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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없는 사회' 단체, 18년 만에 '자진 해산'하다(선언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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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2015년 2월 23일 오후 동문·후배 및 각 기업들의 졸업 축하 메시지가 내걸린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교정 본관 앞에 청년실업 등 암울한 현실을 풍자하는 색다른 펼침막이 내걸려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펼침막의 주인공 황도영씨는 임용시험을 준비중인 상황을 격려하려 친구들이 걸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학벌없는사회’는 단체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자 한다. 이는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벌은 더 이상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98년 출범해 대학 평준화, 서울대 해체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교육에 관한 우리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쳐왔던 ‘학벌없는사회’가 지난달 25일 마지막 총회에서 내놓은 해체선언문 중 일부다. 선언문은 “노동 자체가 해체되어가는 불안은 같은 학벌이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아름다운(?) 풍속조차 소멸시켰다. …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이유있는 퇴장’에 대해 설명했다.

이 단체의 해산은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출신 계층에 따라 삶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해 ‘○○대 나오면 모하냐.. 백순데..’라는 한 명문대 졸업생의 펼침막이 등장했듯 ‘좋은 학벌=계층 상승’이라는 공식은 힘을 잃고 있다. 홍세화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는 “학벌에 의한 기득권 구조가 여전히 있지만 그보다는 자본의 위력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라며 “이젠 부모의 배경 없이는 학벌을 갖기도 어렵고, 가지더라도 당대의 노력으로 부모의 격차를 메울 수 없는 정도가 됐다는 인식”이라고 말했다.

오랜 격론 끝에 이 단체의 이철호(54) 전 대표와 회원 300여명은 ‘자발적 해체’를 선택하고 지난해 가을부터 해산 준비에 들어갔다. 갖고 있던 운영비를 0원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회비도 걷지 않았다. 마지막 총회를 기점으로 대표전화도 이젠 없는 번호가 됐다. 1명의 상근자도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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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용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철호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

지난 26일 만난 이 전 대표는 “우리 단체의 20대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가 더 이상 학벌사회가 아니라 자본사회임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만 해도 학벌 피라미드의 중추에 있는 대학의 재학생들이 우리 단체에 들어와 학벌을 타파하자며 뛰었다. 그런데 최근 10여명 남은 대학생 회원들은 모임을 조직해도 3주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 하러 가고, 등록금 대출 갚으러 일하러 가고, 학점 관리하러 간다. 이는 아이들 탓이 아니다”라고 현실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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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언문은 학벌사회의 정점으로 간주되는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 24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이 단체의 해산선언문 일부가 올라오자 당일 최고 조회수, 추천수 289건(28일 기준)을 기록했다. 이 글을 올린 서울대 학생(잊지**)은 “요약: ‘스카이’(서울대·고대·연대) 나와도 흙수저들은 ‘개털’이라 불쌍해서 깔 수가 없다. 깔 건 학연지연혈연이 아니라 자본”이란 주석을 달았다. 글 밑으로 “사회적 지위를 오르내리는 사다리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섭고 허탈한 기분이다. 이미 학벌의 사다리는 자본에 의해 붕괴되었다”(애큰**), “이토록 섬뜩하게 우리나라가 망가지고 있다고 느껴보는 건 처음이다”(따뜻***) 등의 댓글이 달렸다.

출범 초기 운영위원·사무처장 등을 잇달아 맡았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어떤 의미에선 한 시대가 매듭됐다고 볼 수 있다”며 “대학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해산 선언문 전문

학벌없는사회를 해산하며


- 대표 이철호


학벌사회의 모순은


2016년 봄, 우리는 여전히 학벌사회에 살고 있다. 한국의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시험과 평가에 의한 서열 체제이다. 초중등 교육과정을 왜곡하는 대학입시, 공정성을 가장한 평가는 교육목표의 도달이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학력이라는 오직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우고 있다. 이 서열은 능력으로 가장되며, 보다 낮은 서열은 패배를 내면화하고 있다.


