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인터뷰] 2015년, 한국의 '여성혐오'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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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주요 '여성혐오' 이슈

1월: 터키 실종 김군 "페미니스트 증오해 IS 합류 희망"


2월: 김태훈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칼럼 논란


4월: 유세윤·장동민·유상무, 팟캐스트에서 '여성비하' 발언


5월: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이사장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오면 뭐하나"


7월: 가수 송민호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8월: MBC PD수첩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9월: 맥심 코리아, 여성 살해유기 표지


10월: KFC코리아, 여성 비하 광고

뜨거운 한해였다. 각종 여성혐오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매우) 많은 게 현실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만큼 온 것일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2015년 한국 사회 '여성혐오'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위원을 8일, 11일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손 위원이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지적한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우리가 딛고 선 곳이 어디인지 판단하는 데 '참고자료'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여성혐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관화, 타자화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출처: 우에노 치즈코의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무슨 말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고? 손 위원이 설명하는 좀 더 쉬운 예시를 보자.

어떤 젊은 여성이 개를 데리고 지하철에 탔는데, 그 개가 지하철에 똥을 쌌다. 그런데 주인인 여성은 모르는 척하면서 내려버렸고, 대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치웠다. 이게 바로 유명한 '개똥녀' 사건이다.


그런데, 만약 거꾸로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가 개를 데리고 지하철에 탔는데, 그 개가 지하철에 똥을 쌌다. 그런데 주인인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하면서 내려버렸고, 대신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이 치웠다.


만약 이 사연이 관련 사진과 함께 인터넷상에 퍼졌다면 이 사건의 이름은 무엇이 되었을까? 대답을 생각해 보자.


...


아마도, '개념녀' 사건으로 불렸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개똥남' 사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실수 또는 잘못을 했을 때 거기서 '여자'라는 성별을 집어내서 'OO녀'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성 전체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 이게 바로 '여성혐오'의 실체이자 핵심이다.

2015년: '여성혐오'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진 시기

- '여성혐오' '페미니즘' 주제와 관련해, 올 한해는 어떤 해였다고 생각하시는지?

대중적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로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기인데, 이대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 여전히 '한국에 여성 혐오가 정말 있나? 우리가 여성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여성혐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매우 많으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역차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된 광화문 커피숍 인근 버스정류장에는 '남자는 보험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문구의 메트라이프생명 보험광고가 크게 걸려 있었다. 이 광고가 홍보한 '무배당 그녀를 위한 선지급종신보험'은 일주일 만에 500건 이상 팔리며 '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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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논란이 됐던 맥심 코리아 9월호 표지. 맥심 코리아는 전량을 회수해 폐기하겠다고 사과했다.

- 2015년은 2014년, 2013년, 2012년과 비교하면 뭐가 다른가?

김여사 등등 '여성혐오' 발언은 그전에도 항상 있었다. 언론에서 '여성혐오'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게 우에노 치즈코의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나온 2012년부터였으니까. 인터넷상의 '개드립'이 '혐오'라는 형식을 입게 되고, 삶의 조건이 각박해 지고,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증가하는 상황이 2012년, 2013년, 2014년 계속됐고 2015년에는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2014년 후반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특강을 갑자기 40번 정도 하게 됐는데 그중 '여성혐오' 주제가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다만, 여성폭력-여성차별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여성혐오'로 통합돼 이야기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해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patricia arquette

영화 '보이후드'의 배우 패트리샤 아퀘트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제는 미국에서 평등 임금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할 때"라고 밝혔다.

- 관심이 가장 높아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000년대는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페미니즘이 사라지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런 말을 많이들 하고, '페미니즘'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올해 초 김 군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라면서 IS에 가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네이버 검색어 1위에 '페미니스트'가 올랐는데,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김태훈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칼럼도 '여성혐오'가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칼럼은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엉망진창 글이었는데, 당시 페미니즘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여성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실존적인 위협'이 핵심이다. 여성들이 취직하면서 겪는 어려움, 직장에 들어가도 동등 임금을 받지 못하는 현실, 끊이지 않는 여성 폭력 사건. 실제 삶에서 물리적으로, 실존적으로 위태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나의 문제'를 말하고 싶을 때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들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 같다. 이전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면, 이제는 '이건 여성혐오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안에서의 변화와 더불어 한국이 큰 영향을 받는 미국 대중문화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엠마 왓슨의 히포쉬(HeForShe) UN 연설, 패트리샤 아퀘트의 '동등 임금' 수상 소감, 더 이상 착한 딸이길 거부하는 겨울왕국 엘사 등등 미국 대중문화의 변화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페미니즘: '다양한 성의 평등'을 지향하는 것

