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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통통한 사람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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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SITY
비만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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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체중이 ‘비만’보다 사망 가능성 더 높아
‘살찌면 빨리 죽는다’는 통념은 ‘상술’ 가능성

건강과 질병의 경계는 어디인가를 둘러싼 의학계의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 두루 밝기는 어렵다.

무지는 공포를 부른다. 적잖은 이들이 가벼운 증상만 있어도 새로운 첨단 의료기술을 적용해 치료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전에 없던 질병이라도 걸리면 패닉에 빠지지 않기가 어렵다. ‘공포 마케팅’이 번성할 토양이다.

한국에서도 과잉 진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과잉 진료를 부르는 것일까. ‘공포 마케팅’ 및 과잉 진료와 관련한 반성을 이 기획 연재물에서 담으려 한다. 이 기획 연재물은 어찌어찌하면 건강해진다는 ‘정답’을 제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다만 질병과 건강, 그 흐릿한 경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글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식사 전에 혈당을 쟀을 때 125㎎/㎗이면 당뇨가 아니고, 126㎎/㎗이면 당뇨라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공복시 혈당이 125㎎/㎗이면 ‘당뇨 전 단계’로 분류되며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의사한테 듣게 된다.

의학계에선 이런 수치를 일정한 규모의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수십년간의 관찰을 통해 정한다. 즉 통계다.

그런데 이 수치가 잘못됐다면? 예를 들어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혈당치가 사실은 140㎎/㎗이상인데, 이 기준치를 14㎎/㎗을 낮춰 126㎎/㎗으로 정했다고 가정해보자. 126~139㎎/㎗에 해당되는 이들은 불필요한데도 혈당 조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비를 낭비하고 심지어 치료를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약물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최근 의학계에선 고혈압·당뇨·비만 등 각종 ‘생활 습관병’의 기준치에 대한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비만의 경우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 가입자의 비만 관리에 나서겠다고 할만큼 사회적 관심도 크다.

그런데 비만 기준치에 관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기준치를 재설정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비만 기준은 보통 ‘체질량지수’를 쓰는데, 이 수치는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23 미만이면 정상, 23 초과~25 이하면 과체중, 25를 넘으면 비만에 해당된다. 또 30 이상이면 ‘고도 비만’으로, 20 미만이면 저체중으로 분류된다. 비만을 연구하는 학회나 질병관리본부는 과체중부터 사망 위험이 높아져, 비만이나 고도비만이 되면 정상 몸무게보다 많게는 2배 가량 사망 위험이 커진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들은 이와 다르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유근영·강대희·박수경 교수팀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7개국의 114만명을 평균 9.2년 동안 추적 관찰한 뒤 내놓은 결과를 보면, ‘약간 통통한’ 사람의 사망 가능성이 가장 낮게 나왔다. 체질량지수로는 ‘가벼운 비만’으로 분류되는 25.1~27.5에 해당되는 이들이다. 이어 과체중(체질량지수 22.6~25)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사망 가능성이 낮았다.

반면 통념과 달리 ‘정상’(20.1~22.5)에 해당하는 이들의 사망 가능성이 비만(27.6~30)보다 높게 나왔다. 이 연구 결과는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데다, 비만이 사망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만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어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의학 논문집에도 실렸다.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이다.

연구팀은 “과체중에서 가벼운 비만에 해당되는 이들에게서 사망 가능성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비만이 질병 위험을 높여 사망 가능성을 높인다는 생각이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에게는 틀렸다는 뜻이라기 보다 이들 나라에서는 비만의 기준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는 더 있다. 윤병우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전국 33개 병원 뇌출혈 환자 1350여명을 조사했더니, 비만인 뇌출혈 환자가 정상 몸무게를 가진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더 낮았다. 체질량지수 기준으로 비만에 해당되는 뇌출혈 환자의 사망 위험이 정상 몸무게인 환자보다 61% 낮았고, 과체중에 해당되는 이들도 정상 몸무게인 경우보다 69%나 낮았다.

반면 정상 수치보다 몸무게가 가벼운 경우엔 정상 몸무게보다 사망 위험이 64% 늘었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쪽이 덜 나가는 쪽보다 뇌출혈에 의한 사망 위험이 낮게 나타난 것이다. 윤 교수팀은 “한국인에게 적용되고 있는 비만 기준이 적절한지 추가 연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정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선 후속 연구가 이어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준치가 100% 타당한 건 아니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지금의 비만 기준치에 맞춰 몸무게나 건강을 관리하는 게 되레 사망 가능성을 높이는 엉뚱한 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면, 몸매를 상품화하는 사회가 ‘무조건 날씬해야 건강하다’는 그릇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비만 수치가 지방을 추출하는 시술이나 살 빼는 약 등을 판매하는 데 이용되는 상술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