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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로 만든 와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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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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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무엇보다 매력적입니다. 천상의 색이죠. 이 한 잔에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맛은 다 있습니다.” ‘제이엘(JL)크래프트’의 이종기(60) 대표가 자신이 만든 와인인 ‘오미로제’(OmyRose)의 잔을 들어 햇볕에 색을 비춰 보이고는 자랑에 나섰다. 와인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오미로제는 태양보다 더 찬란한 붉은빛이었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급 샴페인 제조방식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미자 와인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오미나라’에서 그를 만난 지난달 초는 봄 햇살이 날개를 활짝 펴기 시작한 때였다. 문경은 대표적인 오미자 주산지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오미나라는 와인 증류시설과 시음장을 갖춘 와이너리다. 매년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그가 직접 안내를 맡았다.

들머리에 한국에서는 낯선 오크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벽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미로제를 들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건배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오미로제는 201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핵안보정상회의 때 만찬주로 선정된 바 있다. 각국 정상들은 포도가 아닌 오미자로 만들어 독특한 향과 풍미를 자랑하는 오미로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시큼한 술 내음이 진동하는 1차 발효실에 들어서자 10개가 넘는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에 위치한 양조장 일부까지 합쳐 제이엘크래프트에는 500리터부터 2000리터까지 다양한 크기의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이 모두 35개 있다.

포도의 1차 발효 기간은 통상 3~4일이다. 하지만 오미자는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와인에 비해 제조 과정이 길고 복잡한 오미자를 이 대표는 왜 선택했을까?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작물로 세계적인 술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쌀, 보리, 수수, 감, 대추, 사과 등을 다 사용해 술을 만들어봤지만 오미자로 만든 와인이 최고였어요.”

오미로제 탄생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코틀랜드 헤리엇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교수가 연 파티에서 굴욕을 당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자국의 최고의 술을 가져와 자랑하는 자리였다. 당당하게 인삼주를 가져갔던 이 대표는 교수의 평을 듣고 실망이 컸다. 향이 있긴 하지만 조미료 맛이 강하다는 교수의 악평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인삼을 담갔던 소주가 원인이었다. 프랑스인 동급생이 건넨 스파클링 와인은 평이 좋았고 이 대표마저도 그 맛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세계적인 최고의 술을 언젠가 만들겠다고 결심했었죠.”

2006년에 ‘그때’가 왔다. 이미 그는 양조업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문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패스포트’, ‘시가램 진’, ‘윈저12’, ‘윈저17, ‘골든블루’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술이다. 국내 1호 양주 ‘오비씨그램’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한 그는 26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연고도 없는 문경에 정착해 술 연구에 매진했다. 지난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내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내가 먼저 나서서 오미로제를 자랑합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서 옅은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1차 발효실을 지나 그가 프랑스산 오크통이 수북하게 쌓인 방과 벽에 오미로제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 창고로 안내했다. 2차 발효실이자 숙성실이다. 오크통 숙성실에서는 ‘오미자 스틸 와인’이, 서늘한 기온이 감도는 창고에서는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된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급 샴페인 제조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병에서 2차 발효와 숙성을 한다. 병을 거꾸로 꽂아두면 각종 찌꺼기들이 아래쪽으로 쏠리는데, 그 부분만을 얼려 나중에 빼내는 방식이다. 탄산을 주입해 대량생산하는 스파클링 와인이 아니다. 오미로제의 탄산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와인처럼 자연생성된다. 병도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지금은 모두 6만병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정도가 되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포도와 달리, 오미자엔 천연 방부제 구실을 하는 성분이 많아 발효가 쉽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샹파뉴를 아홉 번이나 방문해, 오미자 발효에 효과적인 균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오미로제 맛은 어떨까? 은은한 단맛이 돌고 산미가 강하다. 상큼한 풍미와 오래 남는 잔향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생선 요리뿐만 아니라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취기가 빨리 오르지만 술이 깨는 시간도 빠르다. 오미로제의 맛은 외국인들이 먼저 알아봤다. 2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국제슬로푸드대회 ‘2014 살로네 델 구스토 테라마드레’의 한국관 앞에는 오미로제를 맛보겠다고 줄 선 외국인들이 장사진을 쳤었다. ‘조기 품절’되어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서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이 대표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오는 6월초 오미자로 만든 증류주를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