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별에서 온 곡선의 이방인, 지구인과 잘 어울릴까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탐방기

▶ 이른바 ‘빌바오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랜드마크 건물이 도시를 살린다는 의미죠. 스페인의 쇠락한 도시 빌바오에서 다소 특이하게 생긴 구겐하임미술관이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빌바오에 뒤이어 전세계에선 랜드마크 건설 붐이 일었고, 상당수는 ‘빌바오 신드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삼일 동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봤습니다.

불시착한 우주선이 이런 모습일까. 공사 기간만 5년 걸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Dongdaemun Design Plaza)가 3월21일 문을 열었다. 건물 외관은 볼수록 아리송하다. 각진 부분이 거의 없다. 곡선도 대칭이나 일정한 비율 등 규칙성을 찾기가 어렵다. 알루미늄 패널 4만5133장이 덮인 건물은 거대하고 통통한 ‘몸통’이 누워 있는 듯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몸통이다. 건물을 외계에서 온 우주선에 빗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건물의 모양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일정한 형태가 없다’는 의미인 ‘비정형’이다.

동대문운동장 조명탑 두 개는 남아

디디피를 처음 찾은 지난 25일은 다소 날씨가 흐렸다. 은빛 건물과 옅은 회색의 하늘은 묘하게 어울렸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디디피는 주변 건물들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디디피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두타, 밀리오레, 헬로에이피엠, 굿모닝시티, 롯데피트인, 맥스타일 등 고층 패션몰을 마주하고 있었다. 밀리오레 앞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 디디피 입구에 들어서자 천장이 높고 꽤 넓은 실내공간이 펼쳐졌다.

벽은 온통 하얀색이었고, 바닥은 직사각형 모양의 검은 타일이 흰 바탕 위에 불규칙하게 뿌려져 있었다. 실내공간을 사이에 두고 두 출입문이 마주보는 형태였고, 가운데에 약간 비틀어진 오각형 모양의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안내데스크를 지나 반대쪽 출구로 나가자 노란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밭 사이로 돌로 쌓은 성곽이 가로질렀다. 군데군데 심어 놓은 나무는 가지만이 앙상했다. 그중에 매화꽃이 핀 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때마침 코끝에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다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안내 책자를 요청하자, 직원은 “지도가 다 떨어졌다. 여기 지도가 일부 나왔으니 이거라도 가져가라”며 '조선일보' 주말매거진을 건넸다. 내키지 않았으나 집어 들었다. 어떻게 기사를 썼는지 살짝 보니, 디디피의 주요 장소에 번호를 1번부터 10번까지 매겨 순서대로 관람하라며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1번은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였고, 2번은 종합안내소였다. 출발부터 동선이 달랐다. 3번이 매표소, 4번이 패션쇼가 열리는 알림1관이었는데 맹점은 매표소에서 패션쇼 표를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청장이 있어야만 패션쇼에 들어갈 수 있다.

지도를 펼치며 출입구로 나왔다. 밀리오레가 다시 보였다. 왼쪽에 지하로 뻗은 길로 들어섰다.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오자, 큰 광장과 인파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울림광장이다. 그런데 그냥 인파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차림을 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어떤 여성은 머리를 주황색으로 염색했고, 선글라스를 낀 어떤 남성은 머리에 기름을 발라 가지런히 옆으로 빗어 넘겼다. 각자 개성 넘치는 복장과 스타일이었다. 매표소에 들러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 물었다.

직원은 “여기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패션위크의 패션쇼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패션쇼 표는 여기서 팔지 않고, 간송전시회 표만 팔고 있다. 다른 전시회는 개관 기념으로 31일까지 무료”라고 안내했다. 패션쇼가 열리는 알림터 에이원(A1) 입구로 들어갔다. 안에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복도를 따라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작은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쭉 걸어가자 출구가 있었고, 밖으로 나오자 의외의 풍경이 나타났다. 큰 돌로 쌓은 성벽에 난 두 개의 문이었다. 한쪽엔 쇠기둥으로 문이 막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조선시대 도성 안에서 밖으로 물이 흐르던 이간수문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이 수문은 디디피가 공사중이던 2008년 11월 동대문운동장의 지하 3.7m 지점에서 발견됐다. 수문만이 아니었다. 길이 123m에 이르는 서울 성곽도 발견됐다. 일제가 1925년 히로히토 왕세자의 생일을 기념해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을 만들 때, 이 모든 유적을 땅에 묻은 것이다.

