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택배 노인의 하루

게시됨: 업데이트됨:
DEFAULT
한겨레
인쇄

▶ 한국 사회에서 노년을 맞을 때 중요한 기점이 되는 나이가 있습니다. 바로 만 65살입니다. 이때부터 무엇이 달라지냐고요. 주요 통계에서 ‘노인’으로 분류되고 각종 복지혜택을 받지만,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다”입니다. 지하철 무료 탑승이 만들어낸 하나의 풍경인 지하철 실버택배를 하루 동안 뒤따라 다녀봤습니다.

“하루 동안 따라다니면 지루할 텐데, 괜찮겠어요?”

지난 20일 오전 10시35분 경의선 전철 풍산역에서 만난 ‘지하철 택배원’ 박정웅(74)씨가 인사를 건넸다. 요즘 일감이 별로 없어서 동행 취재를 하는 기자가 따분해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루에 두세 건 하기도 힘들어요. 일감이 없어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회사에서 종종 전화가 와요. ‘어르신들 심심하시죠?’라고요. 그러면서 좀 유동인구가 많은 환승역으로 이동해보라든가, 적당히 대기하다가 일찍 퇴근하라고 하지요.”

그는 추석과 설 전에 택배 주문이 몰린다고 했다. 하루에 6건을 담당한 적도 있었는데, 그땐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일을 해야 했다. 그런 날이 아니면 대개 오전 10시35분에 자택과 가까운 경의선 풍산역에서 전철에 오르며 출근한다. 하루에 세 건이면 일감이 많은 편이고, 대개는 두 건 정도다. 한 건만 하거나, 아예 일감을 못 받는 날도 종종 있다. 이날 박씨는 등산화를 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점퍼를 입었다. 머리엔 모자를 썼고 왼손엔 흰 장갑을 꼈다. 오른손은 맨손이었다. 택배주문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항시 만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옷은 잠바 하나면 충분해요. 지하철 안이 따뜻하고 계속 돌아다니니깐, 두껍게 입을 필요가 없어요. 택배 일은 오히려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어요. 땀이 많이 나고 워낙 덥다 보니 금방 지쳐요.”

그는 풍산역에서 열차에 오른 뒤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앉았다. 첫 행선지는 홍대입구역이었다. 열차 안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실버택배가 떠오른 이유

박씨는 지하철 택배 일을 지난해 7월15일부터 시작해 1년4개월째 하고 있다. 부산에서 귀금속과 세공기구 등을 25년 정도 팔다가 2005년 그만뒀다. 큰 도난사고를 당해 수천만원을 잃다 보니 일할 의욕이 떨어졌다. 2000년 당뇨 판정을 받은 이후 지치기도 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결혼한 자식 집에 여러 해 머물렀지만, 이내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미치겠더라고요. 집에 있으니 티브이만 보게 되고, 괜히 마누라랑 딸이 나를 어찌 볼까 슬슬 눈치보게 되고요. 그래서 밖에 나가 매일매일 자전거 타고, 종종 분당에서 잠실까지 자전거로 왕복하며 운동했죠. 그러던 중 성남시청에서 지하철 택배라는 일자리를 소개받았어요. 걷는 건 자신있었는데, 스마트폰이 없어서 바로 하진 못했죠. 아들이 스마트폰을 사줘 일을 시작했어요.”

실버택배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직종이다. 만 65살 이상의 노인들이 지하철로 가벼운 물건을 주문받은 당일에 직접 배송해주는 이 일은 ‘실버퀵’, ‘노인택배’ 등으로도 불린다. 노인들이 택배에 나서는 이유는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65세 이상의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이용요금을 할인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제9조 경로우대 조항이 들어갔다. 처음 법이 제정됐을 땐, 지하철 요금을 절반으로 할인해줬지만, 1984년 서울메트로가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했고, 나머지 도시철도도 1991년부터 이를 시행했다.