메갈리아와 여성운동

메갈리아: 여성주의 소설 '아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 갤러리'를 합쳐 만든 이름. '여성혐오'에 대항해 2015년 8월 사이트가 설립됐다. 미러링 방식으로 여성혐오의 불편한 민낯을 꼬집고 '소라넷 폐쇄' 운동 등을 주도했으나, '여자 일베'라는 비판이 따라붙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트 내에서 '게이 혐오' 발언이 터져 나와 '성 소수자 혐오'를 지양해야 한다는 축반대편 축으로 나뉘어 사이트가 분리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 올 한해 여성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메갈리아'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2015년 페미니즘 운동에서 '메갈리아'는 어떤 의미였다고 생각하나?

큰 줄기였다고 생각한다. 실천적 에너지의 차원, 담론 차원에서도 그랬다.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메갈리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으니까. 메갈리아 만큼 대중적이고, 가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성과를 끌어낸 곳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는 '여성운동'일까, 아닐까? 메갈리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거고, 외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상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역동적인 흐름이고, 한국 페미니즘의 성격과 담론을 풍부하게 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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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는 6월 중순부터 온라인에서 불법 몰카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위는 메갈리아가 온라인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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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일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메갈리아는 하나의 이름, 성격으로 규정될 수 없는 역동적인 흐름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곳에는 페미니스트와 여자 일베 등등이 섞여 있다. '메갈리아=여자 일베'라고만 하기에는 그곳에 다양한 결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말 '여자 일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 소수자 혐오'를 내면화 하고 있는 메갈리안들에 대해서는 매우 염려한다. 그것은 '미러링을 가장한 혐오'일 뿐이다. 세상의 억압, 폭력을 바라보는 기준을 명백하게 '젠더' 하나로만 단순화시켜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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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 팟빵' 방송이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4월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사과하고 있다.

단골로 나오는 '여성혐오' 관련 주장 3가지에 대하여

- "현재의 페미니즘이 문제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는 '여성혐오'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등등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무엇이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페미니스트'라고 딱지 붙이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잘못했기 때문에 여성혐오가 생긴 게 아니라 여성혐오가 만연하니까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도 커지는 거다.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여성혐오가 본격 등장한 것은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 후였던 것 같다. 당시 혐오의 대상이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페미니즘 혐오' '여성혐오'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혐오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유럽이나 서구 국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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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송민호는 7월 '쇼미더머니4' 3차 오디션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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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오래전부터 '역차별' 사회가 됐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나아지고,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의 소득은 남성의 65%에 불과하고,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똑같이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남성보다 다섯배는 더 한다. 여전히 제도적, 구조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 "'여성혐오' 만큼이나 '남성혐오'도 만만치 않다"

개인적인, 감정적인 차원에서 '남성혐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남성혐오'란 불가능하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데리고 탄 개가 똥을 쌌는데, 그 똥을 여자가 치웠을 경우를 다시 생각해 보자. '개똥남 사건'으로 불리며 남성에 대한 차별,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의 인식이 생겨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별 위계 안에서는 늘 여성이 그 대상이 된다. '구조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그리고, 2016년

- 이제 2016년이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상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여성단체에 후원하는 것은 좋은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지 후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의제가 이야기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거기에 목소리를 보태는 게 중요하다. '나는 한 달에 만 원 냈으니까, 운동은 너희가 하렴'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동참하는 게 '정치세력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 문제를 잘 다루고 있는 의원을 찾아서 지지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여성 혐오적인) 대중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대중문화는 현실의 반영이면서도 현실을 만들어내니까.

2015년에 '여성혐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높아질 줄 어느 누가 예측했을까? 여성들이 실존적으로 삶을 위협당하는 세상에서, 몇 가지 계기들과 맞물려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다. 2016년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저는 어쨌거나 가르치고, 글을 쓰고, 담론을 만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여성단체에 후원하고 싶다면?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언니네트워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혐오' '페미니즘'을 더 알고 싶은 이들이 보면 좋은 책 (By 손희정)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저)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윤보라, 임옥희, 정희진 외 3명 저)


오빠는 필요없다 (전희경 저)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저)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