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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투병 2년, 삼성 승계는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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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LEE
Samsung Group Chairman Lee Kun-hee speaks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the Samsung Group headquarters in Seoul, Tuesday, April 22, 2008. Lee said Tuesday he was stepping down from his post at the top of South Korea's biggest conglomerate following his indictment on tax evasion charges.(AP Photo/Ahn Young-joon) |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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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은 삼성그룹을 이끌어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여전히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버지를 이어 삼성그룹 경영 전반에 운전대를 잡아왔다.

그가 ‘직무대행’을 하는 동안 삼성그룹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계열사 6곳이 매각됐고 남은 상당수 계열사도 사업부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건희 회장의 투병이 길어지면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삼성물산 지분의 17.23%를 보유한 이 부회장이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주식을 확보하고, 아버지의 지분을 물려받을 때 발생할 세금을 부담할 금전적 여력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을 총평하자면, 지배구조 개편의 사전 단계로 불리던 계열사 정리 작업은 숨가쁘게 이어졌지만 정작 중요한 첫 단추로 여겨지던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런 탓에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건 시점은 2014년 6월 삼성에버랜드의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꾸면서부터다. 그 뒤로 삼성테크윈·삼성토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을 한화그룹에 팔고, 삼성정밀화학과 삼성비피(BP)화학, 삼성에스디아이(SDI)의 케미칼사업 부문을 롯데그룹에 매각하는 등 그룹 사업을 전자·금융·바이오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몸집 줄이기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삼성물산의 3대 주주였던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의 반대에도 지배구조 개편에서 꼭짓점에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까지 성공하면서 경영 승계 작업이 한층 탄력을 받는 듯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다음 단계로 지주회사(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해 사업활동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세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건희 회장과 자녀들은 삼성물산 지분 가운데 약 31%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계열사들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뼈대로 하고 있는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는 다른 계열사들 지분 일부를 가지고 있는 중심 계열사다. 제일기획과 삼성에스디에스(SDS)·삼성엔지니어링·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이 직접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것이라고 보는 주된 이유는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율 고리의 강화에 있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의 7.75%를 가지고 있는 1대 주주지만 지분율이 그리 높지 않아 경영권 방어에는 취약한 게 사실이다. 또 삼성생명 고객들의 돈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도 끊임없이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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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쪼개서 만든 새 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있는 인적분할을 거쳐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각각 투자법인과 사업법인으로 쪼갤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도 삼성전자 지분의 4.18%를 가지고 있는데, 인적분할 과정에서 이뤄지는 주식 공개매수로 삼성전자 주식을 더 사들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삼성물산이 직접 신설 ‘삼성생명투자법인’(금융지주회사)과 ‘삼성전자투자법인’(비금융지주회사)을 지배하게 되면 이 회장 일가가 더 안정적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2월 보고서에서 “1단계로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2단계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를 세울 것이며, 마지막으로 정부가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를 허용하면 두 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를 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이투자증권도 지난달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경제개혁연대와 비슷한 전망을 내놓으면서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얻은 후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변환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최근까지도 활발한 준비 작업이 이뤄진 바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1월 자사주 300만주를 사들이고 삼성전자가 보유하던 삼성카드 지분 37.45%도 사들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분석가는 “그룹 전체적으로 사업 부문 구조조정도 일단락된 상태에서 삼성생명이 자사주를 사들인 것은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한 소각용도 아니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삼성그룹은 최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설립과 대주주 자격 요건에 대한 사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보험금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지는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진행을 보류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금융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지주회사 전환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금융지주사 전환이 이뤄지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당분간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지적한 내용들을 보완하고 그밖에 여소야대 상황과 정권 교체 등의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적어도 2~3년 안에는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삼성생명을 통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이외에도 삼성물산을 금융지주와 사업회사로 쪼개 사업을 재편할 가능성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게다가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진통이 심했기 때문에 삼성그룹이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상헌 분석가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은 먼 길을 돌아가는 방식이 된다.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 전환 작업부터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그 뒤에 이어져야 할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은 논의조차 어려운 상태다. 게다가 아직 사업 개편을 마치지 못한 계열사도 있다. 2014년 삼성중공업과 합병이 무산된 삼성엔지니어링, 매각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제일기획과 에스원 등이 남아 있다. 또 최근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에 맞닥뜨려 있다.

그런 탓에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앞서 재계에서 예상해온 3~5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이 기간 동안 이 부회장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한 이유를 한국 사회에 설명해야 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김상조 교수는 “아직 끝내지 못한 사업체 정리 등 사업 재편을 마친 뒤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삼성그룹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거의 동시에 공표할 수도 있다. 결국 삼성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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