디디피라는 초현대적인 건물의 앞뜰에 조선시대의 성곽과 수문, 정예 군대의 주둔지였던 훈련도감 하도감 유구(옛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가 공존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유구라는 단어의 설명이 없었고, 언뜻 보면 잔디밭 안에 네모난 흙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간수문 뒤에선 조명탑이 눈에 띄었다. 디디피는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 두 개를 남겨뒀다. 밤에도 불을 밝히며 고교야구의 전성기를 비췄던 그 조명이다. 그 옆은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최윤섭(59)씨는 “운동장에 응원하러 오던 추억이 있다. 추억 어린 장소가 없어져 아쉽지만 이것도 다 시대의 흐름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알루미늄 패널 4만장 덮인
건물은 볼수록 아리송하다
일정 형태 없는 비정형 건물은
주변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통념 뛰어넘는 영감을 준다

서울시는 20년간 13조원
경제적 파급효과 기대했지만
공사비 4840억원 들었고
한 해 운영비도 321억원
경제·문화 두 토끼 잡을까
시작은 오세훈 전 시장의 결재

디디피는 여러 통념을 뛰어넘는 건축물이다. 건물의 외관에서 직선과 대칭적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고, 실내에서도 직각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둥조차 비스듬하게 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물 안에 오르막길도 있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1층에서 4층을 오간다. 이 오르막길은 건물 내에 층간 경계가 사라진 공간이다. 길을 오르다 보면 스포츠디자인전시회, 간송전시회 등이 열리는 전시장을 지나친다. 꼭대기인 4층에 올라가니 건물을 디자인한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가구와 소품 등을 전시하는 ‘자하 하디드 360도’전이 열리는 중이었다. 그곳에 전시된 소파와 탁자는 그가 만든 건물과 닮았다. 직선과 직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4층의 전시장 출구는 실외였다. 완만한 경사의 잔디밭과 그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건물의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길이 잔디밭인 셈이다. 디디피의 누리집에는 ‘눈이 오는 겨울에 이 잔디밭을 어린이들이 즐기는 눈썰매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잔디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 내딛자, 바로 인근에 있는 직원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라고 제지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있었다.

이튿날 오전 다시 디디피를 찾았다. 지하철을 타고 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왔다. 눈앞에 바로 디디피의 어울림광장이 펼쳐졌다. 왼편에 ‘디자인장터’가 눈에 띄었다. 입구를 지나자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아리따움 등의 화장품 가게와 편의점인 왓슨스, 지에스25 등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 식당가가 나왔다. 디자인장터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가게 구성이었다. 이날은 서울패션위크의 마지막날이었다.

광장에는 여전히 각기 개성을 뽐내는 사람들이 붐볐다. 190㎝의 키에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김성원(24)씨는 “패션쇼를 보러 온 모델 지망생이다. 건물의 남다른 외관이 패션행사와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잡지에 사진을 기고하는 독립사진사 김재기씨는 “디디피의 개관행사로 서울패션위크를 유치한 것은 신의 한수다. 인파가 몰리는 행사인데다 사람들의 패션도 구경거리”라고 말했다.

디디피는 큰 기대를 안고 문을 열었다. 서울시는 연간 생산유발 효과가 6551억원으로 향후 20년간 13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치를 내놨다. 디디피를 찾는 사람들이 동대문 패션몰이나 인근 식당가를 찾으면서 인근 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란 예상이다. 상인들은 아직 판단을 유보했다. 두타 지하의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는 김현정(20)씨는 “디디피가 개관하고서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조금 늘긴 했지만 주로 패션위크의 영향이 크다. 그 행사가 끝나면 어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밀리오레의 상인들은 “동대문 상권이 워낙 죽어서 주 고객이 내국인보단 외국인이다. 디디피 개관의 효과는 아직 실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때 패션 도소매 유통의 중심지였던 동대문은 인터넷 쇼핑 등의 활성화로 인해 침체에 빠져 있다. 서울시는 디디피를 창신동의 봉제거리와 동대문 패션몰을 잇는 패션디자인 허브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지는 못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디디피에 들어간 막대한 혈세와 향후 운영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6년 5월 당선되고서 그해 8월에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결재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 전 시장의 청사진은 서울의 랜드마크인 ‘월드디자인플라자’였다. 이때부터 애초 책정된 900억원 수준의 공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이 보였다. 이 사업에 대한 타당성 연구는 이듬해 2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타당성 연구가 채 끝나기도 전인 2007년 4월 설계공모가 시작됐고, 8월에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당선됐다. 이 설계안이 책정한 총예산은 2274억원이었다.

