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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재팬 독점 인터뷰] 만화의 거장 우라사와 나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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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가진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54)는 <야와라!> <몬스터> <20세기 소년>을 비롯, 많은 히트작으로 알려진 귀재다. 그런 우라사와 나오키가 스스로 기획한 프로그램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공부>가 2014년 11월 에서 방영되었다. 만화가의 성지라고도 할 수 있는 작업 현장에 돌입해, 그들의 펜 촉을 쫓아간 다큐멘터리다. 스마트폰 용 만화 애플리케이션이 보급되고, 만화 잡지의 전자판이 발간되고, 만화의 해외 수출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 일본의 만화 환경은 크게 바뀌고 있다. <만화 공부>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우라사와 씨는 일본의 만화를 둘러싼 현 환경에서, 만화가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를 들어봤다.

독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당연한 관계성’이 엮이지 않는다

-우라사와 씨는 일본 만화를 둘러싼 환경을 보고, 만화가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안고 있나요?

=음.....’문제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작품을 한 번도 전자 서적화 한 적이 없어요. 종이 매체로만 하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원시인이고(웃음), 저 같은 사람은 이제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죠. 왜 하지 않느냐면, 만화를 일단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걸 원치 않아요. 그리고 만화라는 건 좌우 페이지를 펼쳐가며 읽는 거니까 그게 유지되지 않는 매체로는 보지 않았으면 해요. 페이지를 좌우로 펼쳐 놓은 상태에서 눈이 어떤 식으로 페이지 전체를 쫓아가는가가 만화의 연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료로 읽는 만화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화를 무료로 본다’는 개념이 아무리 생각해도 딱 들어오질 않아요. 만화라는 건 원래 비싼 거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무렵에는 단행본 한 권에 220엔부터 250엔 정도였죠. 매우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처럼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었어요. 책방에서도 ‘타치 요미(서서 읽기)’를 허용하기 싫으니까 애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에 진열했죠. 그걸 바라보면서 ‘좋구나. 돈이 모인다면, 저 단행본을 사겠다’라며 동경해왔어요. 그런 세대이기 때문에 만화를 무료로 본다는 것은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간신히 손에 넣는 거였거든요. 영화든, 음악이든 사정은 마찬가지였어요. 근데 그게 무료가 되면, 동경은 없어집니다. 게다가 ‘시시하네’라고 무시하는 시선도 다 없어지고 말아요.

물론 만화가 무료가 되었다고는 해도 만화를 배급하는 회사가 작가에게 돈은 지불하지요. 하지만 그건 이 문제와 관계가 없습니다. 만화가와 독자 사이에 ‘대가를 내고 구입한다’는 계약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가를 내가 구입해야만 작품에 대한 경의랄지, 역으로 말하면 불평할 수 있는 권리랄지, 여러 가지가 발생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무료라면 뭐랄까 그 ‘당연한 관계성’이 생기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돈을 낸 사람에게는 계속 불만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무료로 볼 거라면 궁시렁궁시렁 하지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래 작가에게 있어서 궁시렁궁시렁 얘기해주는 독자의 존재란 매우 중요해요. 물론 ‘재미있어요’라고 말해주면 기쁘지만. 그러니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지불하고 산 의견이란 건 무게가 다르다는 이야깁니다. 만화가와 독자의 위치가 이상하게 대등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는 뭐든 보거나 들을 때에는 가능하면 스스로 구입합니다. 내 돈으로 지불을 했을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걸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수신인(독자)이 직접 돈을 지불한다’는 시스템을 다시 한 번 부활시킬 수 없을까를 고민 중인데요, 지금의 흐름을 멈추는 건 어렵네요.

-우라사와 씨의 작품은 세계 약 20개국에서 발행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많이 사랑받고 있는데요. 일본의 만화는 해외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입니까?

=우선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예를 들어 귀여운 소녀가 나오는 ‘모에 계열’의 만화와, 타니구치 지로가 그린 만화는 완전히 장르가 다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일본 만화가 인기다’라는 것은 ‘각각의 장르에서 인기가 있다’는 의미겠지요. 영화로 말하면 <트랜스포머>와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같은 장르로 얘기하지는 않잖아요? 둘 사이에 우열을 매기자는 게 아니에요. 전부 같이 얘기하기 시작하면 매우 대충 얼버무린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 만화를 ‘9번째의 아트’라고 인식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고, 결국 ‘타니구치 지로 같은 만화가를 필두로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를 아트로 받아들이는 이런 인식은 일본에는 없지요. 그래서 저는 프랑스에 가면 ‘이렇게 제대로 아티스트로서 받아들여 주는 건 처음이야’라고 생각해버립니다. 일본에서 그런 대접이나 취급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차별 용어로서의 ‘만화'

-의외이네요.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른가요?

