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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어야만 안전한 사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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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팽목항에는 실종된 자식을 찾는 부모의 애끊는 외침이 울리고 있다. 참사 발생 한달이 넘어가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믿기지 않는 현실과 한국 사회의 앞날에 대해 깊은 회의와 의문에 싸여 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연초 <한겨레> 토요판(1월4일치 ‘이진순의 열림’)에 실린 한 편의 인터뷰 기사가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루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무려 3만건의 공유를 기록하며 ‘우리 시대 진귀한 진짜 어른’의 등장을 알렸다. 한때 탄광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재해를 겪었던 그는 “결국은 내 책임”이라며 평생토록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는 소신을 지켜왔다. 바로 채현국(79)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지금껏 ‘비주류 야인’으로 남아 재산을 털어 민주화운동을 뒷바라지해온 그가 평소 존경하는 언론인 가운데 하나로 꼽은 이가 있다. 바로 연초부터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을 집필중인 성유보(71·필명 이룰태림) 희망래일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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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왼쪽)과 성유보 희망래일 이사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한겨레신문사 하니동산에서 세월호 참사 한 달을 앞두고 깊은 절망의 현실과 희망의 길을 나누고 있다. ⓒ 김봉규 선임기자

<한겨레> 창간 26돌을 맞아, 우리 시대 두 어른을 모시고 이 절망의 현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과연 새로운 희망을 건질 수 있는 길은 있는지, 고민과 지혜를 나눠보았다.

사회자(이하 사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온 국민은 엄청난 충격과 비탄에 빠져 지내야 했습니다. 꽃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능한 정부를 욕하기도 했고, 구조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와 해경, 승객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잇속만 채운 해운회사와 그들을 제대로 감시 못한 감독기관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사고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채현국(이하 채) 침몰하는 배에 갇혀 느껴야 했던 아이들의 불안과 공포가 내 일처럼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현재 양산에서 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항상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직전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다 왔어요. 어린 목숨이 무더기로 희생됐고, 어른들의 무책임과 정부의 무능 때문에 그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공무원들이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성유보(이하 성) 한반도의 4월과 5월, 하늘이 저리도 푸른데 온 국민은 한 달째 상주가 되어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일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는데 유가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세 가지 문구,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보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눈물, 그분들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참 막막하더군요. 그날 저녁 문화광장에서 열린 2천여 고교생들의 촛불문화제를 맨 뒷자리에 앉아 함께했는데, 미풍에 일렁이는 촛불들이 마치 300여 세월호의 혼령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모인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한 환상에 잠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슬픔만이라도 함께 나누는 일에 더 많이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이런 참사가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난 1960년대 후반 한때 장항에서 1천톤짜리 배를 만든 선박회사의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선박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다르게 느낍니다. 20년이 지난 노후 선박을 5년, 10년 이상을 연장해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 준 관료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해운회사의 로비를 받아 관련 법규를 만든 이들이 누구입니까? 개인과 집단의 끝없는 탐욕과 심각한 부패가 이번 참사의 배경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이 곪아 터진 것입니다. 비단 해운 분야뿐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봅시다. 이미 노후된 고리 원전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한반도 전체를 재앙 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원전의 위험에 대해서도 이참에 다시 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침몰이 예고된 ‘사고뭉치’ 배의 운항을 허용한 해운당국의 무모함, 무지함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탈출하라”는 한마디 없이 먼저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다만, 정권·관료·언론이 끝내는 이들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원인 제공자들인 ‘해운 마피아’를 비롯해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이 또다시 유야무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움을 줄곧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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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이사장(왼쪽)과 성유보 이사장(오른쪽).

채현국 이사장
돈이 최고란 가치관이 곪아터진것
위험한 원전도 참사 나기 전 각성을
‘국가개조’는 민중의 합의로 이뤄야
대통령이 하겠다는 건 독재자 자인
수학여행 금지 대신 탈바꿈했어야

성유보 이사장
‘책임 회피’ 박대통령에 충격적 실망
양순한 백성들론 정의사회 못이뤄
책임자들·불의·부조리에 분노해야
교육혁명 계기 삼아 청소년들에게
자기결정권·판단력 등 길러줘야

사회 어쩌다 이렇게 국민의 안전에 대해 극단적으로 무능하고 윤리적 판단이 마비된 국가, 반지성적인 한국 사회가 됐을까요?

저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순하고 착하기만 한 국민들만으로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실 일제 식민지배와 오랜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우리 어른 세대는 “기다리라”는 명령어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물론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 해운회사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관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들을 보이지 않게 조종해 잇속을 챙기는 세력에 대해 민초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합니다. 민초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을 경계하면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눈앞의 작은 적들에게 화풀이하지 말고 뒤에 숨은 세력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사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요.

