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한글판에는 '범죄 수준'의 왜곡번역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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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이 경제성장 및 불평등과 관련해 그동안 역설해온 학문적 주장이 한국에서 엉뚱하게 잘못 이해되거나 오독되고 있다.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주장 따위가 대표적이다. 여러 오해를 초래한 진원지 중 한 곳으로 그의 책을 번역 출간한 한 경제신문사(출판부)가 꼽힌다. 이 번역본은 <21세기 자본>의 피케티와 디턴을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경제학자로 자의적으로 대비시켜 보수우파 경제이데올로기를 설파하면서 동시에 마케팅을 위해 디턴을 ‘동원’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의도적인(?) 번역 왜곡과 오역을 자세히 짚어낸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전문을 게재한다. 블로그 원문 바로가기


프린스턴 대학교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은 경제학자인데, 그나마 하나 들어와 있는 것이 그의 최근작(2013년) <위대한 탈출>이고, 이 책은 이번 그의 노벨상 수상과는 관계가 (있긴 있지만) 다소 멀다. 이 책은 작년 9월 초에 발간되었는데, 그러니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이미 한국사회를 휩쓴 뒤이고 또 그것의 한글판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경제신문’이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경제지 산하의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경 출판사의 책 중에 좋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디턴의 이 책도 그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의 좌-우파간의 경제체제 논쟁(증세, 복지, 재벌 등), 특히 피케티를 통해 본격 촉발된 불평등과 증세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세가 있자, 그에 대한 ‘대항마’로 이 책 ‘위대한 탈출’이 선택되었다. 구체적인 번역 경위는 모르지만, 실제로 ‘피케티 vs 디턴’은 이 책의 주요한 마케팅 내지는 셀링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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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0월14일자 신문 1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한경 측의 주장은 이런 거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모순이며 극소수의 부자들 손에 엄청난 부가 집중되는 것이 그 증거라면서 소득세 누진성을 높이고 그들에게 높은 자본세를 매겨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기실 불평등이란 성장의 동력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통해 불평등이 줄어드는 경향도 있으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하기 위하여, 디턴의 ‘위대한 탈출’이 ‘동원’된 셈이다.

당연히 이 책을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들은 분노했다. 왜? 디턴의 이 책은 그런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턴은 ‘위대한 탈출’의 한 대목에서 피케티의 연구(‘21세기 자본’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을 때다)를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면서, 그의 작업이 불평등에 대한 사고방식과 연구방향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서구의 언론에서도 디턴과 피케티를 대비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둘은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하여튼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이 신문과 함께 자동연상되는 자유경제원 및 관련된 주요 인사들(현진권 원장, 정규재 논설위원 등)은 다양한 기사, 칼럼, 논설 등에서 자신들의 ‘자유주의’ 이념을 설파하는 데 디턴을 ‘인용’하였다. ‘위대한 탈출’이 ‘피케티 vs 디턴’이라고 씌인 시뻘건 띠지를 두르고 세상에 나타난 것은 물론이다.

자… 여기까지는 나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역사도 국가가 나서서 왜곡하시겠다고 하는 나라 아닌가? 이 정도는 애교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원제목에 붙은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라는 구절이 빠진 대신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라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구절이 붙은 것을 봤을 때도.. ‘뭐, 저 정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다.

한국경제신문이 펴낸 ‘위대한 탈출’은 단순히 마케팅만 자기들 입맛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 부제목뿐만 아니라 부(part), 장(chapter), 절(section)의 제목이 대부분 바뀌었고,

- 절의 경우, 원문의 절 구분을 빼는 동시에 없던 절 제목을 집어넣기도 했고,

- 원문의 내용 중 일부를 자기들 멋대로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 심지어 자리를 옮기기도 했으며,

- 어떤 경우엔 원문에 없는 것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보기엔 이쯤 되면 거의 ‘소송감’이 아닌가 하는데.. 물론 원출판사 및 저자와 이에 대한 사전협의가 되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프린스턴대 출판부와 노벨상 수상자가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허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생략의 경우엔, 이 책을 원문대조 없이 한글판만 읽으신 분들이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 책의 원문에는 ‘Preface’와 ‘Introduction’이 모두 붙어있는데, 일단 한글판에는 저 ‘Preface’에 해당하는 게 완전히 없다. 이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하지만 이 책의 전체 논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Introduction’은 원문의 (놀라지 마시라) 3분의 1 정도만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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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넓으신 분은, ‘바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핵심만을 전달해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이해하려고 하실 분도 계시겠다. 그렇다면 왜 저들은.. 우리말로 ‘프롤로그’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저 ‘Introduction’의 말미에 난데없이 원문의 ‘Preface’의 중간에 있는 한 구절을 집어넣은 것일까?