=실은 그 부분이 오랜 시간 품고 있는 문제의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는데요, 읽었던 건 소위 잘 팔리는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좀 더 마니악하고, 어떤 의미에선 문학적인 만화를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우라사와, 너도 만화를 그리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을 땐 ‘만화라고 해도 너희가 그냥 만화라고 얘기하는 것과는 달라’라고 항상 속으로 생각했어요. 좀 싫은 타입의 아이었죠. ‘내가 얘기하는 만화란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같은 만화야,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이랑은 달라’라고 말입니다. 물론 <파렴치 학원>도 <파렴치 학원>으로 재미있지만요.(웃음) 친척 아저씨가 ‘나오키 군, 만화 잘 그린다면서?’라고 얘기하면 저는 또 속으로 ‘아저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는 만화랑은 다르니까’ 홀로 생각했지요. 모두가 만화를 얘기하지만 누구도 진정한 만화가 뭔지는 잘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건방졌죠.

그런데 아직도 일본에서는 국회의원 같은 사람이 나와서 ‘뭔가 만화 같은 얘기 하고 있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도 ‘또 만화 같은 얘기하고 앉아있네’라는 식의 표현들을 쓰곤 하죠. ‘저는 만화는 읽지 않습니다’라는 사람도 있죠. 그건 곧 ‘저는 만화 따위 읽는 사람이 아니니까요’라는 우월 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그 정도로, ‘만화’라는 단어가 일종의 차별용어가 되어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 점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 짜증이 나 있었어요. 하지만 실은 그런 차별 때문에 만화가 이렇게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와 지금처럼 거대한 문화가 될 수 있었다는 점도 물론 잘 알고 있지만요.

-우라사와 씨와 대중 사이에는 ‘만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네요.

=뭐랄까요. 제가 직업으로서 만화를 하게 되고, 이름도 조금 유명해지고 나니 만화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런데 모두 만화를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종종 "우라사와 정도 잘 팔리는 선생이 되면 이제 대부분 제자한데 맡기고, 자기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 아냐?"라고 물어봅니다. 농담 아니고 저는 1부터 100까지 다 그리고 있다고요!(웃음) 그러니까, 친척 아저씨가 ‘나오키 군, 만화 잘 그린다면서?’라고 물었던 그 옛날과 상황이 거의 바뀌지 않았어요.

이제 거의 50년 이상 만화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만화를 보는 시선이 대중과 나 자신 사이에선 계속 달라요. 머릿속 어딘가의 이 ‘답답한 기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편견을 바꿀 수는 없을까? 그런 모색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것 중 하나가 올해 11월 9일 에서 방영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공부>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얀 종이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을 만화가의 시선으로, 노 컷으로 보여주면, 세상의 시선이 확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모두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고 싶었달까요. 다소 오만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게 프로그램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만화 공부>에서는 <침묵의 함대>의 카와구치 카이지와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야마시타 카즈미의 작품현장을 밀착 촬영해, 펜촉에서부터 만화가 태어나는 모습을 쫓고 있는데요, 두 사람 정도의 거장도 여전히 주저하고 헤매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야 당연히 고민하죠. 눈 앞에 있는 건 매일 매일 하얀 종이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몇 만개나 있는 거니까요. 그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면서 그리는 거에요. 고민하는 건 당연하지요. 테즈카 오사무 선생이 1947년에 발표한 <신보물섬>으로부터 일본의 만화라는 건 단번에 지금의 방향으로 크게 키를 돌려왔는데요, 그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만화가의 눈 앞에는 항상 저런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직접 그리지 않고 어시스턴트들에게 맡기는 사람도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사람 손으로 하얀 종이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만화가 혼자서 발버둥 치면서 초조해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어시스턴트라고 불리는 사람은 지시에 띠라 작업을 합니다. 그게 매주 모두의 눈앞에 인쇄된 상태로 전달되니까 독자들은 별 생각 없이 보는 거예요. 값싼 종이에 인쇄된 것을, 매우 빠른 스피드로 훌훌 넘기면서 말입니다. 만화의 독서 방식으로는 그게 옳습니다만, 그것을 매주 매주 해나감으로 인해 모두 중요한 걸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간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

-만화는 인간이 그리고 있는데 마치 공업제품처럼 취급되고 소비된다고 할까요?