박 대통령은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진심은 감정입니다. 살이 부르르 떨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유족의 아픔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는 게 먼저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애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돌아서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 간선으로 장기 집권을 도모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국가 개조를 하겠다’면서 유신독재체제를 구축해 모든 비판의 목소리를 철저히 막았습니다. 국가의 실체는 국민입니다. ‘국가 개조’라는 발상은 아버지처럼 독재권력을 휘두르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국민들 위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면서 훈계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구조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표를 보면서 또 한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청와대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면탈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의 실체가 국민이 아니라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걸까요? 그동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빠져나가는 박 대통령의 정서적 도피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경주 리조트 참사나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들이 설사 과거로부터 쌓여온 ‘관행’ 탓이라 해도, 현직 대통령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관행들을 청산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믿고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반이 박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습니까?

사회 사고 대책으로 정부가 맨 먼저 한 일은 ‘수학여행 전면 금지’였는데요.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6·25 전쟁통에도 피난지에서 천막 학교를 열었고 학생들은 소풍을 다니고 학예회를 즐겼습니다. 어른들이 너무 방정을 떨고 있어요. 수학여행을 무조건 중단시킬 게 아니라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안전교육의 실습 현장’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대규모 단체여행에 따른 위험을 염려한다면 반별로 1년 내내 따로따로 소규모로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봅니다.

교육 당국에서 수학여행을 체험교육 과정이 아니라 ‘일탈된 방종’으로 보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 때도 수학여행은 ‘공부지옥, 입시지옥에서 며칠이나마 벗어나 일탈적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레크리에이션 행사’였습니다. 그렇다고 몇 달쯤 중단한 뒤에는 안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장 전국의 관광버스업계, 숙박업계, 음식점, 기념품점 등 수학여행 관련 영세업자들이 개점휴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면, 학생들 안전에 지금보다도 더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혹여라도 손해를 만해하고자 수익에 연연하다 더 많은 교통사고, 식중독사고라도 일어난다면 교육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덩달아 문화체육관광부도 전국의 문화예술계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해서 ‘올스톱’ 상태입니다. 공영방송사의 한 간부는 기자들에게 검은 옷, 노란 리본 같은 추모 분위기 동참도 금지시켰다지요? ‘힐링음악’ 같은 ‘치유예술’을 통해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신적·정서적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풀어줄 생각은 왜 못하는지…. 우리 국민들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냉혈한으로 만들 작정인가요?

사회 이번 참사를 통해 어떤 교육적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요?

돈벌이만이 최고 가치인 천민자본주의에 오염되고, 관료사회의 명령어를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부정과 부패를 목격하고도 ‘내 일이 아니니까’라고 눈감아 버리는 ‘착한 백성’들은 결코 국가적 재난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정권, 정치권, 관료사회, 관제언론들이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 다그쳐도,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명령해도, 옳지 않으면 거부하고 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어야만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부당한 권력, 부당한 명령어에 불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 한민족은 지난 역사 속에서 너무나 양순했습니다. 왕조시대에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되풀이했습니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총칼에 굴복했고, 해방 뒤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아래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명령에 따랐습니다. 사회적 안전, 민주주의 그리고 더불어 모두 잘 사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지키려면,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배우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교육혁명의 일대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자기결정권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당장 학생들에게 물과 바다에 대해서 어떤 교육을 해왔나요? 몇 년 전 읽고 웃어넘긴 적이 있는 얘기인데, 한 선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뱃사공, 자네는 논어를 읽은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답니다. 뱃사공이 “못 읽었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선비는 “자네는 인생의 반을 헛살았군” 하더랍니다. 조금 있다가 배에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사공이 물었습니다. “선비님은 수영을 배우신 적이 있나요?” 대답은 “배운 적 없네”였죠. 사공은 “선비님은 이제 인생 다 살았군요”라고 말했답니다. 그 우스갯소리가 쓰라린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 지금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또다시 재난이 터질지 모른다는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재난, 인재의 위험을 예방하는 대책은 없을까요?

사회 구석구석 안전망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 점검과 안전망 재구축에는 반드시 시민사회가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서 같은 서류에만 적힌 안전 매뉴얼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 가능합니다.

사회 이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불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공범이 됩니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일이고 내 책임이라는 자세로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은 앗긴 사건이 이번만은 아닙니다. 자신은 이미 대전으로 도피해 한강대교까지 폭파시켜 놓고는 “국군이 인민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고 서울에 가만히 있으라”는 거짓 방송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그 원조입니다. 이승만은 나중에 자신의 말만 믿고 서울에 남았던 많은 시민들을 부역 혐의자로 몰아 죽였습니다. 명령대로 다리를 폭파했던 ‘충직한 부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심판받기는커녕 “반공세력의 국부”로 군림한 ‘배반의 역사’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어를 권력자의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겁니다.

맞습니다.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자들에 대해, 불의에 대해, 터무니없는 부조리들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분노하지 않는 국민들로는 정의로운 사회, 인간 존중 사회,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보복이나 보상심리는 희생양만 낳을 뿐, 제2·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분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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