학벌사회를 형성하며, 교육의 모순이 응결되어 있는 지점은 대학서열체제이다. 한국사회 대학서열체제는 교육력이나 학문과 무관하게 입학생들의 성적에 의해 결정되며, 졸업생들의 사회적 권력에 의해 완성된다. 구체적으로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하여 서울의 사립대, 수도권대, 지방국립대, 지방사립대 순으로 대학별 서열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높은 소득이 가능한 직업에 유리한 학과의 순서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학벌은 대물림의 신분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벌은 기존의 패거리가 장악하고 있는 사회 권력과 연계하여 부와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 결과 한국 사회의 학교는 공공성을 상실한 채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학벌을 얻기 위해서 개인과 가정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비용을 투여하고 있다. 결과는 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계층이 비용을 들여 학벌을 취득하고 나며, 그 학벌이 다시 자본이 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학벌체제는 보편적 적대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학벌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있을 뿐, 나와 너 사이의 공동의 이익은 없다. 나의 이익은 너의 손해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학벌체제는 한국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탈정치화시키는 장치이다. 이 경쟁의 장에서 사람들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시민적 주체가 아니라 오직 사적 욕망의 대리인으로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2. 학벌사회의 현재는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세계화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이념적인 기반을 두었으며, 이는 공공부문에 시장의 원리와 기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육의 시장화는 단지 정책적인 수단으로만 사용되며, 시장화 정책의 결과는 교육의 계급화로 나타난다. 시장화 이데올로기인 자율적인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기관의 다양화와 등급화는 차별과 배제의 기제로서 작동한다. 이는 고등교육기관만이 아니라 초중등학교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제 위기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일자리는 사라지고, 공공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며,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는 임시직 · 불안정 · 비정규 노동이다. 이로는 자기 삶을 계획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 삶의 시간과 공간은 뿌리가 뽑히고 짓밟혀 사랑, 식구, 마을 등 지속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는 파괴되고 있다.


졸업장을 바탕으로 고용당하기 위한 스펙경쟁에 휘말리다 보니 조각난 개체들로만 남는다. 공공복지가 실종된 한국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동시대와의 소통과 교류를 단절하고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독서실로 숨어야 한다. 위기, 그리고 불안은 존재를 부정하며 영혼을 갉아먹는다. 최악의 청소년 자살률,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 같은 암울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타살이지만 애써 외면당하고 있다.


재생산이 불가능한 삶은 같은 학벌이라는 심리적 연결도 끊어 내 버리고 모두를 파편화하고 있다. 노동 자체가 해체되어 가는 불안은 같은 학벌이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아름다운(?) 풍속조차 소멸시켰다. 학벌사회는 교육에서 비롯하지만 그 본질은 사회 권력의 독점에 있다. 그러나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키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 졌기에 학벌을 가졌다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학벌 패거리 문화가 존재하지만 이는 심리적 위안일 뿐 실제적인 통로로 작동하지 않는다. 학벌이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패거리집단이 형성이 되어야 하며, 무차별적으로 다른 이를 배제하고 같은 학벌에 유대적인 정서를 가져야 한다.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시대, 공동체성 자체가 소멸되는 사회에서는 집단성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경이롭다.


이는 교육에 투영되어 학벌사회와 함께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용당하기는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교육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학교는 여전히 학벌경쟁 체제에 사로잡혀 있다. 학교간 서열구조와 위기로 인한 불안은 청소년을 질식에 이르게 하고, 더욱 더 이른 시기에 진로를 결정하게 하며,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지워 버린다. 누구나 교육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으나, 변화는 일자리를 가진 자의 요구에만 부응하여 진행되고 있다.


3. 학벌없는사회는


그간 학벌없는사회는 우리 사회에 성, 장애 등의 원래부터의 다름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한 것이라 여겨진 학벌이 능력과 다르며, 기존의 차별 이상으로 우리 삶에 질곡이 되고 있으며, 사실상 신분제와 같은 대물림이며, 그것이 한국의 교육과 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음을, 그것이 한국 교육과 사회 권력의 근원적인 문제임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간의 노력으로 학벌이 차별임이 사회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또한 학벌없는사회는 이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입시개혁안, 대학체제 개편안, 지역별 인재할당 등 사회적 차별 금지방안을 사회에 제안했다. 이들 대부분은 진보적인 교육운동단체나 사회단체 그리고 정당 등에서 당면 과제나 강령으로 채택되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중운동으로 전개되어 왔다.


학벌사회를 깨뜨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생명을 건 경쟁교육으로 인해 삶은 조기화(早期化)화 되고, 고용불안으로 인해 노동은 조로(早老)하고 있다. 이 시대 대다수 절망한 청년들은 더 이상 지배적 권력의 획득을 욕망하지 않는다. 이미 패배를 충분히 내면화한, 가능성을 꿈꾸지 않는 청년들은 최소한의 삶의 유지만을 위해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7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학벌없는사회는 단체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자 한다. 이는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벌사회는 여전히 교육문제의 질곡으로 자리하고 있으나, 더 이상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 긴 시간 학벌없는사회의 이념에 동의하고, 우리 단체를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단체 활동을 중단하게 된 더 현실적인 까닭은 활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인적인 토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천만씨앗이나 학교밖 인문학, 월례토론 등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지만, 단체 초기부터 함께 했던 분들은 활동의 공간을 이전했음에도 새로운 활동가를 세워 내지 못했다.


이제는 학벌없는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자본의 독점과 노동의 불안, 그로 인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타자로만 남아 소멸되어 가는 개인들 - 학교밖 청소년, 불안정노동자, 사회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등 - 존재하나 보이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과의 연대의 길을 찾아 떠나려 한다.


2016.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