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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색정광 뜻하는 영화 님포매니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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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포매니악의 선정적인 장면을 둘러싸고 영화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 .

‘여자 색정광’을 뜻하는 제목부터 화제를 모은 <님포매니악: 볼륨1>이 지난 10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어둠 속의 댄서>(2000)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거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이다.

섹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 조(샤를로트 갱스부르, 젊은 시절 조 역은 스테이시 마틴)의 경험담을 몇 개의 챕터로 나눠 천일야화처럼 풀어나가는데, 불편하고 자극적이기보다는 흥미롭고 유머 넘치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조의 첫 경험에서 피보나치수열을 떠올린다거나 여러 남자와의 섹스를 바흐의 작곡법에 비유하는 등 지적 유희의 요소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단순히 섹스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의미와 철학까지 사유하게 한다.

영화에는 뿌옇게 ‘블러’ 처리한 대목이 있다. 성관계를 맺을 때 성기가 나오는 몇몇 장면이 그런데,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영화 수입사는 원본 그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심의를 신청했다. 영등위는 제한상영관에서만 틀 수 있는 ‘제한 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개봉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과거 몇몇 제한상영관이 있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수입사는 몇몇 장면을 블러 처리하고 재심의를 요청한 끝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오는 19일 개봉할 수 있게 됐다.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2>도 블러 처리 뒤 재심의를 요청해 11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7월3일 개봉 예정이다.

수입사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는 “영등위도 나름의 기준을 위배할 수 없어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이해한다”며 “다행히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해해줘 충분히 상의하고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는 한도에서 블러 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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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포매니악>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남기웅 감독의 복수극 <미조>는 지난달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는 아직까지 개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영화 속 근친상간 설정이 미풍양속을 해치고 모방의 우려가 있다는 게 주된 이유여서 블러 처리나 재편집으로 해소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이에 남 감독은 “영등위야말로 선정적 표현으로 <미조>를 말하지 말고 폭력적 등급 판정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말며 본인들의 윤리야말로 비윤리가 아닌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영화 상영의 윤리는 간단하다. 관객에게 맡기면 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도 “근친상간은 신화, 문학 등 다른 예술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설정이다. 성인 관객들이 판단할 문제인데, 모방 우려 운운하며 접근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 건 과도한 제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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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주요 경쟁 부문에도 초청된 이상우 감독의 <지옥화>도 지난 4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영화계가 들끓었고, <자가당착>(김선 감독) 제작진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뒤 영등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영등위는 올 초 2심에서도 패소하자 대법원에까지 상고한 상태다. 이처럼 제한상영가 판정은 해묵은 논란과 파장을 일으켜왔다.

영등위는 법에서 정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정해진 기준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하는 게 영등위의 할 일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해당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원칙론적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한상영가 제도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정지욱 평론가는 “포르노 전용관이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포르노물 유통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르노물이 아닌 일반 영화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정상진 대표도 “영화제 상영 영화는 영화제 쪽이 자체 심의하고 개봉 영화는 영등위가 별도로 심의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조>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아무 문제 없이 상영됐다.

정지욱 평론가는 “정부나 지자체가 제한상영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