올해로 30년째를 맞은 노인 무료승차 제도는 오히려 최근 몇년 동안 여러 논란과 화제를 낳고 있다. 2008년 지하철 1호선 온양온천역이 개통되자, 노인 관광객이 예상을 뛰어넘어 몰렸다. 노인 관광객은 강원도 춘천, 서해안 쪽의 인천, 오이도 등 지하철로 접근 가능한 관광지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온종일 구경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한국은 노인 자살률이 2013년 기준 10만명당 64.2명으로 전체 인구의 자살률과 마찬가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단연 최고인데, 지하철 무료이용으로 노인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우울증과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가 생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공학)는 자살 및 우울증, 교통사고 예방 등으로 인한 의료비 절감, 지역 관광사업 활성화 등으로 얻는 경제적 편익이 매년 2270억원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인구가 고령화되고 점점 더 많은 노인들이 지하철에 몰리면서 도시철도 운영에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1985년 국내 만 65살 이상의 인구가 총 174만9549명으로 전체 인구의 4.3%를 차지했으나, 올해엔 638만6000명으로 전인구의 12.7%를 차지한다. 이 수도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불과 4년 전인 2010년엔 만 65살 이상 인구가 지금보다 100만명 정도 적은 542만명이었다. 서울지하철의 무임수송 비용이 지난 5년간 매년 2000억원 이상이고 지난해엔 2792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4172억원었던 점을 고려하면 무임승차 비용만 줄여도 적자폭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실버택배를 가능케 하는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은 논쟁적 사안이다. 실버택배원이라는 직종은 무료 승차 이외에도 여러 조건들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로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노인 일자리 부족’, 지하철만으로 웬만한 곳에 갈 수 있는 촘촘한 철도망, 가벼운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배달하고자 하는 수요 등이 바로 그 조건들이다.

default

몸무게가 6㎏ 빠졌다

오전 11시께 홍대입구역에 도착한 박씨는 환승통로를 따라가며 2호선 쪽으로 걸어갔다. 2호선 승차장에 다다르자, 계단 사이에 자리잡은 한 의자로 익숙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제 사무실이나 다름없어요. 매일 여기로 출근하죠.”

그는 수화기를 들어 회사에 “홍대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전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일을 시작하고서 몸무게가 65㎏에서 59㎏으로 빠졌어요. 워낙 많이 걸어다니니까 체중이 늘 수가 없어요. 이 일을 만만히 보고 시작하는 노인네들은 금방 그만둬요. 하루 종일 걷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거든요. 이 일을 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당뇨약을 안 먹어도 혈당이나 혈압이 적당히 유지되고 소화도 잘되죠. 잠이 줄어서 밤잠 못 이루는 노인네들이 많지만, 나는 밤에 누우면 아침 7시까지 푹 잘 자요.”

대화를 나누던 중, 박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의 첫 일감이었다. 서울시 마포구 대흥역 인근에서 서류봉투를 받아 부천시청 인근의 사무실로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박씨는 “알람을 받고서 늦어도 한 시간 이내에 받으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빠져나가는 계단은 높았지만, 박씨는 거뜬히 올랐다. 박씨는 회사에서 일러준 대로 지하철역 1번 출구로 나와 앞쪽으로 200미터가량 걸었다. 목적지가 대로변의 건물이라 찾는 데 어렵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긴 하는데, 화면이 작아서 잘 보이진 않아요. 길을 잘 모르면 인근 부동산에서 길을 물어요.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도 부동산이 많아서 길 찾기가 쉽죠.”

알람을 받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법무사 사무실인 그곳에서 서류봉투를 받아들고, 박씨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박씨의 머릿속에는 어느 역에서 환승해야 빨리 가는지, 이미 계산이 끝났다.

“합정으로 갔다가 대림에서 환승해 7호선 타면 됩니다. 지하철을 하도 많이 타다 보니까, 웬만한 곳은 말만 들어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다 알아요. 간혹 빠른 길이 생각나지 않으면 노선표를 찾아봐요.”

그의 가방 속엔 지하철 노선표와 수첩, 볼펜이 항시 들어 있다. 그는 지하철 안에서 목적지 주소를 수첩에 적었다. 승차장에선 지하철 10개의 칸 중에 5, 6번째 칸에 주로 탄다고 했다. 환승통로나 출구가 가운데 위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박씨는 스마트폰을 사용했지만, 회사에서 깔아준 앱 이외엔 사용할 줄 몰랐다. 스마트폰으로 지하철 노선표를 볼 수 있고, 어디서 환승하는 게 빠른지, 또 환승하는 통로가 지하철 몇 번째 칸에서 가까운지를 다 알아볼 수 있다고 하자, “그런 게 가능하냐”며 방법을 물었다. 박씨 스마트폰에 ‘지하철 앱’을 설치하고 방법을 일러주었지만, 그는 “한번 보고서 따라하긴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선 “나는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은 세대다. 스마트폰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대림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탄 뒤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광고 전단지였다. 그는 지하철에서 광고판 틈에 끼어 있는 전단지를 모아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뒤에 종이접기를 한다고 했다.

“이걸로 종이공을 접으면 시간이 금방 가요. 지하철 타고 멀리 갈 때도 종이공 10개만 만들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죠. 이거 접는 방법은 어릴 때 배운 거요. 기자님은 종이공 접을 줄 아시오?”

“모릅니다.”