자질구레한 ‘증거’를 이 자리에서 내놓는 것은 나의 ‘잉여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일단은 보류하고… 결론만 말하겠다. 위와 같은 ‘왜곡’의 결과 무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두 가지 변형을 겪은 게 아닌가 한다. 첫째, 디턴이 본문에서 수차례 강조하듯 이 책은 원래 ‘부와 보건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바로 그 보건에 대한 논의의 일부가 주로 생략되었고 그에 대해 의미 부여하는 부분도 사라져, 보건을 다루는 것이 굉장히 부차적인 지위로 가라앉아버렸다. 이것은 국제기구 등을 통해 전세계 보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온 디턴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둘째,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의의부여가 (내가 보기엔) 적지 않게 왜곡되었다. 아니.. 적어도 그런 왜곡을 시도했다는 심증이 크게 든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눈밝은 독자들에게는 그러한 시도가 먹혀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A. 한글판에선 ‘프롤로그’로 이름붙여진 ‘Introduction’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 제목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자신은 ‘대탈출’에 성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 몇몇을 뺀, 그러니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루겠다고 하면서…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게 매우 중요함을 역설하는데.. 한글판엔 다음과 같은 이 대목이 완전 빠졌다.

(원문) A phrase in my subtitle, “the origins of inequality,” comes from thinking about the POWs who did not escape. [. . .] Yet we should think about them. After all, the number of POWs in German camps who did not escape was far greater than the few who did. Perhaps they were actually harmed by the escape, if they were punished or if their privileges were withdrawn.

에… 당연히, 결과는 ‘탈출’이라는 측면에 포커스가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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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2일(현지시각) 교내 알렉산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상소감을 밝히며 양손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AP

B. 경제성장의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역사상 높은 경제성장을 촉발시킨 산업혁명과 세계화를 다루면서.. 그것이 사실은 성장뿐 아니라 불평등도 증가시켰다는 대목.

(한글판) 오늘날의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점점 많은 발전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점점 많은 불평등을 낳고 있다. 중국과 인도, 한국, 대만처럼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난했던 국가들이 세계화를 등에 업고 현재 부유 국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아프리카 대륙 국가가 상당수 포진한 빈곤 국가 목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운 신흥 공업국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불평등을 탄생시켰다. 일부가 탈출하는 동안 일부는 뒤에 처진다. 세계화와 더불어 새로운 방식은 부유 국가가 더 많이 발전하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부유 국가의 현재 성장률은 빠르게 성장하는 빈곤 국가보다도 낮다.

보건분야의 발전은 경제발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 . .] (7쪽)

(원문: 파란색 부분만 번역됨) Today’s globalization, like earlier globalizations, has seen growing prosperity alongside growing inequality. Countries that were poor not long ago, like China, India, Korea, and Taiwan, have taken advantage of globalization and grown rapidly, much faster than have today’s rich countries. At the same time, they have moved away from still poorer countries, many of them in Africa, creating new inequalities. As some escape, some are left behind. Globalization and new ways of doing things have led to continuing increases in prosperity in rich countries, though the rates of growth have been slower?not only than in the fast-growing poor countries, but also than they used to be in the rich countries themselves. As growth has slowed, gaps between people have widened within most countries. A lucky few have made fabulous fortunes and live in a style that would have impressed the greatest kings and emperors of centuries past. Yet the majority of people have seen less improvement in their material prosperity, and in some countries?the United States among them?people in the middle of the income distribution are no better off than were their parents. They remain, of course, many times better off than still earlier generations; it is not that the escape never happened. Yet many today have good reasons to worry whether their children and grandchildren will look back to the present not as a time of relative scarcity but as a long-lost golden age.

When inequality is the handmaiden of progress, we make a serious mistake if we look only at average progress or, worse still, at progress only among the successes. The Industrial Revolution used to be told as a story of what happened in the leading countries, ignoring the rest of the world?as if nothing was happening there, or as if nothing had ever happened there. This not only slighted the majority of mankind but also ignored the unwilling contributions of those who were harmed or, at best, just left behind. We cannot describe the “discovery” of the New World by looking only at its effects on the Old. Within countries, the average rate of progress, such as the rate of growth of national income, cannot tell us whether growth is widely shared?as it was in the United States for a quarter of a century after World War II?or is accruing to a small group of very wealthy people ?as has been the case more recently.

