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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 사람과 돈이 몰려오자 꽃가게 송씨·세탁소 김씨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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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리포트] 도심 속 ‘뜨는 동네’의 역설

‘자하문로7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분석
‘느림의 동네’ 자고 나면 새 간판
주거비 뛰면서 원주민들 이삿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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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체부동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겨레

도시에 자본이 밀려 들어오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튕겨져 나갔다. 도시의 독특한 매력도 점차 퇴색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과 누하동, 누상동, 통인동 등 경복궁 서쪽에 있는 고즈넉한 한옥 지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곳이 ‘서촌’으로 불리면서부터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의 골목길과 필지가 지금까지 그대로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싫어하는 토박이들이 모여 살다 보니 1930년대 만든 개량 한옥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 주민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 ‘느림’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구경꾼이 모이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면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곳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다.

23일 <한겨레>가 서촌의 최근 변화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자하문로에서 수성동 계곡 쪽으로 향하는 길인 ‘자하문로7길’(체부동 19번지 일대) 주변 건물 8곳의 일반건축물대장에 표시된 연도별 건축물 용도를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집이나 사무실, 생활과 밀접한 소매점 등이 음식점이나 카페, 커피숍 등으로 빠르게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특히 2012년 이후 급격하게 나타났다. 현재 주거면적은 801.17㎡로 2012년의 878.05㎡보다 8.8% 줄어든 반면, 카페나 음식점 등의 면적은 705.49㎡로 2년 전(307.7㎡)에 견줘 갑절 이상(129.3%)으로 늘었다.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변화는 동네가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0년 한 지상파 프로그램이 이 지역을 다룬 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 등에 등장하면서 이곳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은 “2012년 여름(7월) 수성동 계곡 복원공사가 완료된 것도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옥이 밀집된 이 지역의 특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와 건물을 매입하기 시작하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30~40년씩 살아온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날 처지가 됐다. 변화를 싫어하는 주민들이 만들어낸 도시의 특별함이 주민 스스로를 희생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주거지가 음식점으로…뜨는 서촌에서 뜨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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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입구 인근 제과점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한겨레

자하문로7길 바로 뒤쪽 자하문로5가길에 접한 집 15곳(체부동 14번지 일대)을 찾아가 확인해보니, 최근 1년 사이에 새 거주자가 들어와 살거나 건물주가 바뀐 곳이 7곳, 거주자나 건물주가 곧 바뀔 예정인 곳이 2곳이나 됐다. 1곳은 응답을 받지 못했다. 이 골목길 주변 집만 따져보면 최근 1년 사이에 주민 60%가 교체됐거나 바뀔 예정인 셈이다.

일례로 자하문로5가길에 있는 한 주택은 소유권자가 바뀐 뒤 게스트하우스로 개조되고 있다. 이 집에서 전세로 34년 동안 살았다는 김아무개(72)씨는 지난 5월부터 종로구 행촌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그가 부담해야 할 임대료는 단숨에 1천만원에서 6천만원으로 뛰어올랐다. 김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와 같은 집에 세들어 살던 홀몸노인 5명은 서대문구 홍은동이나 양로원, 같은 동네 지하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난해부터 판다, 안 판다 하더니 결국 비싼 돈 받고 팔았더라고. 월세 5만원도 못 내는 세입자가 있어 주인이 골치 아파했는데, 비싸게 사간다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171.6㎡(52평) 크기의 이 집은 10억원 이상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용도변화를 살펴본 7곳의 평균 공시지가 변화를 보니, 올해 3.3㎡(1평)당 가격이 1796만원으로 부동산 침체기 이전인 2007년과 비교해도 32% 올랐다. 주민들과 부동산중개소들의 말을 들어보면, 실제 거래되는 이곳 부동산 가격은 3.3㎡당 3천만~5천만원에 이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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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와 용도가 바뀌면서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가구주택 등에서는 집값 상승이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종로구 신교동의 4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박권석(33)씨는 동네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면서 지난해 10월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36.3㎡(11평) 크기의 집에 전세 9천만원에 들어왔지만, 2년 뒤인 지난해 집주인이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60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촌 주민들과 조기축구회 활동을 한다는 박씨는 “처음에는 조기축구회 회원 50명 중 45명이 이곳 주민이었다면, 지금은 딱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주거지에서의 변화는 속사정을 알기 어려워 소리 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서촌 지역 상가들의 변화는 자하문로7길에서의 급격한 변화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각종 카페가 경쟁적으로 몰리며 임대료가 치솟다 보니 이곳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생활업종 가게들이 밀려나고 있었다. 옥인동에서 15년 동안 꽃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돕고 있는 송아무개(26)씨는 폭등하는 임대료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월세가 70만원이었는데, 최근 100만원으로 올랐어요. 그런데 또 오를 것 같아요. 우리 가게가 나가면 건물주가 새 세입자한테는 월세를 150만원씩 받겠다고 했대요.” 송씨는 “여기서 나가봐야 다른 곳도 임대료가 다 같이 올라 딱히 옮길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너무 막막하다”고 말했다.

