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진작 위해 한국에도 양적완화가 필요하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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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양적완화’ 정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국책연구원에서 나왔다. 기준금리 조정 등 통상적인 통화정책으로는 장기 내수 부진을 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지난 7일 저녁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과 한 간담회와 그 뒤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내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선 한차례에 한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책연구원에서 양적완화 정책 도입 제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장은 양적완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2008년 위기 이후 기준금리의 전달 경로가 약화되고 심지어 장기 시장금리와의 방향성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정책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그 근거로 두가지 분석 결과를 내놨다.
먼저 2008년 위기 이후 정책금리 조정의 전달 경로가 크게 약화됐다고 이 원장은 주장했다. 연구원 분석 결과, 위기 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은 기준금리보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심지어 기준금리와 10년 만기 국채 금리의 상관도는 음(-)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장기 국채 금리가 오히려 올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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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조정이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다. 위기 전(2001년 1월~2008년 8월) 기준금리와 내수 간의 상관도는 0.18이었으나 위기 후(2008년 9월~2015년 2월)에는 -0.33으로 나타났다. 이 원장은 “위기 후 기준금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채널이 작동한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이 제안한 양적완화는 한은이 ‘부실채권정리펀드’를 만들어 중소기업·가계의 부실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부실 채권을 한은에 넘긴 은행은 대출 여력이 커지고, 가계나 중소기업은 빚 부담을 일부 덜 수 있어 소비나 투자 여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채무자의 빚 탕감 수준은 부실채권정리펀드 운용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한은은 금융기관에 취약 계층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부실 채권 매입의 전제 조건으로 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매입 대상 채권으로 중소기업 대출(10조1000억원)과 은행권 가계대출(3조1000억원), 제2금융권 부실 채권(14조1000억원), 햇살론 등 서민대출채권(12조4000억원)과 현재는 정상 채권이나 부실 채권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 채권(19조3000억원) 등 모두 60조5000억원 규모를 거론했다. 이 원장은 “한은이 직접 부실 채권을 사들여도 되지만, 정부가 부실 채권 매입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한은이 이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은이 부실 채권을 매입할 수 없다. 한은의 매입 대상 채권은 국채와 정부보증채권,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말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위해선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채권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한은의 채권매입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은은 지금껏 신용 위험이 없거나 적은 채권을 매입 대상으로 정해왔다. 주금공 채권도 2014년 6월 모기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입 대상 증권에 포함시켰으나, 환매(되파는)를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일형 원장은 “심각한 내수 부진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검토되고 토론될 필요가 있다”며 “국책연구원의 역할 중 하나는 정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정책기획국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지내는 등 국제통화기금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 중 한 명으로, 2013년 8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으로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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