I tell the story of material progress, but that story is one of both growth and inequality.

Not Just Income, but Health Too

Progress in health has been as impressive as progress in wealth. In the past century, life expectancy in the rich countries increased by thirty years, and it continues to increase today by two or three years every ten years. [. . .] (pp. 5-6)

여기서 보다시피.. ‘성장’과 함께 책의 핵심 테마 중 하나로 제시되는 ‘불평등’이 번역과정에서 성장의 부산물쯤으로 격하되었으며, 하나의 독립적인 절로 나뉘어 고유한 논의주제를 형성하는 의료/보건문제도 부차적인 지위로 강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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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그리하여 원문의 다음 대목도 번역본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These “health inequalities” are one of the great injustices of the world today. When new inventions or new knowledge comes along, someone has to be the first to benefit, and the inequalities that come with waiting for a while are a reasonable price to pay. It would be absurd to wish that knowledge about the health effects of smoking had been suppressed so as to prevent new health inequalities. Yet poor people are still more likely to smoke, and the children who are dying today in Africa would not have died in France or the United States even sixty years ago. Why do these inequalities persist, and what can be done about them?

This book is mostly about two topics: material living standards and health. They are not the only things that matter for a good life, but they are important in and of themselves. [. . .] (pp. 7-8)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만도 이보다 훨씬 많은데… 일단은 여기까지만 기록해 둔다. 지금까지는 ‘Introduction’만을 가지고 썼는데… 본문에는 이보다 더 엽기적(?)인 것도 적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거의 범죄 수준의 심각한 왜곡이 아닌가 한다. 심심하신 분은 스스로 해보시길. 마침 영어원문의 일부가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 홈페이지(클릭)에 게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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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에서 공개한 ‘Introduction’ 파일에, 번역된 부분을 표시한 것. 파란색으로 하일라이트된 부분만 번역됨. 보시다시피 전체의 약 1/3만 번역되었음. 뿐만 아니라 번역된 부분들도 순서가 일부 바뀌었고(예컨대, Introduction을 여는, 지금은 디턴을 상징하는 구절처럼 되기도 한, ‘Life is better now than at almost any time in history’라는 문장도 저~ 뒤에 나옴), ‘Introduction’에 있지도 않은 문장이 다른 부분에서 뚝~ 떼여 덧붙여지기도 함. ㅎㅎ

관련기사 : 당신이 오늘 읽은 노벨경제학상 해설기사는 엉터리다




디턴 교수 “우리가 조사중이다”

angus deaton

이번 한글번역본을 둘러싼 왜곡 및 오역 논란과 관련해 저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가 직접 “우리가 지금 조사중”이라고 밝혀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 교수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한글 번역본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를 담은 나의 블로그 글은 지난 18일(일) 오후에 올려졌다. 이 글이 공개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금까지 2500회 이상 공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누리꾼들이 이번 사안을 영문 원본 출판사(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와 저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고, 실제로 몇몇은 출판사와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중에서 한 누리꾼은 자신이 저자인 디턴 교수로부터 받은 답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누리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저자뿐 아니라 프린스턴대 출판사로부터도 답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누리꾼이 보낸 전자우편에 대한 답신 전자우편을 통해 디턴 교수 쪽은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이번 사안을 “우리가 현재 조사중이며 계속 더 추적조사해볼 것”이라며 “당신이 이 문제를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참고로, 19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도 디턴 교수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이번 번역본 논란과 관련해 번역 경위와 내용에 대한 조사에서 진전된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디턴 교수가 이 누리꾼에게 보낸 전자우편 답장 전문이다.

From: Angus S. Deaton

Date: Mon, 19 Oct 2015 at 03:58

Subject: Re: ‘deliberate distortion’ on your work translated in Korea

To: Subin Kim <****@subinkim.com>

Thank you for this. We are investigating, and will follow up.

You are not the only person who has noted these issues.

Sincerely

Angus Deaton

Dwight D Eisenhower Professor of International Affairs

Professor of Economics and International Affairs

Woodrow Wilson School

361 Wallace Hall

Princeton University

Princeton, NJ 08544

http://www.princeton.edu/~deaton

Tel +1-609-258-5967

Fax +1-609-258-5974


관련기사 :

수정 사항 제안

인터넷 세상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한국 번역본은 사기다

[세상 읽기] 왜곡된 디턴과 힘겨운 탈출 / 이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