=맞아요. 주간지의 연재란 대부분 18~20페이지입니다. 7일 동안 그만큼의 페이지를 그린다는 건 말이죠, 그런 작업량은 인류 사상 없다고 생각해요. 전후의 일본인밖에 할 수 없었던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1959년에 만화 주간지 <소년 매거진>과 <소년 선데이>가 창간됐습니다. 제가 1960년 1월생이니까 거의 같은 나이에요. 그때까지 만화라는 건 월간지, 그 전에는 ‘대여본’이라는 사이클로 발행되어 왔습니다. ‘대여본’으로 시작해 월간지가 되고,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신 나게 즐기며 읽었습니다. 그때 ‘이건 주간으로 출판해도 여유 있게 팔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 강담사(코단샤)와 소학관이 <매거진> <선데이>라는 주간지를 동시에 창간했습니다. 현장의 편집자도 만화가도, 모두가 ‘주간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건 절대 무리야’라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상층부에서는 ‘무리라는 건 알아요. 알지만, 일단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지켜봅시다. 안된다면 다시 월간 페이스로 돌아가면 된다. 일단 ‘주간’이라는 것에 도전해보자’라고 했죠. 그게 1959년에 시작됐어요. 일단 시험 기간으로 시작했는데 이후에 되돌리지 못한 채 55년간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터무니없는 공을 쌓듯이, 우리는 소학관 시절에 만화 주간지 50만 부 돌파, 100만 부 돌파....눈 앞에서 계속 기록을 갱신했어요. 120만 부 돌파, 200만 부 돌파....계속 늘었죠. 만화 붐도 그걸로 확 올라갔어요. 만화가들도 고통을 견디며 작업했어요. ‘꼭대기를 모르는 문화’라는 건 엄청난 거죠. ‘꼭대기를 한번 차지해보는 건 어때?'라던 시대였죠. 엄청났어요. 그래서 기네스 기록에도 올라간 1995년 <점프>의 653만 부 판매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독자에게는 ‘주간으로 만화가 도착한다’는 게 평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착각이 시작된 거죠.

하지만 도중에 ‘그림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대략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때까지의 그림은 테즈카 오사무 선생이 그린 <신보물섬>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도에 <아키라>의 오토모 가즈히로가 <동몽>이라는 작품을 내며 만화계에 쇼크를 줬어요. 처절한 뎃생의 힘, 치밀하고 리얼한 풍경 때문이었죠. 다들 ‘이제부터는 이런 그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도 당시, 19, 20살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그림체를 확 바꿨습니다. 그렇게 하니 주간 연재는 무리였어요. 그래도 지금은 ‘오토모 카즈히로의 퀄리티가 만화의 퀄리티’라고 굳어져 있지요.

요즘 만화 주간지의 목차를 보면 ‘OO선생은 이번 주, 취재(혹은 급한 병)으로 인해 쉽니다’라는 공지가 있고, 반드시 2, 3명은 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주간 연재가 아니라 격주간 연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주간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매주 나오지 않잖아!'라며 화를 내죠. 주간으로 만화가 연재된다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우리 모두 '하얀 종이 위에서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것이 만화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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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뛰며 읽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그리고, 다들 만화를 매우 빠른 속도로 건너뛰며 읽습니다.

=우리 역시 건너 뛰며 읽는 속도감을 상정하며 만들고 있고, 그렇게 읽는 것이 만화의 묘미이기 때문에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엄청난 그림이구나’라고 하면서 하나하나 배경에서 눈이 멈춰 버리면 템포가 이상해져요. 팟팟팟팟,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림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줄거리만을 쫓아가는 꼴이고, 그림 퀄리티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우리처럼 만화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읽은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 ‘이 그림 엄청나네’라며 감동하거나 하거든요. 그저 그런 독서 방식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만화를 조금은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요, 독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고 읽으면 결국 줄거리를 쫓다가 끝나는 독서 방식이 되어버린다는 걸까요?

=맞아요. 고마움을…(모르죠?). '이 만화를 읽고 왜 이런 기분이 될까’ 싶을 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 ‘아, 여기에 이런 그림이 있었구나!’라고 알아차리곤 하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여기서 펼치면 이런 경치가!’랄지 ‘하하앗!’이랄지, ‘과연!’이랄지, 이런 발견이 있음에도 모르는 거죠.

그리고, 아까 말했던 ‘나는 만화 같은 건 읽지 않는데’라는 사람 중에서도 또 특정한 종류의 타입이 있어요. 만화를 읽는 걸 잘 못 하는, 만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에요. 만화는 전부 대사로 성립되어 있어서, 이를테면 독자 참가형 컨텐츠잖아요. 대본을 읽는 게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즐길 수 없어요. ‘나 만화 같은 건 읽지 않는데’라는 사람은 분명 대본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전차 안에서든 어디에서든 만화를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껄껄거리며 웃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매우 훌륭하게 만화를 읽고 있는 거에요.

