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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에 선 '정치인 박원순'을 향한 3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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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인권헌장 제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흔히 ‘동성애 조항’으로 잘못 언급되는 차별금지 조항 때문이다.

입장은 엇갈린다.

서울시는 “시민의 의견을 더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시 인권위원회 문경란 위원장은 “서울시는 시민위원회가 내놓은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내용을 서울시가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거부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박원순 시장은 아직 말이 없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인 박원순’의 자질에 물음표가 제기되는 것이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이자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그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1. 듣기만 할 건가

박원순 시장이 처음 서울 시장 후보로 정치에 ‘데뷔’했던 2011년을 떠올려보자. 당시 일각에서는 ‘독선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민운동가 시절 ‘일벌레’로 유명했던 그의 업무 스타일을 두고 나온 얘기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일하는 과정에서 강한 추진력만큼이나 일을 자기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며 “서울시의 행정 책임자(시장)가 됐을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라고 반문했다. (경향신문 2011년 9월9일)

그래서였을까. 박원순 시장은 유독 ‘듣는 정치인’을 강조해왔다. 그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낸 책 제목은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다. 언젠가부터 그에게는 ‘소통의 리더십’, ‘소통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박 시장이 1기 때부터 내세운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는 분명 매력적이다. 일단 선거가 끝나면 공약이나 반대의견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정책과 예산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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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한겨레

그러나 시민은 시장이 아니다. 최종 결정은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 받은 박원순 시장의 몫이다. ‘잘 듣는다’는 건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이자 소중한 자질이지만, 잘 듣는 게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서울시 인권헌장 의결 과정에 참여했던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슬로우뉴스 기고문에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의견수렴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며 끝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누가 좀 그럴듯한 설명을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슬로우뉴스 12월1일)


2. 정치적 부담을 돌파할 능력 있나

서울 인권헌장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차별금지 사유 조항이다.

성별·종교·장애 등 외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라서도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한 1안과,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2안을 놓고 성소수자와 기독교계 등 반(反)동성애 단체들이 극렬히 대립해왔다. (연합뉴스 11월30일)

보수·기독교 동성애 혐오 단체들은 ‘서울시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비합리적인 근거를 대며 격렬하게 반대 의견을 표출해왔다. 공청회장에서는 “마귀들”이라는 말도 아낌없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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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인권헌장을 사실상 폐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책임회피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 시민위원은 “박 시장이 대권가도를 위해 본인이 평생 몸 담아온 인권을 저버렸다”며 “박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지 이그재미너에서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첫 번째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후 정치권 등에서 거센 공격을 받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11월30일)

이들은 "박원순 시장은 인권헌장 제정에 제동을 걸어 스스로 인권거버넌스(인권협치)를 시험대 위에 올렸다"며 "서울시의 책임 회피와 시민위원회 결정 무시 처사에 대한 서울시의 해명을 요구한다"며 조속히 인권헌장을 선포할 것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이종걸 시민위원회 위원은 "지난 4개월간 박 시장이 준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며 "하지만 서울시의 폐기 선언으로 시민위원들은 박 시장이 기획한 쇼의 들러리가 됐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12월1일)

경향신문 김보미 기자는 최근 쓴 칼럼에서 “하지만 ‘박원순식 시민 행정’은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사안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참여예산도 좋고 시민위원회도 좋고 소통도 좋고 경청도 좋고 다 좋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박원순식 시민 행정’은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사안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정부가 시민위원회가 세운 원칙에서 벗어나는 한강 개발방안을 내놨지만 박 시장은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참여예산 중 일부는 민원과 절차상 문제로 한 해가 다 가도록 집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장기 도시계획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도시계획 헌장 제정도 인권헌장처럼 파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향신문 11월30일)


3. 원칙은 무엇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도 있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이런 평가들을 돌이켜보자.

박 시장에겐 강한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는 게 그를 오래 알아온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가 지날수록 단호한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한 서울시 관계자는 말했다. 스스로 옳은 일이라고 판단한 일을 밀고 나갈 때의 고집스러움인데, 정치인이나 행정가로서 주판을 튕기는 냉정함은 때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한겨레21 제984호 2013년 11월4일)

박원순 시장의 ‘승부사 기질’은 이번 사태에서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인권변호사라는 경력, 인권이 흥정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의문은 더 크다.

서울시는 일부 ‘소수자 혐오세력들’의 폭력과 위협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각종 유언비어와 색깔론을 동원하여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키려는 일련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지,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킬 이유가 될 수 없다. (참여연대 논평 12월1일)

지난 10월에는 외신 인터뷰를 놓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밝혔다. 허핑턴포스트가 소개했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의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박 시장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의 많은 동성커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국 헌법은 그들을 인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시는 ‘내용이 와전됐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사실상 말을 주워 담은 것.

인권헌장이 무산된 과정을 놓고도 논란이 이어진다. 서울시가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가 하면 민주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내려진 결론을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는 것.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페이스북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가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것은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하는데 소극적인 것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시민들에게 인권헌장을 만들라고 해놓고, 서울시 공무원이 회의진행을 방해하고, ‘만장일치가 안 되면 헌장제정을 못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12월2일)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을 방해하면서 인권이 합의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위험한 시선을 드러냈다. 또 시민들에게 제정을 맡긴다는 말을 뒤집으면서 위선을 고백했다. 그가 동성애 혐오세력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을 하면서 이제는 다른 지자체나 정치인이 나서서 그와 같은 일을 할 때도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됐다. 이는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에게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스 12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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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원칙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신념과 가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경우에 따라 포기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가 반복된다면, 그 정치인을 믿고 지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보수 기독교계가 동성애를 반대하는만큼,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문제로 보수 기독교단체와 진보인권단체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정치인 박원순과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상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는 평이 나옵니다. (JTBC 12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