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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아이들'의 눈물 (상) : 엄마는 둘째 낳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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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자녀들의 선천성 질환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울며 대개 자신들을 책망하기 여념 없다. 아이들 병을 감추며 장기간 스스로 감당해 나간다.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며 적층하였을 ‘생식독성’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제 병조차 회사 책임은 생각 못하던 이들이, 본인을 뚫고 2세로 전이되기까지의 인과를 추적하기란 더욱 어렵다. 세계적 기업으로 매김한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반도체 작업 환경과 생식독성의 관련성을 부인한다. 2008년 전후 백혈병 등으로 숨져가던 1세대 노동자들이 처음 ‘반도체 산업병’을 주장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태도다. <한겨레>는 1세대를 넘어, 지금껏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반도체 2세의 눈물’을 추적했다. 기사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이다.

“아들 돌사진요?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병실에 누운 애 살려만 달라고 매달리던 때였어요.”

김희은(42)씨는 키가 175㎝다.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에서 나고 고교까지 마쳤다. 섬 바람 뚫고 뛰놀았다. 감기도 모르고 자랐던 셋째 딸이다. 그가 울고 있었다. 1999년 태어난 아들 건우(15)에 대해 말하던 때였다. 15년 전 일이 앞으로도 이어질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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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 출생 당시 엄마 김희은씨가 앨범에 메모를 남겼다. 김희은씨 제공

가장 예민하다는 중2 건우는 평생 설사를 해야 한다. 언제, 누구와, 무엇을 먹든 그 음식은 건우의 몸을 지나 헐겁고 허망한 변이 된다. 그래서 건우는 공중화장실, 특히 학교 화장실 이용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변기 사방에 소나기처럼 퍼지는 탓이다. 등교 전, 저녁 학원 가기 전 집 화장실을 들러야 한다. 가장 내밀하여 가장 자유로울 일이, 건우에겐 가장 음밀하여 제일 서럽고 고통스런 일이다. 합병증은 알 수 없는 또다른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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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3개월째 사진. 한창 음식물을 게우던 때다. 잘 웃지 않고, 배가 부풀어 있다. 김희은씨 제공

<한겨레>는 지난 8월12일에 이어 11월3일 충남 온양에 사는 건우 가족을 만났다. 그사이 계절은 시리었고, 반도 곳곳은 한파주의보로 움츠렸다. 0살 건우가 사투하던 바로 그 계절이다.

“1999년 4월○○일 아침 9시6분. 몸무게 3.2㎏” 희은씨는 기록했다. “4시간 진통 끝에 태어난 아이. 신기하고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빌 뿐이었다.”

엄마의 오직 하나 소원은 그러나 마침표와 함께 무참해진다. 건우는 사흘간 태변이 없었다. 배가 부풀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천안 순천향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한달가량 입원했다. 병원은 건우의 배를 찢기로 했다. 실타래처럼 대장이 꼬였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병원은 다시 건우의 배를 15㎝ 갈랐다. 생후 8개월째인 11월 한달 두차례의 큰 수술을 마친 건우는 똥주머니를 매단 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은 다시 아이 배를 갈라 대장을 모조리 잘랐다.

“생후 7개월 정도까지 젖을 먹였는데 거의 다 토했어요. 분유에 약을 타서 먹여도 토하고…. 대장을 자른 뒤 7살 될 때까지 속옷에 대변을 지렸으니까 어떻게 그때를 말로 다 하겠어요.”

서울대병원은 건우가 13살이 될 때까지 장기·정기 검진했다. “대장 전체를 드러낸 경우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온양에서 서울 혜화동 병원으로 오간 13년 노정의 마지막날, 그러니까 2013년 12월 주치의가 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는 엄마한테 감사해야 해. 엄마가 얼마나 고생한지 알지?” 희은씨가 되레 울음을 터뜨렸다. “저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된 건데요.”

희은씨는 1991년부터 98년까지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딸이 삼성반도체에 입사했다”고 좋아했다. 15명씩 25평 아파트에서 기숙하며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다 93년께부터 3조3교대로 한달씩 근무했고, 몇년 뒤 4조3교대로 완화되었다.

3교대 체제가 되어서야 희은씨는 남편을 만나 연애했다. “회사에서 명절 같은 때 선물 많이 받았어요.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같은 거. 그런 거 받으면 몸은 힘들지만 내가 좋은 회사 다니는구나 했거든요. 동료들은 많아야 25살이라 아이 문제가 얘기될 리 없고, 생리불순 같은 건 오히려 너도나도 겪는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죠.”

2년 전부터 인식이 변화했다. 2012년 말 엄마가 된 과거 동료들과 다시 만나며 사망·질병 소식, 불임·유산 등의 경험을 공유하면서다. 산재 가능성까지 의식한 계기다. 그리고 올여름 반도체 산업병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내가 저기 있었는데”라면서 또 목을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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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오른쪽)가 큰 수술을 모두 마친 뒤 또래 사촌과 찍은 사진. “엄마도 아빠도 제일 많이 울었던 때”라고 적혀 있다. 김희은씨 제공

희은씨가 기억하는 작업 환경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들이 적지 않다. 기흥공장에서 6개월 교육받은 뒤 배치된 온양공장은 상주한 일본인 엔지니어들이 설비 고장을 수시로 고쳐가며 가동을 갓 시작한 상태였다. 몰딩공정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에폭시 몰딩 컴파운드(EMC)를 180℃로 가열해 코팅하는 과정이다.

희은씨처럼 키 크고 건강한 여성이 도맡은 공정이다. 화학물질을 들어 직접 키높이 설비에 들이붓고, 또다른 화학물질(멜라민)로 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가열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같은 부산물이 발생(산업안전보건연구원 설명)한다. EMC가 새까맣게 묻은 방진복도 직접 빨아 입었다는 희은씨는 퇴사 1주일 전 건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빨리 교대하려고 점심도 40분 만에 해결했어요. 등에 늘 땀이 차 있도록 하루 12시간씩 일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땐 몰랐죠. 그 흔한 마스크 쓰라는 교육도 못 받았는데 정말 묻고 싶어요. 유해물질 발생사실을 삼성은 몰라서 안 가르쳐준 건가요?”

현재 희은씨도 갑상선암, 류머티즘, 뇌수막염, 상피내암을 앓고 있다. 6개월에 한번씩 갑상선암을, 3개월마다 뇌수막염, 2개월마다 류머티즘을 치료받는다. 13년 만에 ‘아들은 그만 와도 된다’던 서울대병원을 거의 한달에 한번씩 그녀가 찾는다. “하루라도 고통 없이 자고 싶다”는 게 소원이 되었다. 최근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지난 10년치 진료기록을 떼자 담당자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신 거냐’ 물었다고 한다.

실은 건우네 통째 ‘보험 불가’ 가족이다. 가입 가능한 보험이 재해보험과 일부 암보험밖에 되지 않는다. 남편도 제지회사에 다니다 손가락을 프레스에 눌려 더는 같은 일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산업재해 보험을 적용받은 기억은 없다. 건우 치료에만 1500만원이 들었다는 희은씨는 본인의 병원비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 갑상선암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기간(5년)이 내년에 끝난다.

건우는 동생이 있었다. 2007년 엄마가 임신 26주 만에 하혈과 함께 유산하기 전까지였다. 42살 희은씨는 아이가 또 아프고 다칠까봐 더는 아이를 제 몸안에 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