체부동에서 9년간 매운탕 장사를 해온 김아무개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집주인이 갑자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애아빠가 정년퇴직했을 때를 대비해 시작한 일이에요. 지난해 남편이 실제로 정년퇴직을 해서 이제 노후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한 거예요.”

가게를 빼지 않자 집주인은 김씨를 상대로 소송까지 건 상태다. “허름한 한옥을 수리해 애착을 갖고 관리하면서 발전시켜왔는데 이럴 수는 없지요. 4~5년 전에 집주인이 이 집을 사라고 했을 때 샀어야 하는데…. 그땐 한옥이라고 담보대출도 적어서 안 샀어요. 그랬는데 이젠 한옥이라고 비싸져서는 이런 상황이 돼버렸어요.”

서촌 주민들의 문화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공간인 ‘혁이네’의 구자혁 대표는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게가 18군데나 바뀌었다. 임대료가 뛰니까 원래 있던 가게들이 밀려나갔다. 이 길에 오래된 세탁소, 우유보급소, 15년 된 미장원 등이 있었는데, 건물주들이 월세를 기존 금액보다 2~2.5배 올려달라고 해서 쫓겨났다”고 설명했다.

한껏 오른 집값을 현금화하려는 욕구도 일부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한다는 오아무개(60)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폐업하려고 하는데, 집이라도 팔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성동 계곡 쪽 집값은 어마어마한데, 이쪽(자하문로5가길)은 기대보다 훨씬 안 올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주거지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이 이탈하는 현상은 뉴타운 개발 등과 같은 대규모 철거형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국내 학계의 연구도 이런 쪽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철거형 재개발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오히려 서촌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부작용이 다른 곳에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1990년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는 화장품 가게가 들어오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완료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2000년대 종로구 삼청동에서는 5년이 걸렸다면, 2010년대 서촌에서는 2~3년 만에 이뤄지고 있어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상수·연남·삼청·신사동…북촌은 6년 전 이미 광풍
도심 속 ‘뜨는 동네’ 의 역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은

서촌에 앞서 서울 종로구의 가회동, 계동, 사간동 일대를 일컫는 북촌에는 6~7년 전에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광풍이 휩쓸고 갔다. 한옥 풍경으로 인기를 끌자 자본이 몰려와 주거공간이 사라져 버린 북촌은 서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형이기도 하다.

북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대중목욕탕인 중앙탕(서울 종로구 계동)은 그런 현상을 웅변해 준다. 이 목욕탕은 지난 16일 문을 닫았다. 북촌 주민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엔 유명 안경회사의 ‘안경 갤러리’가 들어온다.

중앙탕은 중앙고등학교 운동부의 샤워장이었다가 1969년부터 대중목욕탕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 건물주가 인수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건물주와의 친분으로 30여년 간 중앙탕을 운영해온 박희원(68)씨는 “잘 될 때는 하루 150여명씩 찾아왔는데, 문 닫기 전에는 손님이 20~3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남탕만 따지면 하루에 10명도 안 올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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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체부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

중앙탕에 손님이 뜸해진 것은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잘 갖춰진 탓도 있지만, 북촌 주민이 크게 줄어든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박씨는 “한옥이 전부 갤러리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바뀌면서 주민 절반은 없어졌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필요한 기름값 600만~700만원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적자가 이어졌다. “집 주인이 이 동네 주민이니까 못 없앤 거지.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우니까. 할 수 없이….”

이발사이기도 한 박씨에게는 중앙탕과 얽힌 추억이 많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와서 이발하고 가고, 유학갔던 학생도 돌아와서 머리를 깎고, 집에 와서 이발해달라고 해서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뷰 도중 목욕탕 앞을 지나던 주민들은 하나 같이 “너무나 아쉽다”는 말을 박씨에게 건넸다.

서울에서는 서촌뿐만 아니라 홍익대 주변과 마포구 상수동과 연남동, 용산구 경리단길, 종로구 삼청동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아기자기한 구멍가게를 내놓으며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홍대 앞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완료돼 미국 스파(SPA, 제조·유통 일괄 의류) 브랜드 매장 등 대기업들이 밀려온 상태다. 홍대 상권이 인근 연남동과 상수동으로 확대되면서 이곳들에서도 도미노처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도 ‘세로수길’로 확대되면서 주거지가 상업화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영국 산업혁명 이전 옛 토지귀족을 뜻하는 ‘젠트리’가 특정 지역에 들어와 그곳의 물리적 환경을 바꾼다는 의미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인 루스 글래스가 처음 쓴 용어다. 도시 환경의 변화로 중·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면서 주거 비용을 끌어올리고, 비싼 월세나 집값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에는 주거환경 개선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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