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이전의 이순신 영화들 : 이순신 때문에 전 재산을 투자한 배우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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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최민식은 역사상 몇 번째 이순신일까? 김명민이 연기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나 고 김무생이 이순신을 연기했던 '조선왕조 오백년 - 임진왜란'도 있었다. 일단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 장편 극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명량'의 최민식은 한국영화의 5번째 이순신이다. 그렇다면 다른 4명의 이순신은 누구였을까? 아래는 당시의 신문기사를 통해 풀어본 또 다른 이순신들의 이야기다.

'성웅 이순신'(1962)

감독 유현목
출연 김승길, 윤일봉, 조미령,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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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KMDB

전라 좌수사였던 이순신이 거북선을 개발했을 때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의 이야기였다. 이 영화의 미니어처 촬영의 규모는 당시 한국영화계로서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1962년 3월 '동아일보'가 영화의 촬영현장을 탐방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형 군선에는 대포까지 가설하여 포구에 화약장치를 하고 회로를 연결, 스윗치를 누르는 대로 펑펑 해상화전이 벌어지는 가하면 물속에 시설한 화약이 터져 배에 불을 붙이는 등 교묘한 트릭이 계산되어 있다. 깊이 한자 가량인 풀에는 고무장화를 신은 스텝들이 드나들며 배의 위치를 조절하고 있는데, 마치 '갈리버' 여행기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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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후 1962년 4월 당시 '경향신문'은 "숱한 사극영화가 오락본위로 흐르는 경향을 벗어나 국민적 사극물로 한(만든) 의도가 좋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이트 신'이 과다하고 '미니추어 촬영'의 효과는 별로 신통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 "문무를 겸한 성웅으로서의 인간 이순신 묘사에 더욱 중점을 두었더라면 유현목 감독의 작품다운 영화가 됐을 것...." 그때의 사람들은 아직 스펙터클 보다는 영웅 이순신을 더 보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성웅 이순신'(1971)

감독 이규웅
출연 김진규, 김지미,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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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후, '성웅 이순신'은 같은 제목으로 다시 제작됐다. 그해 추석시즌에 '더스틴 호프먼'의 '졸업'과 함께 극장에 걸렸을 정도로 기대작이었다. 1971년 9월, '경향신문'은 이 영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방화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스타 김진규 제작의 대작영화. 상영시간 2시간 30분의 장막물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가 스펙터클한 해전신을 곁들여 압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인이 출연하는 데 미니어처 특수촬영으로 이루어진 해전장면이 압권. 충무공의 인간성과 애국심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국민학교 어린이들로부터 70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감명 깊게 볼 수 있는 일종의 역사교과서."

이 글의 일부분은 지금의 '명량'을 소개하기에도 충분하다. 중요한 부분은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인이 출연한다"는 대목일 듯. 그만큼 이때의 '성웅 이순신'은 당시의 한국영화계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의 영화였다. 촬영에 들어간 필름은 약 8만피트. 10만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고, 제작비는 1억5천만원이 들었다. 당시 제작자이자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김진규는 이 영화를 위해 한남동의 1억짜리 집을 처분하고, 이 일로 이혼까지 했다. 그는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억 5천만원이라면 방화 15편의 제작비입니다. 이 작품이 추석프로로 등장, 아무리 흥행에 성공해도 1억의 손해는 뻔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수지는 도외시한 것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다만 할 일을 했다는 생각뿐입니다."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당시 개봉 극장에서 14만 7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나름 흥행 기록이었지만, 역시 제작비 때문에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난중일기'(1977)

감독 장일호
출연 김진규, 장동휘, 황해, 정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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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이순신'은 손해를 본 영화였지만, 김진규는 굴하지 않았다. 1977년, 그는 다시 '난중일기'란 작품으로 이순신이란 이름에 도전했다. 이 영화에는 그의 아들인 김진철과 김진도 출연해 '삼부자가 함께 출연하는 영화'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왜 그는 그토록 이순신에게 집착했던 걸까? 1977년 7월, 김진규와 만난 '경향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특히 충무공의 호국정신과 깊은 인간애를 흠모하여 항상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 얼을 영상으로 재현시켜보려고 노력했다. 지난 69년 세계여행 때 유럽사람들의 조상을 섬시고 자랑하는 자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충무공의 얼을 기리려고 결심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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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따르면, '성웅 이순신'의 실패는 그에게 재정상의 큰 상처를 안겼다. 곤경에 빠진 그에게 "밤무대 출연 요청등 갖가지 유혹이 뻗쳐오기도"했다고. 하지만 "불황의 영화계에서 순수연기자로서의 자리를 지킨" 그는 당시 한진흥업이 제작한 '난중일기'를 만나 다시 이순신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한껏 자부심을 펼쳐보이는 김씨는 가끔 충무공영정을 보고 있느라면 자신의 얼굴이 장군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해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고 했다."

'난중일기'는 약 2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 또한 흥행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김진규는 당시 1977년 연말의 인터뷰에서 그 어 느때 보다 뿌듯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피나는 노력의 해였으며 보람있는 한해였습니다. 제 평생의 숙원이었던 영화 '난중일기'가 뜻대로 제작돼 올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으로 뽑혔고, 저도 두 번째로 주연남우상을 받았으니까요."

'천군'(2005)

감독 민준기
출연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공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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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싸이더스

'난중일기'(1977) 이후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극영화는 한동안 제작되지 않았다. '구국의 태양 성웅 이순신'(1981), '난중일기'(1997) 등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정도였다. 그 사이 '조선왕조 오백년 - 임진왜란'(1985)이 다시 이순신을 재조명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후 2004년에는 김명민 주연의 사극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됐다. 그리고 2005년, 다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극영화가 나왔다. 바로 '천군'이었다.

박중훈과 김승우, 황정민이 출연한 '천군'은 시간여행 영화다. 남북한이 함께 개발한 핵무기가 있고, 이를 빼돌리려는 북한장교 일행과 그들을 쫓던 남한장교 일행이 433년만에 지구를 지나던 혜성의 힘에 의해 과거로 돌아가는 설정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1572년 조선의 어느 변방마을. 그곳에서 현대의 사람들은 무과에서 낙방해 허송세월을 하며 도둑질과 사기로 살아가던 이순신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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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에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해전이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의 군인들이 이순신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고, 여진족의 침입으로 각성한 이순신이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낸다는 설정이다. 당시 박평식 영화평론가는 '씨네21'의 20자평에서 "발상은 맑음, 표현은 흐리고 자주 비"(별 2개 반)라고 평했고,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황산벌' 보단 못해도 '낭만자객'보단 낫군. 막판 전투신만 건짐"(별 2개 반)이라는 평을 남겼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천군'이 전국에서 동원한 관객은 약 120만명 정도. 제작비는 약 80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