니 늘 부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발목 인대 파열, 무릎 연골판 손상, 십자인대 파열 등 몸의 모든 곳이 위험 지역이다. 고 트레이너는 “높게 점프하고 발레리나를 드는 동작이 많아 발목이나 무릎, 어깨 손상이 가장 많다”고 했다. 발레리나를 들어올리면서 하체의 힘을 사용하지만, 합이 맞지 않으면 목으로 지탱해야 해 목이나 척추를 다치기도 한다. 다들 어디 한곳씩은 아프다.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김희현은 “정강이에 스트레스성 골절 증상이 있다”고 했다. 강민우는 “왼쪽 발목 인대 하나가 끊어지고 무릎 연골도 찢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되도록 수술은 하지 않는다. 수술은 마지막 선택, 재활의 힘으로 버틴다. 김희현은 “수술하면 4~5개월 정도 쉬어야 하는데, 쉬고 나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통증을 참는다”고 했다. 발레리노의 수명이 짧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내재되어 있다. 발레리노는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를 전성기로 본다. 40살에 대부분 은퇴한다. 김희현은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공연을 많이 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상에서 몸을 보호하려고 “축구 등 구기종목을 하지 않고”(강민우) “스키를 타지 않는”(김희현) 등 알아서 피해야 할 것도 많다.

몸이 자산인데,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발레단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트레이닝 매뉴얼’이 없는 현실은 아쉽다. 외국의 발레단 중에는 무용수들의 몸을 체계적으로 체크해 관리해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들 발레리노는 “발레리노들이 오랫동안 체력을 유지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매뉴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2007년부터 국립발레단에 상주하는 재활 트레이너가 생기는 등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이재우는 “발레는 예술이라 과학적인 트레이닝이 필요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가 있다면 자신의 몸을 더 잘 알게 되어 무용수로서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용걸 교수도 “내가 활동할 당시는 정보가 없어 혼자서 훈련을 했다”며 “발레리노의 수명을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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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엘리어트' 중

발레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아빠는 “발레는 남자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강민호·김희현·이재우는 모두 엄마 손에 이끌려 발레 학원에 갔다. 세상의 인식이 바뀐 것처럼, 발레리노도 점점 늘고 있다. 현재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단원의 30% 이상이 남자다. 이재우는 “10년 전부터 발레리노의 위상이 달라진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발레리노가 많이 등장하는 <스파르타쿠스>공연을 하려면 객원 발레리노를 초빙해야 하는 등 여전히 아쉬운 상황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발레리노들은 ‘몸 관리를 잘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무대에 서 발레리노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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