공사 기간 동안 서울 성곽과 수문 등의 유적이 발견돼 설계가 수차례 변경되고, 어려운 공사를 수행하느라 예산은 4840억원까지 늘었다. 디디피의 경제적 비용을 추산하기 위해선 공사비 이외에 토지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하는 디디피 인근 토지의 공시지가는 1㎡당 1900만원에 이른다. 디디피가 대지면적 6만2692㎡에 달하기 때문에 공시지가 기준으로만 땅값이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즉 서울시가 디디피에 투자한 금액이 1조7000억원에 가까운 셈이다. 철저히 경제적인 측면만을 따져서 안정자산인 국공채 금리 수준인 2.8% 정도의 수익을 기대한다면 디디피는 매년 470억원 정도의 수익을 거둬야 한다. 하지만 디디피는 수익을 거두기보단, 거꾸로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한해 디디피 운영에 들어갈 비용을 321억원으로 추산했다. 애초 디디피는 수년간 적자를 감수할 계획이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로 밝힌 운영계획안에는 첫해부터 운영비만큼 수익을 거둬 균형예산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관 및 임대료로 198억원을 벌고 관람료로 61억원을 거둔다는 계획이다. 얼마만큼 이 수치를 달성할지는 미지수다.

ddp

자하 하디드 “여기 지역 문화랄 게 뭐가 있냐”

물론 공공 건축물은 수익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고려한다. 시민들에게 주는 휴식과 문화적 경험은 경제적으로 추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다. 문제는 디디피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아직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디디피는 회의장인 알림터와 전시장인 배움터, 디자인 가게들이 입점하는 살림터로 구성돼 있다. 알림터에는 서울패션위크 이후 비슷한 규모의 행사가 드물고, 살림터에는 아직 입점하지 않은 가게가 많다. 살림터 가운데 놓인 책장에 디자인과 어울리지 않는 자기계발서들이 잔뜩 꽂혀 있는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디디피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느냐는 주된 논란거리였다. 개관을 앞둔 3월11일 국내 언론과 한 기자회견에서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는 ‘건물이 지역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여기 지역 문화랄 게 뭐가 있냐. 패션타운이 디디피 안에 들어와 시장을 열어도 난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정치인들이 결정할 일이다. 인터뷰를 그만하겠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자하 하디드의 이전 건축물도 지역 정체성에 부합하기보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데에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디피를 찾은 사람들은 건물의 형태에 다양한 평가를 내놓았다. 제주도에서 일부러 디디피를 구경하러 온 조각가 박조유(72)씨는 “이 건물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주변 건물은 직선·직각이고, 이 건물은 곡선이다. 오히려 이 건물로 인해 앞으로 주변에 새로 짓는 건물의 모습이 바뀌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섯살, 세살인 두 자녀를 데리고 놀러 온 김지현(33)씨는 “워낙 흉물로 보여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와보니 번잡한 동대문에 여유로움을 준 느낌이다.

특히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부딪히거나 다칠 곳이 없다는 점이 좋다”고 평가했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 안예리(23)씨는 “낮엔 주변 건물과 부딪치는 느낌이 있지만, 저녁이 되면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조명이 주변 밤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영국인 사진가 앨릭스 핀치는 지하 어울림광장에서 동대문의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며 “나는 이 풍경(view)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미로처럼 뻗은 길로 인해 길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전시회장을 빠져나오는 문아무개(55)씨는 “전시장 찾기가 너무 어렵다. 나이든 사람을 위해 안내 표시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패션위크 행사를 마치고 이튿날인 27일 오후 다시 한번 디디피를 찾았다. 전날과 달리 광장은 한산했다. 남다른 헤어스타일과 복장으로 눈길을 끄는 사람 대신, 등산복을 입고 온 중년의 남성들과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 커플들이 눈에 띄었다. 각자 지도를 한장씩 들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과연 디디피에서 어떤 경험을 할까. 이들이 다시 디디피를 찾도록 하기 위해 어떤 내용으로 내부를 채워야 할까. 불시착한 우주선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인터넷 세상

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프레시안