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와 최태민, 그리고 朴대통령의 5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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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시해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인생에 최태민(1912~1994) 목사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최 목사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사위 정윤회 씨가 계속 언급된다. 당사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언급되는 이유가 뭘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그동안 나온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씨의 관계를 정리했다.

1. 1975년 최태민 목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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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 최태민 목사를 만나게 된다.

박 후보와 최 목사가 처음 만난 것은 1975년이다.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 후보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게 계기라고 한다. 최 목사는 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2007년 공개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최태민 수사자료'(1977년 작성 추정)에 따르면 최 목사는 당시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의 비리 의혹은 횡령, 사기 등 44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10·26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최 목사 문제를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정 발(發) 자료와 주장이 최 목사 의혹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012년 8월 22일, 한국일보)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죄로 1980년 5월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됐다. 신동아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했는데, 이 두 서류에 992자(字)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신동아가 보도한 ‘박근혜 X파일 & 히든카드’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2007년 6월 1일, 신동아)

2.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목사 최태민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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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당시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그렇다면, 최태민 목사의 전력은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였다.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2012년 7월 29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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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최 목사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의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물론 최 목사는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내용을 부인했다.

3.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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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씨가 지난 2013년 10월25일에 열린 제1회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최 목사는 논란이 됐고, 1990년 육영재단 분란 당시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 전횡 논란이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2007년 8월 6일, 오마이뉴스)

1990년 12월 우먼센스 인터뷰에 따르면 박지만 씨는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4.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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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윤회씨.

은둔 생활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이 된다. 이후 최태민 목사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씨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박근혜의 정치 입문 초기에 정윤회와 여러 차례 직접 만났던 한 전직 기자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2년 7월17일, 한겨레)

그런 정씨는 국정에 계속 개입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올해 초부터 이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단독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세계일보는 “감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에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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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지만-정윤회 권력암투'가 보도된 1275호

그동안 정윤회씨의 청와대 개입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바있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정 씨가 사람을 시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 회장은 자신의 자택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 차를 세운 채 서둘러 자신의 운전기사를 퇴근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가 그 골목길로 들어왔다. 박 회장은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그 자리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추궁했다. 박 회장은 이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자술서 여러 장을 받아냈다. 누구의 지시로, 언제부터 자신을 미행했는지 등이 자술서에 자세히 적혔다. 오토바이 기사는 자술서에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고 실토했다. 박 회장은 이후 자신의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당시 사건을 전하며 상당히 분노했다. 사석에서 박 회장은 자신을 미행했던 오토바이 기사를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박 회장이 정씨에겐 항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해명했다. (2014년3월23일, 시사저널)

또한 정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 6월 시사저널을 통해 보도되는 등 정씨가 박근혜 정권의 '실세'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5. 청와대 축출된 조응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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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 정부의 '비선 실세'로 거명된 정윤회씨 관련 동향을 다룬 청와대의 내부 보고서가 나오자 언론 접촉을 꺼려왔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당사자 정윤회씨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양측이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정윤회씨가 박지만 EG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로 정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화가 나 있는 상황이었고 순간적으로 고민하다가 받지 않았다"고 했다.

또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건 전화를 받지 않은 그 다음주 화요일 홍경식 민정수석이 갑자기 불러서 갔더니 ‘그동안 수고했다’며 그만두라고 하더라”며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이었다”면서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정윤회씨가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핵심 비서관 등과 매월 두 번씩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취지의 구두 보고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고, 문건을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모 경정(행정관)을 2월 경찰로 원대 복귀 조치됐다.

반면 정윤회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보고서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씨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실세라는 것은 싸구려 음모론"이라면서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에 가겠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는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10과 회동설에 대해 "낭설이자 소설"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특히 정씨는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며 "국정 개입은커녕 청와대 비서관들과는 연락도 끊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개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을 끊고 있다는 사실에서 서로 간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윤회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하루사이에 밝혀졌다.

정윤회 씨는 2일 YTN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 비서관을 통해 조 전 비서관에게 연락을 부탁한 사실은 인정했다. 당시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을 미행했다는, 이른 바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해 조 전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이 비서관을 통해 부탁했다는 요지였다.

또 현 정권 출범 때부터 지난 4월 사퇴할 때까지 초기 조각(組閣)을 담당했던 조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인사검증에 전혀 손쓰지 못한 대목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음을 짐작케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올봄에 청와대에 근무하는 행정관들을 선임행정관(2급)으로 승진시키는 인사가 있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2급이면 인사 검증 대상이니 미리 명단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냥 발표가 나버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원칙과 신뢰'가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다.

최태민, 정윤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40여년을 이어온 인연의 뿌리는 과연 이번에 잘릴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