만화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고 먹는 것도 잊고 18~20페이지를 그려서 세상에 내놓는 것에 비해, 읽는 쪽은 정말 몇 분 만에 팟팟팟!이잖아요. 만화가와 독자 사이에 열량(열의) 차이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만화를 정말 재밌게 잘 읽는 사람들은 그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읽고 있어요.

<만화 공부> 제작으로 본 ‘TV의 맹점'

-<만화 공부>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제작, 방영할 예정은 정해졌나요?

=전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웃음)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느낌이죠.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좀 더 많은 여러 종류의 만화가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만화가들에게 TV 출연을 부탁하는 것은, 역시 어려워요.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요. 만화가 2명이 어떤 토크 라이브에서 <만화 공부> 이야기를 했다나 봐요. 그런데 2명 모두 ‘펜을 쫓는 건 괜찮은데 초안이 보여지는 건 싫어’라고 했답니다. 초안에는 완전히 자신의 벌거벗은 부분이 드러나 버리니까요. 그려가면서 ‘아, 이게 아니야’라는 부분은 지워야 하는데, 그런 작업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그런 기분을 잘 알지요.

-만화가가 하얀 종이에서 세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는 의미에서 <만화 공부>는 후세 만화가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영상을 어딘가에 아카이브해둘 계획은?

=그 프로그램은 에서 방영되잖아요. NHK가 찍은 영상은 실은 국민의 소유물, 재산이고, 대여가 가능하다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수신료를 모두가 지불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NHK에서 찍는 순간부터 이미 국민의 소유물로서 아카이브가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전제가 있다는 것은, NHK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게 역시 정답이었다는 이야길까요?

=그렇지요. 사실 처음에는 민방 프로듀서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게 가능할까요?"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민방에서는 무리니까요 NHK에서 하시죠"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런데 방송 후에는 민방 프로듀서들이 "그걸 NHK에 넘긴 건 확실히 분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더라고요.

‘어릴 때의 자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다.

-TV 방송국에서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여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만화도 그렇죠. 무언가가 히트하면 그걸 쫓아가려고 비슷한 만화가 계속 나오잖아요. 하나 히트하면 ‘이제 그건 아니야’라는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어떤 만화 잡지 편집부에는 역대의 표지가 벽 한쪽에 붙어있다고 해요. 나는 그걸 보고 ‘두 번 다시 같은 건 하지마’라는 의미로 붙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이 있던 편집자는 쇼크를 받았어요. "이건 선배들이 했던 대로 하라는 의미로 붙인 건데요"라더라고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만화라는 건 본래 ‘두 번도 같은 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뮤지션들은 한 곡을 만들면 그걸 몇 번이고 부르고, 비슷한 느낌의 노래가 나오면 ‘와~’ 하잖아요. 하지만 만화가가 비슷한 것을 하면 불만이 나와요.(웃음) 그러니까 똑같은 걸 두 번 하면 안되는 거에요. 만화란 냉혹해요. 정말로. 그러니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걸 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매주매주 만화를 그려나가면서 어떻게 고갈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고갈됩니다.(웃음) 그래도 뭔가 오카와리(리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매우 나쁜 독자였다고 생각해요, 그 때의 저는 매우 불평이 많은 독자였습니다. 만화를 보면서 항상 '촌스러워' '이 만화가는 이제 끝이군' '데즈카 오사무도 이젠 별로군' 이딴 식으로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그 시절의 제가 지금 저의 기준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나 같은 애가 지금도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고 생각하며 일을 합니다. 그런 애에게 바보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할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연말이니까 2015년에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알려주세요.

=다음 작품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라고 항상 노트에 쓰고 난 뒤 그냥 잊고 지나가 버리곤 합니다.(웃음) 데뷔하고 삼십 몇년이 되었는데도 계속 그러고 있죠. 저는 처음에 생각한 이야기를 무사히 한 권의 만화로 만드는 데 대략 6~8년이 걸려요. 지금은 <모닝>에 <빌리 배트>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어요. 물론 독자 입장에서는 ‘계속 <빌리 배트>만 그리고 있네’라고 하겠지만, 그 사이에 계속 그 작품만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닙니다. 항상 낙서처럼 그리고 있고, 항상 신작을 만들고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여러분이 보고 있는 <빌리 배트>는 제 창작 활동 중에서는 빙산의 일각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1960년 1월 2일생. 도쿄도 후추시 출신. 1983년 로 데뷔한 이후 <야와라!>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 많은 히트작을 발표,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미디어예술제 만화 부문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음악에 조예도 깊어서 직접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 현재 <모닝>에 <빌리 배트>(스토리 공동 제작: 나가사키 타카시)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