“이렇게 접는 거요.”

박씨는 종이를 접다가 “누가 보고 있으니 잘 안되는구먼” 하며 조금 더듬거리다가 다시 능숙하게 접었다. 종이가 육각형 모양으로 접히자, 그가 작은 구멍으로 “후~” 하며 바람을 불어넣었고, 작은 공이 완성됐다. 그렇게 그는 종이공을 두개, 세개 접어나갔다. 그가 종이를 하나 건넸다. 뒤집어 보니 “실입주금 2300만원이면 입주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부동산 사기의 가능성이 있는 전단지였다. ‘전세보증금 2000만원 내외로 입주할 수 있는 좋은 집이 있다’는 전단지 부동산 광고는 깡통주택에 세입자를 유인하는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인천 깡통 주택의 비극, 장애인 가장의 죽음) 하지만 그는 광고 문안을 신경쓰지 않고 종이접기에 집중했다.

“당신이 차비가 왜 필요해?”

그는 종이공을 네댓개 만들고서 종이접기를 멈추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행자승을 3년간 하다가 스무살이 되던 1959년부터 오대산 입구에서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팔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고 제대하고선 원양어선을 타고 인도양, 북태평양 등을 누볐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려야 할 곳에서 세 정거장이나 지나쳤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그는 “말동무가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간다”고 했다.

“외로운 노인네들은 말동무가 없어요. 특히 할아버지가 혼자 남으면 말동무가 없어 외롭지. 나는 할머니하고 집에서 고스톱 쳐요. 어제도 고스톱을 쳤는데, 어제 번 돈을 다 잃은 거야. 그래서 ‘차비 써야 하니까, 좀 돌려줘’라고 했더니, 부인이 ‘당신이 차비가 왜 필요해’라고 하더라고. 근데 잔돈이 좀 필요하니까 몇푼 돌려받긴 했어.”

부천시청 인근의 한 세무사 사무실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38분으로 알람이 울리고 2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이 사무실의 이승훈 사무장은 “지하철에서 택배 배달하는 어르신을 본 이후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분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서 되도록이면 실버택배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류봉투를 내밀고서 현금 1만원을 받았다. 이 중에서 30%는 회사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세무사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1층에는 김밥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박씨와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3000원짜리 라면 두개와 3000원짜리 김밥 하나를 주문하자마자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또 다른 택배 주문이었다.

“점심식사는 일정하지 않아요. 지하철역에서 김밥 한줄로 때우는 경우도 많죠. 그래도 식사 천천히 하시고, 출발합시다.”

그는 라면을 후루룩 먹더니 5분 만에 그릇을 비웠다. 그는 “이 일을 하고서 입맛이 좋아졌어요. 무얼 먹든 맛있어요”라고 했다. 많이 걸어서인지, 혹은 시장해서인지 입맛이 돌았다. 밥을 먹고서 그는 황급히 일어나 계산을 했다. 기자와 서로 계산하겠다고 잠시 실랑이를 벌였지만, 그는 끝내 고집을 부렸다. 방금 받은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내밀고,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돌려받았다.

오후 1시50분이 조금 넘어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부천시 송내역 인근의 사무실에서 받은 물건은 휴대폰이었다. 그것을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의 한 주택에 배달하는 비용은 1만2000원, 이 중에서 70%인 8400원이 박씨의 몫이다. 두 시간여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그는 “6·25 전쟁 당시 부친이 국방경비대 간부여서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기차에 탔었다”, “조선일보는 구청이랑 노인정에 백부씩 공짜로 갖다놔서 자주 봤는데, 한겨레신문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종편채널에서 뉴스를 재밌게 해설해줘서 자주 본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그는 또 “나는 공짜로 지하철을 이용해서 이런 일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공짜로 타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돈 많은 나라도 복지를 줄이는 마당에 우리나라는 너무 재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노인들도 받을 건 다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요금 내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엔 그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달에 국민연금 14만원, 기초연금 16만원을 받는다. 부인의 기초연금 역시 16만원이다. 한 달 버는 돈과 연금을 합쳐도 100만원이 넘지 않지만, 세 자녀가 생활비를 보조해 어려움은 없다.

두번째 목적지는 골목이 깊은 주택가였다. 박씨는 부동산에 들러 길을 물어서 겨우 목적지를 찾았다. 물건을 전달하자 시계는 오후 4시40분을 가리켰다. 그는 이날 6시간 일했고, 1만5400원을 벌었다. 이 중에 9000원을 점심식사로 사용했고, 6400원을 집에 가져갔다. 기자가 이날 박씨를 따라다니며 치른 지하철 요금은 605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